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경양식 스타일 돈가스는 모두 맛이 없을까?

산야초 2018. 2. 15. 23:33

경양식 스타일 돈가스는 모두 맛이 없을까?

  • 월간외식경영  

    입력 : 2018.02.09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정광수의 돈까스 가게

    마니아들 먼저 알아본 경양식 스타일 우직한 돈가스

    일본에서 태어난 돈가스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다양하게 변주된 음식이다. 돈가스에서 추억을 느끼는 세대가 생겨났을 만큼 우리 식문화에 깊숙이 들어왔다. 서울 망원동 <정광수의 돈까스 가게>는 예전 경양식 스타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주인장이 경양식 집에 취직했을 때가 1990년대 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돈가스는 경양식 스타일을 고수했다. 주인장 정씨는 경양식 집을 나온 뒤 돈가스 집을 세 번 차렸다가 세 번 망했다. 이미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들어온 온갖 진귀한 음식들에 입맛을 들인 터였다. 돈가스가 더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도 고급스런 음식도 아니었던 것이다.

    돈가스도 변신했다. 일본에서 잘 나가는 돈가스를 닮아 고급화되기도 하고, 분식집이나 기사식당에서 양으로 승부하는 왕돈가스가 되기도 했다. 생존을 위해 고급화와 대중화로 변신하는 사이 경양식 스타일의 돈가스는 점차 사라졌다.

    정씨도 한동안 돈가스와 이별했다. 중고용품점 직원, 택배기사, 배송기사, 페인트 가게 점원, 에어컨 설치기사 등 다양한 삶을 살았다. 2007년, 망원동에 우연히 3평짜리 점포가 나온 것을 보고 네 번째 돈가스 가게를 차렸다. 월세는 쌌지만 좁고 찾아오기 불편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일부 돈가스 마니아들이 단골손님이 됐다.

    “제가 경양식 스타일 돈가스의 마지막 세대입니다. 이게 무슨 궁중음식도 아니고 특별한 전통음식도 아닙니다.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거 없어요. 그렇지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거금 600만원을 꾸어 투자해 차린 네 번째 돈가스 가게는 실패하지 않았다. 정씨는 그걸 운이라고 했다. 자기 돈가스는 맛이 없다고 말한다. 마침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됐던 시기였는데 손님들이 인터넷을 통해 너무 과대평가해 줘서 망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망치로 원육 두드리고, 직접 소스 맛 내고

    메뉴는 모두 다섯 가지다. 돈까스(7500원)는 기본 메뉴. 돼지고기 등심이 한 장, 그리고 안심이 한 장 나온다. 가지런히 놓인 포크와 나이프, 양배추 샐러드와 크림수프가 무척 경양식스럽다. 크림수프에 후추를 뿌렸더니 예전 경양식 집 냄새와 풍경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수프 맛은 편안했다. 아니 싱거웠다. 주인을 닮은 맛이다. 시중 제품이 아니고 주인장이 자신을 닮은 수프를 직접 끓여낸 듯하다.

    돈까스 곱배기(1만원)는 기본 돈까스에 안심 또는 등심 1장을 더 한 것. 동태살로 튀긴 생선까스(8500원)와 등심+덧살로 튀겨 두툼하고 씹는 맛이 좋은 왕돈까스(9000원)도 있다. 안심, 등심, 생선 골고루 먹고 싶어 하는 손님을 위해 콤보(1만1000원)도 마련했다.


    나이프로 조심스럽게 썰어 입에 한 조각 넣었다. 돈가스 좀 먹어봤다는 마니아들이 호평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맛있는 돈가스의 첫째 조건이다. 원육에 칼집을 내거나 기계로 두드리지 않고 망치로 직접 두드렸다. 좋은 식감은 그런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데미글라스 소스도 참 구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장이 청양고추로 담근 장아찌에 곁들여 먹으라고 귀띔했다. ‘삼겹살+고추장아찌’ 조합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 집은 망원동에서 몇 번 점포를 옮겼다. 지금의 자리도 2017년 11월에 이전해왔다. 충성도 높은 이 집 단골들의 숙원이었던 주차장 문제가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해결됐다. 가게 바로 앞이 ‘망원정(望遠亭)’이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돈가스를 맛본 뒤 망원정에 올라 잠시 망중한을 누려봄직하다.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준비시간이고, 매주 월요일은 쉰다.
    정광수의 돈까스는 예전 경양식 돈까스와 요즘 일본식 돈가스가 만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존재한다. 그 자신도 “내 돈까스는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참 싱거운 돈까스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짜고 매운 것만 살아남는 세상. 싱거운 것의 존재란 얼마나 귀한가! 요즘 세상에 싱거운 돈가스 하나 정도는 있어줘야 하지 않을까?
    서울 마포구 희우정로 5길 29, 02-324-8919

    글 사진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