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

"보수 무너질까봐" 주부도 전직 교감도 태극기 들었다

산야초 2017. 11. 22. 10:55

"보수 무너질까봐" 주부도 전직 교감도 태극기 들었다

입력 : 2017.11.22 03:03

[태극기 집회 1년, 평범한 참가자들의 목소리]

집회 신고 못해 장소 내줄까 3명이 24시간 경찰서 불침번… 단팥빵 3개로 끼니 때우며 버텨

돈 받고 집회한다 소리 듣기 싫어 자비 1000만원 들여 태극기 구입
"기록 남기자" 팟캐스트 중계도

지난달 28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촛불 집회' 1주기 행사가 전국적으로 있었다. '촛불 집회' 반대편에 '태극기 집회'가 있다. 작년 11월 19일 서울역 앞에서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보수 단체들이 "박 전 대통령 퇴진 반대"를 주장하며 시작한 이 집회도 꼭 1년이 됐다. '촛불 집회'는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중단됐지만 태극기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문 앞 집회만 지금까지 총 53차례 열렸다. 주말마다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이 있다.

"형제들까지 저한테 '얼마 받고 일하냐'고 물어 눈물이 나요." 21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1층 로비. 난방도 되지 않는 민원 대기실 의자에 이상옥(76)씨가 앉아 있었다. 매주 토요일 '태극기혁명 국민운동본부(국본)'가 주최하는 서울 대한문 앞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서다. 집회 신고는 관할 경찰서에서 선착순으로 한다. 다른 단체가 집회 장소를 선점할까 봐 국본 소속 회원 3명이 번갈아가며 24시간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씨는 "주부로 살아와 정치 활동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워낙 좌파들이 설쳐대서 나라 망할까 봐 나온 거예요." 그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충북 제천에 있는 자택을 비우고 서울에 전세를 얻어 올라왔다고 했다. 이날 이씨는 점심 끼니를 단팥빵 3개로 때웠다.

트럼프 방한 기간이던 지난 8일 현충원 앞 태극기 집회에서 김무식(왼쪽)씨가 자비를 들여 성조기를 나눠주고 있다. 21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선 이상옥(오른쪽)씨가 집회 신고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트럼프 방한 기간이던 지난 8일 현충원 앞 태극기 집회에서 김무식(왼쪽)씨가 자비를 들여 성조기를 나눠주고 있다. 21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선 이상옥(오른쪽)씨가 집회 신고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씨가 속한 단체 회원들은 다른 단체에 집회 신고를 뺏기지 않고자 24시간 3교대로 민원실을 지킨다. /김지연·안상현 기자
'태극기 집회'는 1년을 지나면서 변하고 있다. 초기엔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이 주된 구호였다. 최근엔 '한·미 동맹 강화' '법치주의 수호' 등의 주장이 함께 나온다. 지난 18일 대한문 집회에서 만난 박모(74)씨는 고등학교 교감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등을 지고, '적폐 청산'한다며 법을 무시하고 좌파 인사들만 기용한다. 박 전 대통령 문제가 아니라 '보수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 같아 나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후원금 1500만원을 태극기 집회 활동가에게 보냈다.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공공 기관에 다닌다는 민모(56)씨는 올해 초까지 집회에 나간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두 차례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부패 스캔들이 없었던 정권이 없다. 보수 정권만 엄청나게 부패한 것처럼 하는 게 공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태극기 집회'는 초기엔 박근혜 정부와 전경련 등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고,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집회 때마다 많게는 8000명, 평균 3000명이 모인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참석하는 이들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마지막 날이던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현충원 앞 태극기 집회에서 만난 김무식(72)씨는 자비 120만원을 들여 주문한 태극기와 성조기 1000개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쓴 돈이 1000만원에 달한다. 김씨는 "김정은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미국이 중요하다"며 "애국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 돈은 쓸 수 있다.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방식도 변하고 있다. 예전엔 태극기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최근엔 시위 상황을 팟캐스트(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중계한다. 태극기 집회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집회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 남성은 "지지자들의 활동을 기록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형 카메라로 무료 중계를 한다"고 했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등록된 보수 팟캐스트 채널만 약 1500개에 달한다. 가장 인기가 있는 '신의 한수'는 구독자 수가 9만명, 동영상 수가 1600개를 넘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냉담하고, 때로는 모욕적인 반응을 감내하고 있다. 집회 관련 기사에는 '노인네들이 흔들어 젖히는 태극기 사진만 봐도 쉰내가 코를 찌르는 것 같다' '노인들 뒷목 잡는 것 보고 싶어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댓글이 달린다. 한 집회 참석자는 "노인들을 멸시 하는 댓글을 보고 오히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 결국엔 우리가 옳았다는 걸 젊은이들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태극기 집회' 주도 세력은 분화했다. 지난해 말부터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현 국민저항본부)'는 현재 '새누리당'과 '태극기혁명 국민운동본부', '대한애국당' 등 크게 3곳으로 나뉘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2/20171122001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