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거리 형제옥’에서 지난 24일 점심에 먹은 소머리고기 수육(중/2만원). 다양한 부위가 고루 늘어갔고 값에 비해 양도 실하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a2013463-7803-4e58-8d4b-b8a837a37534.jpg)
‘땡땡거리 형제옥’에서 지난 24일 점심에 먹은 소머리고기 수육(중/2만원). 다양한 부위가 고루 늘어갔고 값에 비해 양도 실하다.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52e2829b-33ee-472a-b0d3-4935395c2e58.jpg)
![기사에 나오는 장소를 1901년 그린 '한성부지도' 위에 표시했다. 현재 도로와 비교하며 볼 수 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400015ac-b282-43a0-ac60-7cdd7fd5f3c6.jpg)
기사에 나오는 장소를 1901년 그린 '한성부지도' 위에 표시했다. 현재 도로와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지난달 9일 점심 때의 수육 소(1만5000원). 우설·볼살 등 소머리고기가 고루 들어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e8e8c5e8-9b2c-4ce6-af0a-99e822f70086.jpg)
지난달 9일 점심 때의 수육 소(1만5000원). 우설·볼살 등 소머리고기가 고루 들어있다.
![지난 21일의 수육 중(2만원). 소머리 하나를 통으로 삶아 두고 잘라서 내기 때문에 부위별 내용이 늘 같지는 않다. 간장·겨자·고춧가루·파·마늘 등으로 만든 소스가 색다르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da517447-3198-48fd-8323-9aff0040a9fe.jpg)
지난 21일의 수육 중(2만원). 소머리 하나를 통으로 삶아 두고 잘라서 내기 때문에 부위별 내용이 늘 같지는 않다. 간장·겨자·고춧가루·파·마늘 등으로 만든 소스가 색다르다.
![수육 대(2만5000원)를 주문하면 소머리고기와 도가니 반반이 가능하다. 설렁탕 국물에 끓여서 나온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ab0a693d-8eff-4b62-9aa1-4aefa52c1e79.jpg)
수육 대(2만5000원)를 주문하면 소머리고기와 도가니 반반이 가능하다. 설렁탕 국물에 끓여서 나온다.
음식은 설렁탕·소뼈해장국(각 7000원), 도가니탕(1만원), 수육(2만5000/2만/1만5000원), 도가니수육(2만5000원) 5가지. 반찬도 김치·깍두기뿐이다. 간결하다. 맛도 그렇다. 음식이 바탕은 잘 갖췄지만 치장은 하지 않았다. 건실하다 할까.
![수육 접시를 만들려고 소머리고기를 자르는 여주인 김미자씨.](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e7e0cd29-93db-4e5e-a821-e41ecee7e9e3.jpg)
수육 접시를 만들려고 소머리고기를 자르는 여주인 김미자씨.
![김미자씨가 끓고 있는 설렁탕 국물에 수육으로 나갈 고기를 데치고 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4072121a-2822-4765-8466-27f13e368d1a.jpg)
김미자씨가 끓고 있는 설렁탕 국물에 수육으로 나갈 고기를 데치고 있다.
![형제옥 음식 중 가장 자주 먹는 소뼈해장국. 선지 덩이 아래 살이 두툼하게 붙은 등뼈 토막이 두어 개 들어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37be26c8-7856-43de-ba61-060cc985c2b4.jpg)
형제옥 음식 중 가장 자주 먹는 소뼈해장국. 선지 덩이 아래 살이 두툼하게 붙은 등뼈 토막이 두어 개 들어있다.
![화구에서 해장국 두 뚝배기가 끓고 있다. 큰 냄비와 통에서는 해장국과 설렁탕 국물이 데워지고 있다. 해장국은 한 냄비가 다 팔리면 다음날에나 먹을 수 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3a3f3e6d-7a24-4091-92cd-0d5a5db5c7f3.jpg)
화구에서 해장국 두 뚝배기가 끓고 있다. 큰 냄비와 통에서는 해장국과 설렁탕 국물이 데워지고 있다. 해장국은 한 냄비가 다 팔리면 다음날에나 먹을 수 있다.
![설렁탕 국물에 된장 풀고 우거지 넣어 끓여둔 해장국 국물.](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05f39829-6e71-4cac-9f79-df36e85cfa9f.jpg)
설렁탕 국물에 된장 풀고 우거지 넣어 끓여둔 해장국 국물.
![소뼈해장국에 들어갈 살이 붙은 등뼈 토막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d87bf7f2-4a7b-4d1f-875f-fbff16b7174f.jpg)
소뼈해장국에 들어갈 살이 붙은 등뼈 토막들.
돌아보니 2010년 무렵까지는 새벽 3시 30분에 문을 열었다. ‘따귀(국물 우리고 남은, 살이 붙은 뼈)’ 안주와 해장국으로 손님을 맞았다. 나는 2000년 전후로 10여년간 3일마다 편집국 밤샘야근을 했다. 오전 4~5시 일이 끝나면 속이 출출해 동료들과 새벽 참을 꼭 먹고 집으로 갔다. 그 시절 새벽 손님으로 형제옥에 출입했다. 여주인은 그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지금은 7시부터 문을 열고 따귀 안주도 사라졌다.
![형제옥의 대표 상품 설렁탕. 소 양지·머리·도가니·사골·잡뼈를 14시간에 걸쳐 달인 진국이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dfa62c26-36a5-4788-9631-009a09fb6664.jpg)
형제옥의 대표 상품 설렁탕. 소 양지·머리·도가니·사골·잡뼈를 14시간에 걸쳐 달인 진국이다.
![형제옥 설렁탕에는 길게 자른 양지수육 5~6점과 소면이 들어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0271ac97-e926-4a92-abbf-9c18da719dc9.jpg)
형제옥 설렁탕에는 길게 자른 양지수육 5~6점과 소면이 들어있다.
![밤새 달인 설렁탕 국물이 점심 손님을 맞으려 끓고 있다. 수육을 데치기도 하고 뚝배기에 담아놓은 수육과 소면을 토렴해 설렁탕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d4e362e8-d3ad-43a1-89a6-3f635fcb7ffd.jpg)
밤새 달인 설렁탕 국물이 점심 손님을 맞으려 끓고 있다. 수육을 데치기도 하고 뚝배기에 담아놓은 수육과 소면을 토렴해 설렁탕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30년 넘은 형제옥의 무쇠가마솥. 음식점이 서소문건널목 땡땡거리에 있을 때 연탄 아궁이에서 쓰던 것을 이전하면서 가지고 와 계속 설렁탕을 끓이고 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ac329219-3096-4e85-9d6f-ad305c2bec6b.jpg)
30년 넘은 형제옥의 무쇠가마솥. 음식점이 서소문건널목 땡땡거리에 있을 때 연탄 아궁이에서 쓰던 것을 이전하면서 가지고 와 계속 설렁탕을 끓이고 있다.
![무쇠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뽀얀 설렁탕 국물.](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bf0210a2-3b8a-4a07-a353-88e8516cf0d5.jpg)
무쇠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뽀얀 설렁탕 국물.
![수육 한 접시를 잘라내고 남은 소머리 볼살. 머리인데도 잘라내야 하는 기름 막이 두껍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280e9ba8-2d20-4a84-a104-e4576370c2f1.jpg)
수육 한 접시를 잘라내고 남은 소머리 볼살. 머리인데도 잘라내야 하는 기름 막이 두껍다.
![국물을 내고 식혀둔 양지살. 주로 설렁탕 웃기로 쓰고 수육 접시에는 소머리고기와 도가니를 쓴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1e602451-7015-4bbe-9d2d-7267ccd87781.jpg)
국물을 내고 식혀둔 양지살. 주로 설렁탕 웃기로 쓰고 수육 접시에는 소머리고기와 도가니를 쓴다.
![먹은 기억이 별로 없는 도가니탕을 취재를 위해 먹어봤다. 설렁탕 국물에 양지 수육 대신 도가니가 들어간 것만 달랐다. 여주인에게 도가니에 대해 물으려 하자 “그거 진짜 뼈도가니 아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집의 정직함이 느껴졌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45518832-4f11-4085-9581-7b2544ba6148.jpg)
먹은 기억이 별로 없는 도가니탕을 취재를 위해 먹어봤다. 설렁탕 국물에 양지 수육 대신 도가니가 들어간 것만 달랐다. 여주인에게 도가니에 대해 물으려 하자 “그거 진짜 뼈도가니 아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집의 정직함이 느껴졌다.
이 집에는 특이한 내력과 사연이 있다. 1954년 창업해 김씨 부부가 세 번째 주인인데 주인이 바뀔 때 두 번 다 주방장에게 음식점을 조건 없이 물려줬다. 현재 주인은 “10원 한 장도 값을 치르지 않고 받았다”고 말했다. 음식점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에서 출발했다. 서소문 철도건널목 옆 땡땡거리로 1957년 이사했다.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이 있는 임광빌딩(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81) 남서쪽 모퉁이 철길 옆이었다. 김상호씨가 1981년 형제옥 주방 직원으로 들어갔고, 주방장으로 일하던 1988년 10월 10일 당시 주인 김형래(작고)씨가 음식점을 거저 물려줬다. 그 분도 창업주로부터 그렇게 물려받았다. 황해도가 고향인 전 주인은 땡땡거리에서 설렁탕으로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됐다. 가게를 물려줄 당시 재산이 100억대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86아시안게임 이전에 잠실 선수촌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의 논을 사놓았다고 했다.
![‘땡땡거리 형제옥’이 1993년까지 39년 동안 성업하던 자리를 임광빌딩 화단과 느티나무·소나무들이 차지하고 있다. 서소문건널목 옆이라 하루에도 열차가 수백 편 오가기 때문에 종일 ‘땡땡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c6d244b6-f5df-4b63-8a5a-e05048d37c92.jpg)
‘땡땡거리 형제옥’이 1993년까지 39년 동안 성업하던 자리를 임광빌딩 화단과 느티나무·소나무들이 차지하고 있다. 서소문건널목 옆이라 하루에도 열차가 수백 편 오가기 때문에 종일 ‘땡땡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철도 건널목 맞은편에서 본 옛 땡땡거리 형제옥 자리. KTX 기관차 코끝 뒤로 나무들 보이는 곳에 있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0dc82394-2b91-4bd5-8c2c-e9c0bcc8b1c5.jpg)
철도 건널목 맞은편에서 본 옛 땡땡거리 형제옥 자리. KTX 기관차 코끝 뒤로 나무들 보이는 곳에 있었다.
![서소문 철길 건널목은 열차 통행이 전국에서 손꼽히게 많은 곳이다. 근무자에게 하루 몇 편이나 다니는지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고양시 행신 차량기지를 들고나는 KTX 열차가 건널목에서 교행하고 있다. 이 자리에 1930년부터 1944년까지 경의선 서소문역이 있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e8565578-715d-4b4e-ad3c-4430947b0b3a.jpg)
서소문 철길 건널목은 열차 통행이 전국에서 손꼽히게 많은 곳이다. 근무자에게 하루 몇 편이나 다니는지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고양시 행신 차량기지를 들고나는 KTX 열차가 건널목에서 교행하고 있다. 이 자리에 1930년부터 1944년까지 경의선 서소문역이 있었다.
![공사가 한창인 서소문역사공원. 이 현장 어디쯤 만초천이 흘렀고 그 주변에 중림동 수산시장이 있었다.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형장이었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천주교 신자 100여 명이순교했다. 그 가운데 44명이 성인이 돼 이곳은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성지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aef5fa1d-dbac-4982-aaaf-51013281164a.jpg)
공사가 한창인 서소문역사공원. 이 현장 어디쯤 만초천이 흘렀고 그 주변에 중림동 수산시장이 있었다.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형장이었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천주교 신자 100여 명이순교했다. 그 가운데 44명이 성인이 돼 이곳은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성지다.
![역사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서소문근린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이 근처로 만초천이 흘러갔고, 개천을 따라 서울에서 가장 큰 경성수산(주)의 수산시장이 열렸다. 조선시대 칠패시장의 맥을 이어 1927년 문을 연 이 시장은 1971년 이사해 노량진수산시장이 됐다. 택시가 보이는 위치쯤에 만초천을 건너는 염(초)청교가 있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afb0d445-bdfc-4738-8dc8-77ebd6aeed71.jpg)
역사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서소문근린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이 근처로 만초천이 흘러갔고, 개천을 따라 서울에서 가장 큰 경성수산(주)의 수산시장이 열렸다. 조선시대 칠패시장의 맥을 이어 1927년 문을 연 이 시장은 1971년 이사해 노량진수산시장이 됐다. 택시가 보이는 위치쯤에 만초천을 건너는 염(초)청교가 있었다.
![요즘 중림시장은 오전 3~4시부터 10시까지 열린다. 오후 1시 무렵인데 이토록 한산하다. 새벽에는 왼쪽에 쌓아둔 받침대를 차도 옆에 깔고 수산물이 든 스티로폼 박스가 성을 이루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일대 음식점에서 쓰는 농수산물들을 여기서 공급한다. 와서 사 가기도 하고 양이 많으면 정기적으로 배달도 해준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1f204e15-f580-436e-a0ce-2b4ae5647af9.jpg)
요즘 중림시장은 오전 3~4시부터 10시까지 열린다. 오후 1시 무렵인데 이토록 한산하다. 새벽에는 왼쪽에 쌓아둔 받침대를 차도 옆에 깔고 수산물이 든 스티로폼 박스가 성을 이루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일대 음식점에서 쓰는 농수산물들을 여기서 공급한다. 와서 사 가기도 하고 양이 많으면 정기적으로 배달도 해준다.
1990년 형제옥을 처음 알던 무렵 내 직속 부장은 서울 봉래초등학교 출신이었다. 중림시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학교다. 1944년생인 그 분이 초등학생 때 중림동 수산시장에서 고래를 처음 봤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1950년대 초쯤 일이겠다. 기차로 싣고 올라와 며칠간 잘라서 파는 걸 봤다고 했다. 수산시장에서 철길 건널목 지나 바로 형제옥이 있었다. 시장이 성하던 1970년께는 하루 탕 1200~1300그릇을 팔았다. 수산시장이 이사한 후 1980년대까지도 700그릇은 팔았다. 지금은 100그릇 팔기도 쉽지 않다. 맛이 변해서 그런 게 아니다. 엄청난 일이 있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잠시 휴식 중인 김미자·김상호씨 부부. 단 둘이 음식점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큰일을 겪으면서 욕심은 버리고 마음을 다진 터라 얼굴이 평화로워 보인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164ae41d-d22c-4d99-bf61-4fd7e27faaa0.jpg)
하루 일을 마치고 잠시 휴식 중인 김미자·김상호씨 부부. 단 둘이 음식점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큰일을 겪으면서 욕심은 버리고 마음을 다진 터라 얼굴이 평화로워 보인다.
남편 사고 후 음식점을 계속할 형편이 아니었다. 주방 선임자에게 조건 없이 가게를 물려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주방장이 일을 못하게 됐으니 도리가 없었다. 여주인 김씨가 주방에 들어갔다. 확장이나 돈 벌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때맞춰 땡땡거리 음식점 자리가 재개발로 헐리게 됐다. 1993년 살림집 자리에 3층 건물을 지어 주택 겸 음식점으로 입주했다. 대지 약 90㎡(27평) 작은 집이었다. 식당 홀로 쓰는 곳은 15평쯤 된다. 들어오면서 직원들 다 정리하고 여주인이 주방을 맡고 아주머니 한 명과 식당을 운영했다. 지금은 남편이 회복돼 부부가 손발을 맞추고 있다.
주방에 처음 들어가던 때를 여주인 김씨는 이렇게 돌이켰다. “내가 뭘 알았나. 남편 하는 거 어깨너머 배운 걸로 했지. 남편 살려야지, 어린 아들 둘 키워야지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집안이 음식 내력이 좀 있다. 외할머니가 광복 전에 일본 나고야에서 건설현장식당(함바집)을 했다. 친정엄마가 거기서 태어났다. 8.15 때 귀국했는데 엄마도 음식을 잘했다. 논산 시골에서도 사골국물 넣고 김치 담가 먹었을 정도다. 국을 잘 끓였다. 동네 가게를 했는데 시골이니까 막걸리도 팔고 그랬다. 멸치육수에 새우젓국으로 간하고 계란 푼 대파국, 맑은 장국에 새우젓으로 간한 애호박국, 파와 미나리 들어가는 갈치국, 마늘·생강·고춧가루·후추 양념해 미나리 넣고 끓인 가자미찌개, 이런 거 참 맛있게 잘했다.”
그의 친정인 논산 성동면은 강경과 땅을 맞대고 있는 이웃이다. 금강·논산천을 양 옆에 끼고 있는 드넓은 곡창이기도 하다. 금강하굿둑이 막히기 전까지는 군산 앞바다에서 조업한 어선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와 강경포구 옥녀봉 아래 짐을 풀었다. 큰 어시장이 섰다. 싱싱한 생선이 넘쳐났다. 강경젓갈은 그 시절의 자취다.
![절인 배추를 멸치액젓과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하루를 재운 김치. 김치가 맛있다고 얘기하는 손님이 많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406b65cf-2fa5-49b8-b33d-d200029cedea.jpg)
절인 배추를 멸치액젓과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하루를 재운 김치. 김치가 맛있다고 얘기하는 손님이 많다.
![김치는 하루 쓸 만큼만 매일 담가 하루 밤을 재워서 쓰기 때문에 맛이 늘 일정하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a0ac8c07-4002-4ab2-832d-357da9a3274d.jpg)
김치는 하루 쓸 만큼만 매일 담가 하루 밤을 재워서 쓰기 때문에 맛이 늘 일정하다.
![꾸미고 가꾸지 않은 민낯을 연상시키는 깍두기. 보이는 대로 맛도 차분하고 시원하다 형제옥 음식의 특징이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e14fa9e5-fc48-4c15-8a71-3351c3cddd73.jpg)
꾸미고 가꾸지 않은 민낯을 연상시키는 깍두기. 보이는 대로 맛도 차분하고 시원하다 형제옥 음식의 특징이다.
![형제옥 깍두기는 물이 많다. 무 자체에서 생긴 물이다. 여주인은 맛 시원하고 몸에도 좋으니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ba596979-167c-4959-91f1-470107fe3054.jpg)
형제옥 깍두기는 물이 많다. 무 자체에서 생긴 물이다. 여주인은 맛 시원하고 몸에도 좋으니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형제옥은 밥쌀로 신동진 품종을 쓴다. 다른 쌀보다 알갱이가 굵다. 여주인의 친정인 논산평야에서 예전부터 재배하던 품종이라 성질을 잘 알고 품질도 마음에 들어 계속 쓴다고 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886b8944-d221-4804-a9f4-4497b530ebae.jpg)
형제옥은 밥쌀로 신동진 품종을 쓴다. 다른 쌀보다 알갱이가 굵다. 여주인의 친정인 논산평야에서 예전부터 재배하던 품종이라 성질을 잘 알고 품질도 마음에 들어 계속 쓴다고 했다.
이렇게 탕도 찬도 빠지지 않는 맛인데 1200~1300그릇 팔던 옛 영화를 되살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어봤다. 여주인은 단호했다. “음식점 자리가 맹지(盲地)다. 차가 못 들어온다. 이렇게 깊은 골목으로 들어오고 목도 안 좋아 손님이 줄었다. 24시간 열어야 손님이 모이는데 쉴 것 다 쉬고 무슨 손님이 오길 바라겠나(※모든 공휴일을 다 쉰다). 그저 밥 먹고 사는 거다. 내집에서 사람 안 쓰고 가족끼리 하니까 임대료·인건비 나갈 게 없어서 근근이 유지하는 거다. 예전 내가 홀 관리할 때는 손님들 입맛을 잘 기억했다. 우거지 많이, 밥 많이, 선지 많이, 국수 많이 … 기호를 다 파악하고 기억했는데 남편 다치고 내가 주방으로 들어가다 보니 손님 관리를 할 수 없게 됐다. 이제는 그런 주문 방식 자체가 없어졌다.”
![형제옥은 맹지에 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주차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뒤에 보이는 큰 건물은 경찰청 본청이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900558de-1ad0-4738-8fa7-4c4eeece9ecc.jpg)
형제옥은 맹지에 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주차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뒤에 보이는 큰 건물은 경찰청 본청이다.
![오후 9시 하루를 마무리하는 형제옥. 철길 옆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긴 지 24년 됐는데 여전히 ‘구 땡땡거리 형제옥’의 기억을 지키고 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b5a93623-4733-45b6-9bb9-3bc571c38f1d.jpg)
오후 9시 하루를 마무리하는 형제옥. 철길 옆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긴 지 24년 됐는데 여전히 ‘구 땡땡거리 형제옥’의 기억을 지키고 있다.
28년을 드나들면서도 몰랐던 얘기를 꺼냈다. 바깥주인이 중앙일보 배달소년 출신이다. 모래내지국에서 1974년부터 3년간 신문을 배달하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마친 후 사회생활 시작도 중앙일보에서 했다. 직업배달도 했고 지국 총무도 했다. 1990년 무렵 남편 김씨가 한창 왕성하게 음식점 운영을 할 때 석간이던 중앙일보에는 구내식당이 없었다. 회사에서 가까운 형제옥은 당일 신문 제작을 마무리한 기자들이 반주 곁들여 점심 먹기에 맞춤했다. 경찰기자들은 새벽에 출입처 순회[마와리(まわり)돈다 했다] 후 팀장에게 사건·사고 보고한 다음 아침식사 하기에도 편리했다. 식사하다가 동료들과 자주 마주치니까 “중앙일보 구내식당”이라는 농담이 생겼다.
그는 지금도 배달소년 때 암송하던 ‘중앙일보 번영 10개 조’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1974년에는 20개 조였는데 너무 많다는 의견이 있어 1976년부터 10개로 줄였다고 그는 기억했다. “하나, 안 되면 되게 하라. 둘, 어떻게 되겠지 하지 말고 어떻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져라. 셋, 새로운 생각, 새로운 방법 채택을 게을리 하지 마라. 넷,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을 반성하라. 다섯, 돈을 많이 주고 일을 많이 시켜라….” 참으로 길고 깊은 인연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해 청파로·원효로를 거쳐 원효대교 아래에서 한강으로 흘러가는 만초천 위에 세워진 서소문아파트. 1층 상가의 우리분식 바로 왼쪽 통로를 통과해 골목길을 40m쯤 가면 형제옥이 있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4/28/3f7562c5-9cb8-4a03-9030-60a7208334b0.jpg)
무악재에서 발원해 청파로·원효로를 거쳐 원효대교 아래에서 한강으로 흘러가는 만초천 위에 세워진 서소문아파트. 1층 상가의 우리분식 바로 왼쪽 통로를 통과해 골목길을 40m쯤 가면 형제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