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홀릭/ ‘가깝고도 먼 나라’서 ‘가깝고 싼 나라 ’ 된 일본
[중앙일보] 입력 2018.04.01 16:29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전경. [사진 일본정부관광국]
직장인 오채원(29)씨는 지난해 12월 회사 동료 넷과 일본 돗토리 현을 찾았다. 대학교 3학년이던 이후 15번째 일본행이었다. 2박을 료칸(일본식 숙소)에서 머무르며 쓴 비용은 70만원 남짓이다.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하고, 하룻밤에 30만원 남짓하는 료칸도 넷이 나눠내니 1인당 7만~8만원만 부담하면 됐다. 나머지 교통비·식비·쇼핑까지 30만~40만원이면 충분했다.
오씨는 서울에서도 니치류(日流)를 즐긴다.
오씨는 “얼마 전 이자카야에 갔더니 일본인들이 많이 마시는 ‘하이볼(위스키 칵테일)’이 있어 반가운 맘으로 주문했다”고 말했다.
가성비·가심비 다 되는 일본?
여행업계에 종사하는 윤모(39)씨도 지난 1월 오사카에 다녀왔다. 출장과 여행을 합해 오사카만 열번 이상 방문한 윤씨는 이번엔 번화가를 피해 난바역 근처 작은 부티크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만 100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만족도는 컸다. 사흘 동안 오사카 교외 나카자키초 카페 골목서 소일하며, ‘가심비(마음의 만족)’를 마음껏 누렸다. 옛 일본풍을 간직한 나카자키초는 최근 오사카를 찾는 한국인의 필수 행선지로 떠오른 곳이다.
윤씨는 “골목마다 한국말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나카자키초(나카자키쵸)’로 검색하니 2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뜬다.
직장인 윤모(37)씨는 요즘 일본어를 배운다. 지난해 일본 여행을 네 번 다녀오면서 “현지 언어로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일본 여행은 2009년 신혼여행부터 시작됐다. 윤씨는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재미는 물론 사람들도 친절해 ‘어디든지 혼자 갈 수 있겠다’ 생각이 들 만큼 만만한 여행지가 됐다”고 말했다.
여행 후 SNS서 재소비, 일본행 촉매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가깝고도 싼 나라’가 됐다. 수년째 이어진 엔저(엔화 가치 하락) 덕분이다. 2012년 1월 100엔당 1499원까지 올랐던 엔화 값은 지금 1000원 정도다. 일본이 동남아를 제치고 ‘해외 여행 1번지’로 떠오른 이유다. 치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14만 명에 달한다. 인구 5177만 명(2017년 12월) 기준으로 7명 중 한 명은 일본에 다녀온 셈이다. 인구 14억 명인 중국의 방일 여행객(735만 명)은 우리와 비슷하다.
방일 여행객은 올해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1일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올해 1~2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151만 명으로 진 난 해 같은 기간보다 23% 늘어났다. 이는 중국인(134만 명)보다 더 많은 것으로 이 기간 일본을 방문한 해외 관광객 중 최다 규모다.
일본을 다녀온 이들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SNS)로 견문록을 전파하며, 재소비했다. 일본 여행 확산의 촉매제다. 엔저와 함께 저비용항공사(LCC)가 늘어난 것도 일본 여행을 부추겼다. 제주항공의 지난해 한·일 탑승객(왕복) 규모는 264만 명으로 지난 2014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좌석 점유율은 91%에 달했다.
20~30대, 외교 문제와 여행지 선택은 별개
반면 한국을 찾은 일본인 여행객은 지난 2012년 351만 명이 정점이다. 이후 곤두박질이어서 줄곧 200만 명대에 머물고 있다. 최근 북핵과 위안부 재협상 논란 등으로 더 줄었기 때문이다.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는 “상대적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정치적 상황에 덜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일종의 포스트 모더니즘 볼 수 있는데, 한일 관계를 국가적 관점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가 개인의 정체성을 앞세우는 쪽으로 진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강나현 기자 humane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