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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 더불어 곱게 늙어가는 중식당

산야초 2018. 2. 18. 23:47

손님과 더불어 곱게 늙어가는 중식당

  • 월간외식경영  

    입력 : 2018.01.19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동천홍

    담백하고 매콤한 하얀 짬뽕 ‘사천탕면’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것, 시간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아름답다. 식당도 그렇다. 세월이 스민 식탁과 식기, 식당과 함께 나이 든 낯익은 직원들, 그런 가운데 첫 맛을 꾸준히 유지하는 음식들. 바로 노포의 매력이다.

    서울 압구정동 <동천홍>은 어느새 스물다섯 살이 됐다. 사람으로는 청년의 나이지만 식당으로서는 노포로 접어드는 나이다. 드나들던 단골손님들이 청년에서 중년으로, 중년에서 초로의 나이로 변했다. 내 집처럼 편안한 얼굴로 식사하는 단골손님들 얼굴에 연륜이 묻어난다. 그들 앞에 놓인 음식만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변함이 없다.
    사천탕면
    사천탕면(8000원)은 <동천홍>과 역사를 함께 한 이 집의 대표 메뉴다.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주인장이 개업 전에 주방장을 데리고 일본 식당 벤치마킹에 나섰다. 우리 짬뽕과 사촌쯤 되는 메뉴들을 꼼꼼히 체크하고 장점을 접목해 내놓은 메뉴다. 1993년 문을 열 때부터 간판 메뉴로 출발해 지금껏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겉모양은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짬뽕의 원형인 초마면을 닮았다. 흰 색깔만큼이나 맑고 담백하다. 짬뽕에 들어간 고추기름의 느끼함이 싫은 사람에겐 최적의 대안 메뉴다. 그러나 국물이 매콤하고 시원한 것은 짬뽕 못지않다. 월남고추로 매운 맛을 냈다. 굴, 바지락, 능이버섯 등이 우러난 국물의 감칠맛이 뛰어나다. 바지락의 크기가 작은데 아마도 감칠맛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것 같다.

    희고 표면이 매끈한 면발은 목 넘김이 아주 매끄럽다. 입술에 닿는 촉감도 부드럽다. 해물들이 신선하고 부추 향이 은은해 입맛을 돋운다. 혼자 먹기엔 다소 많을 정도로 양이 푸짐하다.
    전가복
    신선한 해물의 제 맛 살린 보양식, 전가복

    전가복(보통 7만원, 대 11만원) 역시 이 집의 내력 있는 메뉴. 해삼, 전복, 새우 등 각종 해산물과 송이버섯, 아스파라거스, 죽순 등 건강 식재를 사용한 보양 음식이다. 대부분 당일 들여온 신선 재료로 조리해 재료의 내밀한 맛이 그대로 와 닿는다. 청색의 아스파라거스, 홍색의 새우, 백색의 자연산 송이가 연출하는 색감이 입보다 먼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사각형 무쇠 그릇에 전가복을 내온다. 음식을 모두 먹을 때까지 든든한 무쇠가 온기를 그대로 잡아둔다. 자연산 송이 향기가 다른 식재료들을 압도한다. 그 향기에 끌려 자연스럽게 송이부터 손이 간다. 탱글탱글한 전복 살이며 흐뭇하게 씹히는 해삼에 고량주가 빠질 수 없다. 예전에는 죽엽청주나 공부가주를 많이 찾았는데 요즘에는 연태고량주가 대세인 모양이다.

    전가복은 가급적 장에 찍어먹지 말고 그대로 먹는 편이 좋다. 싱겁더라도 재료의 본래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포 앞에 작은 대나무 숲을 조성했다. 대나무 숲을 통과한 겨울 햇살이 창으로 들어왔다. 전가복을 담은 사각 그릇에 대나무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래서였을까? 전복이며 해삼을 씹을 때마다 서걱거리는 댓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인천에는 배고픈 이웃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민들레국수집>이 있다. 부자들의 생색내기나 선심성 기부는 받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동천홍>이 이곳에 짜장 소스 80인분을 매주 일요일마다 나누고 있다고 한 직원이 귀띔했다.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이웃과 고객과 더불어 늙어가는 <동천홍>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173길 14    02-548-8887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김재연(월간외식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