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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상륙한 수준급 평양냉면

산야초 2017. 8. 6. 00:03

인천에 상륙한 수준급 평양냉면

  • 월간외식경영  

    입력 : 2017.08.04 08:00

    [맛난집 맛난얘기] 피양면옥

    강원도(미수복)와 함경도 피난민이 많이 사는 곳이 속초라면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 피난민이 많이 사는 곳은 인천이다. 두 도시의 공통점이 있다. 두 곳 모두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면 나타나는 휴전선 아래 첫 도시다. 피난민 입장에서는 고향 가까운 도시이자 통일되면 가장 빨리 집으로 돌아갈 조건을 갖춘 동네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속초에는 함경도 향토색 짙은 음식이 성한 반면, 인천에는 이렇다 할 평안도 음식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인천 송도에 들어선 <피양면옥>은 평양냉면을 비롯한 평안도 음식 전문점이다.

    한우 100% 우직한 육수, 입문용 평양냉면으로 ‘딱’

    요즘 평양냉면 전문점이 하나 둘 늘어난다. 냉면 질도 수준급이다. 냉면 마니아들에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의 강호들과 서로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냉면 마니아들에겐 적잖은 기쁨을 제공한다.

    들어가는 입구에 냉면과 어복쟁반용 놋그릇을 쌓아두고, 냉면 제면실이 정면으로 보이도록 배치했다. 일본의 우동집 가운데 이런 식의 배치를 한 식당이 많다. 고객에게 친밀함을 느끼게 해주고 음식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대개의 평양음식점이 그렇듯 이 집도 평양냉면을 중심에 놓고 여러 가지 평안도 음식들을 사이드 메뉴로 포진시켰다. 전통평양냉면(1만1000원)이라는 메뉴 명으로 이 집 평양냉면과 수줍은 듯 다소곳하게 첫 대면을 했다. 살결이 매우 눈부셨다. 면발은 밝은 회색에 가깝다. 82%의 메밀 함량인데 속 메밀 위주로 반죽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품위 있어 보인다.

    평양냉면
    평양냉면의 생명인 육수 역시 맑고 투명해 보였다. 한우 100% 육수라고 한다. 유명한 평양냉면 집은 많지만 육수에 오직 한우만 사용하는 집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평양냉면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우로만 육수를 내라는 법은 없다. 외국산 소고기, 혹은 돼지나 닭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집도 그런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하지는 않는다.

    이 집 평양냉면 육수는 묵직함과 우직함이 특징이다. 한우의 우직스런 맛은 무기교의 기교로 낸 결과다. 무심할 정도로 시치미 뚝 떼고 슴슴하고 담담한 냉면 육수들에 비하면 한우의 감칠맛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 한우 육향이 짙은 스타일이어서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가 접근하기 좋은 육수다. 평양냉면 입문자에겐 안성맞춤이다.
    평양냉면에 곁들여 먹는 서도 음식들 다양

    물냉면과 짝패로, 비빔냉면인 비빔평양냉면(1만1000원)은 소스 맛이 과히 맵지 않고 무난하다. 조금 단맛이 나는 것은 여성 고객을 배려한 듯하다. 물냉면과 마찬가지로 면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구수하다.
    녹두지짐이와 어복쟁반
    녹두지짐이(1매 5000원, 2매 8000원)는 시중의 튀김에 가까운 기름 질펀한 녹두전들과 전혀 다르다. 담백하면서도 녹두의 고소함을 잘 살렸다. 냉면만 먹기엔 한 끼 식사로 허전할 때, 두 사람이 한 장을 주문해 먹으면 적당한 양이다.

    여느 평양냉면집처럼 반찬은 무절임과 백김치를 내온다. 모두 개운하고 깔끔해 냉면 맛을 돋워준다. 그런데 다른 집들에서 여간해선 보기 힘든 이북식 감자깍두기가 나온다. 외형상으로는 무 깍두기와 별 차이가 없는데 입에 넣고 씹어보면 생감자 맛이 난다. 무에 비해 치밀하면서 유연한 감자 조직이 미세한 전분 입자들을 터뜨리며 차아에서 부서다. 양념과 버무려진 생감자 맛이 색다르다.

    냉면과 함께 평양음식점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주는 음식들이 있다. 평양온반(1만1000원)과 어복쟁반(5만원, 8만원)이다.

    평양온반은 찬 음식 일색인 여름철에 맑은 닭국물로 몸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더운 음식이다. 어복쟁반은 녹두전, 찐달걀과 함께 한우의 양지, 우설, 머릿고기 등이 들어갔다. 10~15분 끓인 후 백목이, 쑥갓, 느타리버섯 등 채소류부터 하나씩 건져 탕기 한 가운데 놓인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다. 놋쇠로 제작한 어복쟁반 탕기만큼이나 귀족스런 맛이다.
    평양온반
    이제 인천에서도 수준급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전통의 평양냉면 강호들은 신흥 강자들의 부상을 어떤 시선으로 볼지 궁금하다. 평양냉면집 수효가 늘어도 지금 당장 판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평양냉면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지는 측면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그러나 길게 보면 순위가 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다.

    냉면 마니아들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기분 좋은 일이다. 좀 더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냉면 질의 상승과 가격의 하락을 기대해볼 수 있으니. 물론 냉면집 당사자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인천 연수구 컨벤시아대로130번길 12, 032-858-9595

    글 사진 이정훈 음식문화연구자(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