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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경찰, '보행 위반자' 하루 수천명씩 연행… '有識層'은 엄벌… 서울 온 지방민은 훈방

산야초 2018. 3. 29. 22:58

[김명환의 시간여행] [114] 경찰, '보행 위반자' 하루 수천명씩 연행… '有識層'은 엄벌… 서울 온 지방민은 훈방

    입력 : 2018.03.28 03:12

    "여보세요, 이리 오십시오! 왜 차도를 걷습니까?"

    1962년 3월 7일 밤 서울 거리 곳곳에서 무심코 차도를 걷거나 무단횡단하던 시민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경찰관들의 고함에 깜짝 놀랐다. 보행 위반자에 대한 기습 단속이었다. 이날 적발된 1333명은 모두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어느 경찰서는 시민들을 경찰 트럭 짐칸에 태워 연행했다.

    1960년대에 차량 숫자는 오늘의 400분의 1도 안 됐지만, 행인들은 차량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차도 보행이나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고가 잦았다. 경찰은 차량뿐 아니라 보행자들에 대해서도 종종 일제 단속을 벌였다. 법규를 어긴 보행자를 연행해 형사 처벌하는 거친 단속은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8월 시작됐다. 당시 서울 시경국장은 "이제 시민의 자각과 협조에만 호소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목청을 높였다. 1961년 11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서울에서 즉심에 회부된 보행자는 1만634명이나 됐다. 이 중 44명은 유치장에 3일씩 갇혔다. 어떤 경찰 간부는 "간첩이 침투했다면 우리의 보행 관련 법을 몰라 당장 드러날 것이니 보행자 단속은 일석이조"라는 다소 황당한 주장도 폈다.

    1969년 서울 청량리에서 무단횡단 등으로 단속된 시민들을 경찰이 소형 트럭 짐칸에 태워 연행하고 있다(왼쪽·경향신문 1969년 5월 21일자). 오른쪽은 1975년 10월 서울 동대문 부근에서 보행 위반자들을 세워놓고 망신 주고 있는 ‘계도소’.
    1969년 서울 청량리에서 무단횡단 등으로 단속된 시민들을 경찰이 소형 트럭 짐칸에 태워 연행하고 있다(왼쪽·경향신문 1969년 5월 21일자). 오른쪽은 1975년 10월 서울 동대문 부근에서 보행 위반자들을 세워놓고 망신 주고 있는 ‘계도소’. /전민조

    위법 행위 단속 자체는 옳은 일이었지만 실적만 올리려는 경찰의 무리수가 문제였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인데도 거의 다 와서 빨간불로 바뀌었다고 바로 연행했다. 단속엔 사복경찰도 투입했다. 언론은 "몰래 숨어 있다 위반자를 잡는 경찰이야말로 사회질서를 해치는 얌체"라고 비판했다. 같은 위반자라도 누구는 과료를 물고 나오고, 누구는 가뒀다. 경찰에 내려진 지침을 보면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이나 위독한 환자, 산모, 노쇠자 등은 설유(說諭·말로 타이름) 조치하지만 '유식층(지식인)'은 엄벌"토록 돼 있었다(경향신문 1961년 8월 9일자). 1971년 한 해 적발된 보행자는 무려 262만 7522명으로 인구 12.2명 중 1명꼴이나 됐다.

    1965년 2월엔 벌금이나 구류보다도 위반자의 얼굴을 더 화끈거리게 만든 조치가 시작됐다. 사람을 길거리에 일정 시간 세워놓아 망신을 주는 벌이다. 1970년대엔 4각형 울타리를 치고 '보행위반자 계도소'를 만들어 위반자들을 몰아넣었다. 갇힌 사람들은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칠까 봐 얼굴을 가렸다. 한 상인은 신문 기고를 통해 "짐승 우리 같다"며 인권 유린 아니냐고 따졌다(동아일보 1971년 9월 7일자). 갇힌 신세가 동물원 원숭이 같아 계도소를 '몽키 하우스'라고도 불렀다.

    요즘엔 보행자 단속은 보기 어렵지만, 보행 위반자 문제는 진행 중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고가 한 해 7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교통사고 사망의 절반 가까이가 무단횡단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들이 철 맞아 지방 경찰이 보행자 단속을 강화하자 일부 위반자들은 "왜 단속하느냐"고 따진다고 한다. 정말 따질 건 단속이 아니라 보행 위반 문제가 60년 가까이 이어지는 우리의 후진성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