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공주의 혼수품은 무엇이었을까
국립한글박물관 '덕온공주 한글 자료' 특별전연합뉴스 입력 2016.09.12. 11:58
국립한글박물관 '덕온공주 한글 자료'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정유중추길례시 왜주홍삭인장소입…"
길이가 5.4m에 이르는 기다란 분홍색 종이 위에 고운 한글 글씨가 가지런하게 쓰여 있다. 첫머리에는 "정유년 중추(1837년 음력 8월 13일) 혼례를 올릴 때 주홍색을 입힌 장에 넣어 보낸다"는 뜻의 문장이 있다.
이 문서는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1789∼1857)가 자신의 막내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가 중구 저동의 사가로 시집갈 때 챙겨준 혼수품의 목록을 적은 발기다.
당시 왕후가 애틋한 모정을 담아 보낸 혼수품의 종류는 노리개, 단추, 장식끈, 공책, 사발, 대접, 인두, 골무, 자물쇠, 망원경 등 200개에 달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혼수품 발기를 비롯해 덕온공주의 혼인 생활을 알 수 있는 한글 자료 4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덕온공주 한글 자료'를 13일부터 12월 18일까지 연다.
전시 개막에 앞서 12일 열린 간담회에서 김철민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이번에 나오는 유물은 대부분 최초 공개되는 것으로, 덕온공주의 혼수품 발기는 조선시대 공주 혼수품 발기 중 유일하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덕온공주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해 시집갈 때도 책 4천여 권을 들고 갔다고 한다"며 "전시를 통해 왕가의 품격 있는 문화생활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덕온공주는 불운한 인물이었다. 공주는 12살 무렵에 혼례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덕온공주는 8살에 오빠인 효명세자를 떠나보낸 뒤 2∼3년마다 상을 치렀다. 10살에는 큰 언니인 명온공주와 둘째 언니인 복온공주가 잇따라 숨을 거뒀고, 13살 때는 아버지인 순조가 붕어하면서 혼인이 늦어졌다.
그는 생원 윤치승의 아들인 윤의선(1823∼1887)과 결혼했으나, 7년 뒤인 1844년 5월 임신한 몸으로 헌종의 둘째 부인을 뽑는 행사에 참가했다가 점심을 먹고 체했고 그날 저녁에 세상을 떠났다.
전시의 1부 '1837년 덕온공주의 혼례'에서는 순원왕후가 덕온공주와 사위인 윤의선에게 각각 보낸 혼수품 목록을 적은 발기를 볼 수 있고,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덕온공주 혼례 물품이 함께 전시된다.
혼수품 발기에는 윤의선의 손자인 윤백영(1888∼1986)이 발신자와 수신자 등에 대한 정보를 적은 글이 남아 있다. 또 '단쵸'(단추), '쳔니경'(망원경) 등 현재와는 다른 우리말 어휘를 확인할 수 있다.
2부 '덕온공주의 혼인 생활'은 시집간 뒤 궁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공주와 사위에게 순원왕후가 부친 한글 편지가 중점적으로 소개된다. 편지에서는 유일하게 남은 자식인 덕온공주를 걱정하는 왕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공주가 직접 베껴 쓴 것으로 전하는 서적인 '일촬금'(一撮禁), '춘련'(春聯)과 새해에 운수를 점치는 책인 '제갈무후마상점'도 전시에 나온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번 전시에 증강현실(AR) 기법을 도입해 특정 장소에서 전시 설명문을 들고 있으면 종이에 비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21세기 첨단기술로 19세기 한글 자료를 만날 수 있도록 전시를 꾸몄다"며 "글자마다 담긴 모정을 느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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