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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軍, 표범 만든다더니 고양이 될 판

산야초 2018. 4. 11. 12:41

[전문기자 칼럼] 한국軍, 표범 만든다더니 고양이 될 판

입력 : 2018.04.11 03:15

南北 정상회담 이후 '대화 무드'에 NLL 원칙 후퇴할까 우려 일어
안보는 말 아니라 軍事力이 기준… 軍 일부 무소신에 戰力 위축 걱정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9년 전인 1999년 6월 북한 경비정들이 연일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하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4대 교전(交戰)수칙'이라는 작전지침을 내렸다. '첫째, NLL을 지켜라. 둘째, 우리가 먼저 발포하지 말라. 셋째, 상대(북한)가 발포하면 교전수칙에 따라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 해군은 NLL 이남으로 연일 내려오는 북 경비정들에 고속정 함체(艦體)로 부딪치는 '밀어내기 전술'로 대응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1주일쯤 계속되다가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제1연평해전이 시작됐다.

해군 관계자들은 나중에 "4대 교전수칙은 통수권자의 잘못된 지시가 장병을 얼마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토로했다.

최근 군내에선 앞으로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이 끝나면 19년 전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대화와 평화 무드 속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다.

한반도 긴장 완화 조치로는 NLL, DMZ(비무장지대)와 관련된 것들이 꼽힌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합의된 서해 공동 어로구역, 평화수역 설정을 골자로 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안(案)이 '부활'할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북한 측은 그해 11월 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차 평양을 방문한 당시 김장수 장관이 "북측이 NLL을 인정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자, 그에게 "NLL을 고집하는 것은 북남 수뇌회담(정상회담)의 정신과 결과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여러 형태로 압박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해보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물론 송영무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NLL 문제 등에서 확고한 원칙을 고수하고, 이를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 핵심부가 받아준다면 일각의 우려는 기우(杞憂)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이에 대한 송 장관과 정권 핵심부의 행태를 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 장관은 김영철 방남(訪南)에 대한 불쾌감 표현이나 문정인 안보특보에 대한 비판 등 여러 차례 소신 발언을 해 보수층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한·미 연합훈련 시 미국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올 필요가 없다"는 등 현 정부 코드에 맞추는 발언도 자주 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방부는 더 한심하다.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나 군 적폐청산위원회, 시민단체가 군의 존립과 대민(對民) 신뢰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발표나 주장을 펴는 데도, 국방부가 제대로 반박한 적은 거의 없다.

이런 국방부와 군이라면 앞으로 정권 핵심부가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킬 체인(Kill Chain)' 등 전력증강 예산을 대폭 삭감하자"고 해도 과연 '노(No)'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지난달 우리 고위급 특사단은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뒤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김정은이) 확약(確約)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적 안보위협에 대한 대비는 상대방의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군사력 등 능력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앞으로 2~3개월 뒤부터 한국군엔 평화와 군축의 태풍이든, 군사적 긴장 고조의 태풍이든 거센 도전이 밀어닥칠 것이다. 송 장관은 국방 개혁으로 이런 상황 변화에 대처할 것이라며 "공룡처럼 (비대한) 군대를 표범처럼 날쌘 군대로 만드는 게 국방개혁의 목표"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부 세력의 군에 대한 흠집 내기, 힘 빼기식(式) 접근과 일부 군 수뇌부, 국방부의 소신 없는 태도는 한국군을 표범이 아니라 고양이로 만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0/20180410032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