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바그너 / 오페라 '로엔그린'

산야초 2018. 4. 25. 21:54



Wilhelm Richard Wagner - Lohengrin, WWV75

바그너 / 오페라 '로엔그린'

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로엔그린 전막

Herbert von Karajan, cond.

Berliner Philharmoniker

 

 

로엔그린 전막

Enrique I el Pajarero: Robert Lloyd
Lohengrin: Placido Domingo
Elsa de Brabante: Cheryl Studer
Friedrich de Telramund: Hartmut Welker
Ortrud, esposa de Telramund: Dunja Vejzovic
El heraldo del rey:- Georg Tichy

Claudio Abbado, cond.

Coro y Orquesta de la ?pera Estatal de Viena

(Wiener Staatsopernchor & Wiener Staatsopernorchester)

 

로엔그린 [Lohengrin]

 

'W.R.바그너'의 오페라.

 

작곡; W.R.바그너
종류; 오페라
구성; 전 3막
제작연도; 1850년

 

전 3막. 1850년 리스트의 지휘로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10세기 전반 브라반트의 왕녀 엘자는 남동생을 죽였다 하여 텔라문트백작에게 고소를 당한다. 이 원죄(寃罪)로부터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성배(聖杯)의 기사 로엔그린이 나타나 텔라문트를 무찌른다. 결백한 몸이 된 엘자는 로엔그린과 결혼하게 되는데, 로엔그린은 그녀에게 자기의 신원을 묻지 말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결혼식 날 엘자는 금단의 질문을 하고 만다.

로엔그린은 자기의 신원을 밝힌 뒤 마중 온 백조를 타고 성배가 있는 나라로 돌아가고 엘자는 크게 실망하여 죽는다는 내용이다. 특히 제1막과 제3막에서 나오는 전주곡 <신부들의 합창>, <입장행진곡> 등이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1976년 10월 국립오페라단(쿠르트 뵈스 지휘)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주요 아리아

 엘자의 기도,  나의 주여, 지금 나를 도와 주소서,  나의 호소를 들어 주소서,  결혼 행진곡,  나의 사랑스런 백조,

 

로엔그린(Lohengrin)
대본: 작곡자(바그너),  독일어
때: 10세기 초
곳: 안트워프
초연: 1850. 8. 28. 바이마르 궁정 극장
연주시간: 제 1 막 60분, 제 2 막 60분, 제 3 막 55분, 총 3시간 10분

 

등장인물

하인리히 데르 포오클러[독일왕(Br)],
로엔그린[백조의 기사(T)],
엘자[브라반트 공작의 딸(S)],
고트프리트[엘자의 남동생(묵역)],
테라문트[브라반트 백작(Br)],
오르투르트[텔라분트 백작의 아내(MS)],
그밖에 왕의 시종인 무사, 귀족, 귀부인, 백성, 시녀 등.

 

배경

바그너는 파리를 떠나 드레그덴에 있을 때, 오페라 『탄호이저』와『로엔그린』의 2편의 작폼을 작곡하였다. 1845년 여름부터 겨울까지는 작사에 몰두하였고, 작곡에 착수한 후에는 몇 년이 걸려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1849년 5월 당시의 드레스덴에서 전제정치에 대한 일대 혁명이 일어 났는데 여기에 휩쓸려 바그너는 정치범으로 몰려 바이마르와 스위스의 취리히로 몸을 피하였다. 그때『로엔그린』의 초연준비를 한 리스트는 이 작품을 1850년 8월 28일 바이마르 극장에서 발표하였다. 그러나 독일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그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이 오페라를 처음 듣게 된 것은 1862년 5월 15일 빈 가극장이었는데 그 날밤 아주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탄호이저』와 같은 오페라에서 보여준 여성의 사랑에 회의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종래의 낙천적인 그의 생각에 의문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에 야심을 품은 음모가인 텔라문드 백작은 순결한 엘자와 여기에 협력하는 기사 로엔그린에 의해 운명이 바뀌게 된다. 즉 엘자의 인간적인 약점에서 두 사람의 행복은 무너진다는 줄거리로, 바그너가 지금까지 생각한 여성의 사랑에 무조건 믿던 신뢰감이 이 작품에서는 흔들리고 있다. 여기서 바그너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일보 전진했다고 볼수 있다. 이 현실에서의 전진은 음악적인 수법에 있어서 현저한 성과를 보였는데, 이는 전에 발표한 작품에 비해 그가 수립할 악극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리아와 레시타티브는 말하는 선율(Sprech-melodie) 가운데 통합되어 있다. 또한 구성에 있어서도 핵심이 될 만한 주도동기(leitmotiv)가 확립되어 있으며, 등장인물의 인간적 심리 묘사가 면밀하게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는 화성적 음빛깔의 수단을 각별히 풍부하게 하여 이에 더 부합시켰다.

 

전주곡

이 전주곡은 바그너의 걸작 중의 하나로, 『그랄의 성배』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곡이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피를 받았다는 성배(聖杯)의 행렬을 묘사하였다. 수백 년간 몬살바트 산 위의 탑에 비장되어 일생을 바친 기사에 의해 수호되어 있다. 그리하여 천국같은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음악적으로 보아도 가장 독창적인 작품의 하나이다.

 

Overture

Mats Liljefors, cond.

Karelian State Philarmony Orchestra. Petrozavodsk 



 

제1막 : 안트워프의 세르데 강변

막이 오르면 세그데 강변 푸른 둑 옆에 거대한 거목과 나무가 있는 좌우에 귀족과 기사들이 서 있고, 중앙에는 임시로 만든 옥좌에 독일왕 하인리히 1세가 보인다. 왕 옆에 있는 군령사( 軍令使)가 신호를 하니 무대 위에 있는 나팔수가 팡파르를 분다. 왕은 안트워프를 방문한데 대한 취지를 말하고 훈시를 시작하는데 여기서 귀족들이 합창으로 화답한다. 왕은 동방의 국경지구에 불안을 일으킨 헝가리 군의 토벌을 위해 군대를 모집하려고 이 곳에 왔다면서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 브라반트 국의 영주인 고트프리트 공작은 미성년이므로 텔라문트 백작이 보살피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고트프리트가 행방불명이었다.

그리하여 텔라문트 백작은 부인 오르트루트의 꾀임으로 고트프리트의 누이인 엘자를 동생의 암살범으로 국왕에게 고소한다.(사실 백작의 아내 오르트루트는 높은 가문을 미끼로 하여 텔라문트로 하여금 정권을 잡게 하려는 생각으로 고트프리트를 마법(魔法)으로써 백조로 변하게 하여 멀리 보낸 것이다). 그리고 텔라문트는 그의 누이인 엘자가 영주의 작위(爵位) 상속을 받으려고 야심을 품은 나머지 동생 고트프리트를 죽였을 것이라고 왕에게 진언한다.

아무런 죄도 없이 문초를 받게 된 그녀는 왕의 배려에 의한 신의 재판을 받기로 승낙한다. 그리고 자기를 대신하여 텔라문트 백작과 싸울 기사는 엘자가 지난 밤 꿈에서 만난 기사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흰옷을 입고 시녀들과 같이 나타나 「엘자의 꿈(Elsas Traum)」이라는 유명한 노래로 왕에게 대답한다. "비참한 요즈음의 신세. 저는 혼자서 신을 의지하고 지냈습니다. 마음 속의 슬픔을 기도로써 씻어 버리고 있었습니다.(Ein-sam I teuben Tagen hab' ich zu Gott......)라는 말로 시작하여 꿈이야기를 한다. "베개 옆에 기사가 서 있었다. 은빛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등에 메고, 손에는 검, 허리에는 금피리를 차고 있다."고 말하여 그 사람만이 나의 불행을 구해줄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왕은 "신만이 이 사건을 재판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검을 빼어 땅을 가리키며 하늘의 재판을 구한다. 다시 말하자면 텔라문트 백작과 엘자의 결투로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때 나팔소리와 함께 시종의 무관이 엘자를 대신하여 싸울 기사를 불렀는데, 만일 없다면 엘자 자신이 텔라문트와 결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엘자와 시녀들이 한마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올렸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떠들기 시작한다. 2중창으로 된 백조의 합창이 절정에 달했을 때, 세르데 강 위에 한 마리의 백조의 인도를 받아 찬란한 복장을 한 기사 로엔그린이 작은 배를 타고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 기사는 엘자가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이것을 본 텔라문트는 놀랐지만 그보다 절망과 동포에 떤 사람은 그의 아내 오르트 루트였다. 백조의 목에 감긴 쇠사슬을 보니 바로 자기가 마법으로 백조로 변하게 한 엘자의 동생 고트프리트였기 때문이다.

로엔그린은 부드러운 노래로 백조를 위로하고 깊은 동정심을 보이며 백조를 돌려 보낸 후 육지로 올라온다. 엘자는 기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처지를 모두 그에게 말하면서 자기 대신 텔라문트와 결투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자 기사는 엘자에게 말하기를 "나를 믿어 주시오. 그리고 내가 결투에서 승리한다면 당신은 나의 아내가 되어주오. 그러나 내가 어디서 왔는가와 또한 이름과 혈통에 관해서는 절대로 물어봐서는 안된다"고 신중하게 납득시킨다. 그리고 나서 로엔그린은 엘자에게 「맹세를 구하는 노래(Nie sollst du mich befragen)」를 부르며, 또한 왕도 결투를 시작하기 전에 「왕의 기도(Konigs Gebet)」를 부른다. 왕의 명령으로 마침내 신의 재판이 시작된다. 기사와 텔라문트 결투는 얼마 안되어 기사의 승리로 끝나 환호성을 올린 청년들은 방패 위에 망토를 깔아 엘자와 기사를 태워 퇴장한다.

 

Act I

Heinrich der Vogler - Rena Pape

Lohengrin - Jonas Kaufmann

Elsa von Brabant - Annett Dasch

Friedrich von Telramund - Tomas Tomasson

Ortrud - Evelyn Herlitzius

Der Heerrufer des K?nigs - Zeljko Lucic

Daniel Barenboim, cond.

Teatro alla Scala di Milano, 2012

 

제2막 : 안트워프 성 안의 광장

때는 밤으로, 어두컴컴한 교회 계단 위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는데 결투에서 패한 텔라문트 부부이다(텔라문트의 아내 오르트루트는 프리스란드 후작의 딸로 이교도이며 마술사이다). 그들의 악한 간계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들은 이곳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남편은 불평을 하면서도 단념하고 있지만, 그의 아내는 또 다른 꾀를 알려주며 용기를 북돋운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엘자에게 로엔그린과 맹세한 서약을 파기하도록 하여 그의 신분을 폭로시키므로 위신을 떨어뜨리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엘자를 움직여서 로엔그린에게 금지된 질문을 하게 하든가 아니면 그를 죽이려고 한다. 로엔그린과 같이 마술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신체의 어느 부분이라도 조금만 짤리면 죽기 때문이다. 그때 엘자가 바람을 쏘이러 궁정의 발코니로 나타나 그녀의 행복을 노래한다. 이를 본 오르트루트는 복수심을 숨기고 그녀의 동정을 구하기 위해 소리없이 그녀의 방에 들어가 로엔그린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려고 한다. 그녀에게 다가간 오르트루트는 지금까지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며 동정을 구하자, 이제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는 엘자는 그녀를 용서하고 곁에 있게 한다.

오르트루트는 엘자 곁에 붙어 다니며 기사에 대한 의심과 불신의 마음이 싹트게 만든다. 밤이 밝으며 소집의 나팔소리가 들리자 귀족들과 기사들이 집합한다. 왕의 시종은 텔라문트 부처를 추방하는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엘자의 영지와 왕관, 신의 가호를 받은 로엔그린에게 브라반트 국의 영주로 임명하려 하지만 그 자신이 공작의 지위를 사양하기 때문에 "브라반트 수호자"라는 칭호를 준다. 그리고 이제부터 결혼식이 있을 것이며, 내일은 브라반트 공국의 군대를 인솔하고 왕의 소집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포고한다.

얼마 후 궁전으로부터 교회로 가는 혼례의 행렬이 시작된다. 엘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오르트루트가 나타나 「당신에게까지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는 저 기사는 마귀이다」라고 주장하여 그녀와 말다툼을 한다. 국왕과 로엔그린이 등장할 무렵, 텔라문트가 나타나 로엔그린을 신을 기만하는 사람으로 고소하고 그의 이름과 출생지를 밝힐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로엔그린은 왕에게도 그것은 밝힐 수 없으며, 만약 엘자가 원한다면 대답할 수 있다고 한다. 엘자가 교회 입구에 섰을 때 오르트루트가 다시 나타나 기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하여 그녀로 하여금 공포심과 아울러 의심의 싹을 한층 더 갖게 한다.

 

Act II

Heinrich der Vogler - Rena Pape

Lohengrin - Jonas Kaufmann

Elsa von Brabant - Annett Dasch

Friedrich von Telramund - Tomas Tomasson

Ortrud - Evelyn Herlitzius

Der Heerrufer des Konigs - Zeljko Lucic

Daniel Barenboim, cond.

Teatro alla Scala di Milano, 2012

 

제3막 : 성안의 신부 방

 

제3막 전주곡 - 축혼곡(Epithamism)

Karl Bohm, cond.

Vienna Philharmonic

 

Prelude - 축혼곡(Epithamism)

Michael Halasz, cond.

Slovak Philharmonic Orchestra

 

이 제3막의 전주곡은 제1막의 전주곡에 못지 않은 유명한 곡으로, 개막 전에 연주되는「축혼곡(Epithamism)」이다. 처음은 폭발할 것 같은 기쁨의 표현인데 환희의 동기로 시작한다. 이 전주곡은 종래의 오페라 서곡처럼 가극의 내용을 암시하든가 또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다음 무대에 연결되는 최초의 한 부분으로서 오페라의 전곡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이 특징이다. 목관 금관 심벌즈 등이 나오고, 장중한 트롬본의 테마가 울리면 중간부에서는 현악기와 관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인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다시 화려하고 웅장한 음악으로 되돌아간다. 이렇게 전개되다가 비극의 동기인 「금문의 모티브」가 위협하는 것같이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면서 끝난다.

전주곡에 뒤 이어 그 유명한「Treulich gef?hrt (Bridel chorus, 혼례의 합창)」으로 막이 오른다. 엘자와 기사는 왕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게 된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신혼을 축복하고 천천히 나간다. 단 둘이 남게 된 엘자는 기사의 신분에 대한 의심이 갑자기 솟아 올랐다. 더구나 남편이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자기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오르트루트의 말이 생각나자 더욱 흥분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굳게 언약한 맹세를 깨뜨리고 금단의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텔라문트가 심복 부하 4명과 함께 칼을 빼들고 습격을 해왔다. 그러나 기사는 재빨리 건네준 칼로 단번에 그를 넘어뜨린다. 텔라문트가 이렇게 갑자기 습격한 것은 로엔그린이 엘자의 금단의 질문으로 인해 신에게서 받은 힘이 소멸되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한 자의 하수인 노릇을 한 귀족들은 검을 떨어뜨리고 로엔그린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기사는 귀족들을 불러 텔라문트의 시체를 왕 앞에 옮기라 한 후 시녀들을 부른다. 실신했던 엘자도 왕 앞에 옮기도록 명령한다. 그곳에서 자기의 신분을 전부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Treulich gefohrt" (Bridal Chorus, 혼례의 합창)

Bridal Chorus (혼례의 합창)

London Symphony Orchestra

 

Bridal Chorus (혼례의 합창)

Rudolf Kempe, cond.

Wiener Philharmoniker

 

Bridal Chorus (혼례의 합창)

Janos Kovacs, cond.

Hungarian National Philharmonic Orchestra and Choir

 

Bridal Chorus (혼례의 합창)

Jose Aparicio, cond.

Napier Civic Choir and Hawke's Bay Orchestra

 

Bridal Chorus (혼례의 합창)-A Night at the Opera

James D. Moyer, musical director

PCC (The Pennsbury Community Chorus)

 

무대는 다시 세르데 강변으로 바뀐다. 나팔소리와 함께 브라반트의 군대가 등장한다. 그들은 로엔그린의 지휘로 국왕을 따라 동방으로 원정을 가려고 한다. 거기에 텔라문트의 시체와, 창백한 얼굴의 엘자, 갑옷을 입고 슬픈 표정을 한 기사 일행이 나타난다. 기사는 왕 앞에서 텔라문트를 죽인 이유를 설명한 후, 자신에 대한 엘자의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행복은 사라졌으며 그러기 때문에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며 자기 신분을 밝힌다. 그는 먼 몬살바트의 탑에 모셔 놓은 성배(聖杯)를 수호하는 기사의 한 사람으로, 그 나라를 통치하는 성배의 왕 파르지팔의 아들 로엔그린인 것을 자백하는데 일동은 이 말에 놀란다. 엘자의 질문으로 신성한 비밀이 깨진 이상 자기는 몬살바트에 있는 성배의 성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왕을 따라 동방으로 원정갈 수는 없지만, 왕이 이끄는 독일군은 혁혁한 승리를 거두고 적은 독일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때 로엔그린은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먼 나라에 (In fernem land)」라는 유명한 발라드 풍의 노래를 부른다. 그의 말을 듣고 실신한 엘자를 부축하며 자기는 신분을 밝혔기 때문에 신과 통하는 힘을 잃었다며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때 그를 맞으러 앞서 나타났던 백조가 가까이 온다. 이별을 앞둔 로엔그린은 엘자에게 동생은 멀지 않아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며, 그때를 위해 자기의 검과 피리와 반지를 엘자에게 준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그는 「로엔그린의 이별 (Lohengrins Abschied)」이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이 때 오르트루트가 나타나 자기의 승리를 자랑하며, 로엔그린을 먼 몬살바트까지 데려가지 않으면 안될 백조가 엘자의 동생인 고트프리트의 저주받은 모습이라고 기뻐한다.

 

In Fernem Land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먼 나라에 )

Rena Kollo, tenor

 

In fernem Land... Mein lieber Schwan Scala '12 (나의 사랑하는 백조)

Lohengrin: Jonas Kaufmann

Elsa von Brabant: Anette Dasch,

Ortrud: Evelyn Herlitzius,

Heinrich der Vogler: Rena Pape

Daniel Barenboim, cond.

Orchestra and Choir of Teatro Alla Scala

Director: Claus Guth

 

로엔그린이 꿇어 앉아 신에게 기도를 드리자 흰 비둘기가 배에서 내려와 백조의 목에 감긴 쇠사슬을 풀어준다. 그러자 홀연히 고트프리트가 나타난다. 기뻐하는 엘자에게 로엔그린도 기쁜 낯으로 동생을 인도한다. 이 광경을 보자 오르트루트는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린다. 로엔그린은 백조 대신 비둘기가 인도하는 작은 배를 타고 멀리 떠난다. 엘자는 동생 고트프리트의 팔에 안겨 비통한 나머지 정신을 잃고 숨을 거둔다.

 

Act III

Heinrich der Vogler - Rena Pape

Lohengrin - Jonas Kaufmann

Elsa von Brabant - Annett Dasch

Friedrich von Telramund - Tamas Tamasson

Ortrud - Evelyn Herlitzius

Der Heerrufer des Kanigs - Zeljko Lucic

Daniel Barenboim, cond.

Teatro alla Scala di Milano, 2012

 

 

로엔그린은 중세의 독일 전설에 나오는 기사의 이름이다. 로엔그린에 대한 전설은 13세기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 로엔그린 전설은 영국의 아서왕에 대한 전설과 연계되어 있다. 아서 왕에게는 원탁의 기사가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기사는 케이(Kay), 보르스(Bors), 가웨인(Gawain: Gawan), 랜스롯(Lancelot), 갈라하드(Galahad), 그리고 퍼시발(Percival: 파르치발)이다. 아서왕에 대한 전설은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신비의 칼 엑스칼리버에 대한 이야기, 아서왕을 도운 마법사 멀린(Merlin)에 대한 이야기, 아서왕의 왕비인 귀네베레(Guinevere: 즈느비에브)와 기사 랜스롯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이야기, 아서왕과 이복동생 모간 르 페이(Morgan le Fay)사이의 반목 이야기, 아서왕과 모르드레드(Mordred)와의 운명을 건 전투 이야기는 언제나 들어도 흥미있는 전설이었다. 그리하여 각 나라에서는 나름대로 아서왕의 전설을 편집하여 별도의 스토리를 개발하였다. 독일에서는 독일판 아서왕 전설이 등장하였다. 특히 성배의 기사 퍼시발(독일에서는 파르지발: Parzival))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라도 한번 쯤은 꿈을 꾸었을 성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아서왕과 엑스캘리버

 

성배의 기사 파르치발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이 로엔그린이며 둘째는 동생인 카르다이즈(Kardeiz)이다. 로엔그린은 아버지 파르치발의 뒤를 이어 성배의 수호기사가 되었고 쌍둥이 동생 카르다이즈는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아 다스렸다. 중세의 전설에 따라 로엔그린이 처음 등장할 때에는 로에란그린(Loherangrin)이란 이름이였다. 로에란그린이란 이름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보다 간편한 로엔그렐(Lohengrel)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중세의 작가들이 로엔그린이라는 부르기 좋은 이름을 만들어냈고 파르지발의 전설에 살을 붙여 성배의 로맨스와 이미 퍼져 있던 백조의 기사 얘기를 혼합하였다. 당시에는 파르지발의 아들 로에란그린이 성배를 수호하며 겪는 여러 모험담이 널리 알려진 전설이었으나 백조의 기사(Knigts of Swan)에 대한 전설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백조의 기사는 백조가 끄는 작은 배를 타고 불현듯 이나라 저나라에 나타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처녀들을 구원해 준다는 내용이다. 처녀들을 구해준다는 것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숭배사상의 일환이라고 한다. 중세의 음유시인들이 이 두가지 얘기를 혼합하여 더욱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엮어 나갔음은 물론이다. 즉 성배의 기사인 로에란그린이 백조가 끄는 작은 배를 타고 문득 나타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처녀들을 구원해준다는 내용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에 대한 이야기중 공통적인 새로운 사항은 누구든지 절대로 백조의 기사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만일 물어본다면 백조의 기사는 그 즉시 백조가 끄는 보트를 타고 저 멀리 떠난다는 것이다.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 역의 플라치도 도밍고

 

또 하나 전설로는 파르지발이 새로운 영지인 문잘배슈(Munsalvaesche)에 정착하여 ‘성배의 기사 종단’을 설립하였으며 종단(宗團) 사람들을 비밀리에 각 왕국에 보내어 영주들과 국왕들의 보호자로 활동케 했다는 것이다. 파르지발의 아들로서 역시 성배의 기사 종단의 멤버인 로엔그린은 브라반트 공국을 보호하는 임무를 받고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브라반트 공국(Duchy of Braband)은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에 있는 나라를 말한다. 브라반트 공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브뤼셀과 앤드워프였다. 이 브라반트 지역에서도 오래전부터 백조의 기사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브라반트에서는 백조의 기사를 헬리아스(Helias)라고 불렀다. 그리스의 태양신을 헬리오스(Helios)라고 부르는 것과 연관이 있는 명칭이다. 한편 독일에서 로엔그린에 대한 전설이 직접 얽혀 있는 곳은 클레브(Klev)에 있는 백조의 성(Schwanenburg)이다.

 

      

마침내 성배를 찾은 원탁의 기사 파르지발(앞에 무릎 꿇은 사람).

뒤에 있는 기사들은 보르스와 가완(가웨인)

 

중세의 가장 유명한 음유시인 겸 작가인 볼프람 폰 에센바흐(Wolfram von Eschenbach)는 성배의 수호기사와 백조의 기사에 대한 전설을 기초로 하여 파르치발(Parzival)이라는 타이틀의 낭만소설을 만들어냈다. 폰 에센바흐는 11세기 십자군이었던 고트프리트 폰 부이용(Godefroy de Bouillon: Gottfried von Buillon)이 쓴 Chansons de geste(십자군의 노래)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도 한다. 폰 에센바흐의 파르지발이라는 소설에 로엔그린의 활약이 등장한다. 고드프리 드 부이용이란 기사는 누구인가? 1099년 성지 예루살렘을 처음 탈환한 십자군 사령관으로 Lord de Bouillon(부이용의 영주)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탈환한후 예루살렘 왕국의 첫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왕(King)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Regent(통치자 또는 섭정)라고만 칭했다. 독일의 신비주의적 전설에 매료하고 있던 리하르트 바그너가 폰 에센바흐의 ‘파르치발’에서 스토리를 가져와 오페라 로엔그린을 완성한 것은 1850년이었다. 로엔그린은 그해 8월 28일 바이마르의 대공궁정극장(Grossherzogliches Hoftheater)에서 '로엔그린'의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바그너의 친구이며 초기 후원자였던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가 로엔그린 초연을 주선하고 지휘하였다. 초기 후원자라고 언급한 것은 나중에 바그너가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은밀하게 결혼하여 스위스로 가서 살았기 때문에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 이후로는 바그너를 적극 후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트프리 드 부이용 - 예루살렘 왕국 첫 통치자(Regent)

 

바이마르에서의 로엔그린 공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인들이 자기들은 우수민족이라고 하는 우쭐대는 정서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독일에서는 비록 사정상 로엔그린 전막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더라도 몇몇 발췌곡을 마련하여 콘서트의 주요 레퍼토리로서 삼게 되었다. 예를 들면 1막과 3막의 전주곡, 로엔그린의 아리아인 In fernem Land(먼곳으로부터), 2막과 4막의 오프닝 음악 등이다. 특히 엘자(Elsa)가 결혼식을 위해 성당으로 행진할 때의 Hier commt die Braut(신부 입장)은 혼례의 합창으로 알려져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서나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에 연주되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바바리아의 루드비히(Ludwig) 2세는 바이마르에서 로엔그린을 보고 특히 감동하였다.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왕은 일반 관객처럼 몰래 참석하여 관람한후 빠져 나갔다고 한다. 당시 바바리아 공국은 바이마르 공국과 정치적으로 복잡한 관계였기 때문에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가 로엔그린의 초연에 드러내놓고 참석하지 못하였던 것은 이해할수 있는 일이었다. 한편 당시에 바이마르 공국의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였던, 즉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국을 수립하자는 운동에 참여했던 바그너는 수배인물이 되어 잠시 외국으로 피신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초연에 참가하지 못했다. 로엔그린은 바이마르 초연이후 폴란드의 브로클라브(Wroclaw: 1854), 라트비아의 리가(Riga: 1855), 체코의 프라하(1856), 그리고 합스부르크의 비엔나에서 공연되었다.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일명: 매드 루드비히)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국왕은 로엔그린에서 백조의 기사에 대한 스토리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중에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환상적인 아름다운 성을 짓고 Neuschwanstein(새로운 백조의 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세에는 Stein(슈타인)이란 단어가 신비한 물건, 만물의 기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노이슈봔슈타인이라는 명칭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루드비히가 로엔그린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오페라 장면 중에 독일 통일을 바라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바그너는 자기를 극진히 후원하는 루드비히 왕을 생각하여 오페라의 도입부에 그에게 간접적이나마 독일 통일을 간곡히 권유하는 내용을 넣었던 것이다. 루드비히 국왕은 나중에 바그너에게 링 사이클을 공연할 별도의 무대가 필요하다고 조언하였고 이에 힘입은 바그너는 마침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을 완성하였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건설에 루드비히 왕이 많은 후원을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극장의 오프닝에는 독일의 여러 군주들과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주인공인 바그너는 도피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루드비히 왕이 건립한 노이슈반슈타인 성

 

여기서 잠시 성배에 대한 이야기를 부연해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때 사용했던 포도주 잔 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로마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흘러나온 물과 피를 담은 그릇을 그라일(Grail: 聖杯: 독일어로는 Gral)이라고 부른다. 즉, 아리마데 요셉이라는 사람이 십자가 아래에서 그리스도가 흘린 물과 피를 담았다는 것이다. 물은 영생을 말하며 피는 언약을 말한다. 그건 그렇고, 그후 이렇게 귀중한 성배가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세상의 수많은 성자와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헤맸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다만, 전설에 따르면 파르치발이란 사람이 성배의 수호기사로서 세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신성한 곳에서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로엔그린은 파르치발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배를 수호하는 거룩한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로엔그린은 신성함과 공의로움과 선함을 대변한다고 보면 된다.

 

                                       

로마 병사 롱기니우스가 십자가상의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장면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는 로엔그린을 아리안 민족의 우수함을 대표하는 인물로 부각시켰다. 이와 함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이야 말로 지상에서 성배를 차지해야 하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민족의 우수성 주장은 히틀러의 유태인 및 집시 박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히틀러의 나치는 유태인이 신성(神性)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장본인들이기 때문에 인류를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 따라서 성배를 지키는 아리안민족이 유태인을 증오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명이라는 괴상한 주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렇듯 히틀러의 유태인 증오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유태인 혐오에 있어서 히틀러 못지않게 유별나게 굴었던 사람이 바로 바그너였다. 예를 들어 바그너는 멘델스존이 유태계라는 이유를 들어 그의 작품까지도 연주하기를 싫어했다. 바그너는 멘델스존의 작품을 지휘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서는 언제나 하얀 장갑을 끼고 지휘봉을 들었다. 혐오스러운 유태인의 음악을 지휘하려면 장갑을 끼고 바톤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바그너는 멘델스존의 작품을 지휘하고 나서 곧바로 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런 바그너를 인생 후배인 히틀러가 존경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바그너를 존경한다는 것은 바그너의 음악을 존경한다는 뜻과 같다. 그래서인지 히틀러에 의한 나치 집회가 열릴 때에는 바그너의 음악이 자주 연주되었다. 로엔그린의 전주곡, 발퀴레의 행진곡, 탄호이저의 전주곡 등은 나치가 특히 사랑하는 곡이었다.

 

뉘른베르크에서의 나치 집회 (성배를 찾아 떠나는 기사단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치의 군중 집회, 특이 야간집회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이 자주 연주되었다.

 

다시 '로엔그린'의 작곡 배경을 살펴보자. ‘방랑하는 화란인’과 ‘탄호이저’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넘쳐 있던 바그너는 다음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온천장에 휴가를 가기로 했으며 휴가중에 읽을 책으로 폰 에센바흐의 ‘파르치발’과 게오르그 고트프리트 게르비누스(Georg Gottfired Gervinus: 1805-1871)의 ‘독일 시문학의 역사’(Geschichte der deutschen Dichtung: The History of German Literature: 독일문학사)라는 책을 들고 갔다. 독일문학사는 명가수(Meistersinger)와 한스 작스(Hans Sachs)에 대한 얘기가 자세히 수록되어 있는 책이었다. 바그너는 이 두 책자에 담겨진 독일적 시문학과 신화적 전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두 작품을 모두 오페라로 만들기고 하고 동시에 작업을 착수했다. 폰 에센바흐의 작품에는 ‘로엔그린’이란 타이틀을 붙였고 ‘독일 시문학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라는 제목을 붙였다. 두 오페라의 대본은 모두 바그너 자신이 썼다. 그 중에서 로엔그린이 먼저 완성되었다. 오페라 로엔그린은 1850년 바이마르 공국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그너는 정치적인 문제로 도피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로엔그린의 초연을 보지 못했다. 바그너가 로엔그린을 처음 본 것은 바이마르에서의 초연으로부터 11년 후인 1861년 비엔나 공연에서였다.

 

                

볼프람 폰 에센바흐(1310-1330: 갑옷입은 기사)

 

로엔그린은 전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시간은 1시간 15분 정도.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공연시간이 거의 4시간에 가까운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짧은 편이었다. 무대는 10세기경의 앤트워프. 브라반트 공국의 중심도시이다. 브라반트 공국은 작은 국가에 불과했지만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열강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작소니 대공국의 하인리히(Heinrich: Henry: Bass) 왕은 독일 통일의 대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비록 소공국이지만 중요한 위치에 있는 브라반트를 우선 동맹국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인리히 왕은  독일 통일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인근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브라반트에서는 텔라문트(Terlamund: Bar) 백작이 참석하였다. 브라반트 공국은 당시 왕위 문제로 상당히 곤란한 사정에 처해 있었다. 얼마전에 브라반트의 왕이 세상을 떠났으며 고트프리트 왕자가 곧 왕위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고트프리트(Gottfried) 왕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로엔그린 음반 표지(Peter Hofmann - Karan Amstrong: 바이로이트 축제)

 

브라반트 공국의 귀족들을 대표하는 텔라문트 백작은 선왕이 세상을 떠난후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까지 섭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트프리트 왕자가 새로운 국왕으로 등극한다면 섭정을 계속하지 못하게 될 입장이었다. 그러한 때에 고트프리트 왕자가 종적을 감춘 것이다. 고트프리트 왕자에게는 엘자(Elsa: Sop)라는 누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왕자가 끝내 나타나지 않으면 엘자가 왕위에 오를 수도 있다.  텔라문트 백작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텔라문트 백작과 부인 오르트루트(Ortrud: MS)는 엘자기 마법으로 왕자를 처치했으므로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르트루트 백작부인은 실은 악마로서 마법을 부릴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르트루트는 선한 사람들을 유혹하여 악을 저지르도록 부추켰다. 텔라문트의 욕심도 오르트루트의 꼬임에 빠져서였다. 텔라문트와 오르트루트가 엘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브라반트 공국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 때문이었다. 한편, 왕위에 오를 왕자가 사라져서 종적을 찾을 수 없다는 보고를 접한 작소니(Saxony)의 하인리히 왕은 직접 브라반트 공국을 방문하여 사태를 파악하기로 한다. 작소니 공국은 당시 독일 땅에서 가장 세력이 막강했던 국가였다. 이러한 배경 아래 막이 오른다.

 

                                

백조의 기사의 칼에 쓰러진 텔라문트 백작과 사악한 부인 오르트루트

 

로엔그린의 전주곡은 바그너의 다른 초기 오페라의 전주곡과 판이한 성격을 띠는 것이다. ‘방랑하는 화란인’이나 ‘탄호이저’의 전주곡(Prelude)은 모두 앞으로 전개될 극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것이다. 마치 베버(Carl Maria von Weber)의 ‘마탄의 사수’의 서곡처럼 앞으로의 스토리를 간접적으로 집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로엔그린의 전주곡은 성배에만 초점을 둔 예언적인 것이다. 성배의 수호기사가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성배를 수호하러 떠난다는 신비한 내용을 집약한 것이다. 로엔그린이 그의 이름을 비밀에 붙여야 했던 것은 이러한 신비성을 더해주기 위해서였다. 결론적으로 로엔그린의 전주곡은 신비스런 환희를 표현한 것이었다. 그래서 평론가들도 로엔그린의 전주곡을 들으면 ‘투명하게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마음의 평정과 우주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고 말하였으며 또 어떤 평론가는 이 전주곡이 성배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신비함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신비함은 이 오페라의 곳곳에서 느낄수 있다. 제1막 하인리히 왕의 기도장면, 제2막의 장엄한 대행진, 제3막에서의 전주곡과 혼례의 신성함을 그린 내용들이 그러하다. 성서에서 혼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처음 기적을 베푸신 것이 가나의 혼례잔치였다. 천국을 맞이하는 것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 있다. 혼인은 완성을 의미한다.

 

    백조의 기사와 엘자의 결혼식 장면

 

제1막.

작소니 대공국의 하인리히 왕이 브라반트 공국을 찾아오자 텔라문트 백작이 나서서 엘자 공주가 고트프리트 왕자를 살해한 것이 분명하므로 재판하여 달라고 소원한다. 귀족들을 대표하는 텔라문트 백작이 고소한 사항이므로 하인리히 왕으로서도 모른체 할 수 없었다. 하인리히 왕은 엘자에게 만일 무죄로 판정받고 싶으면 수호기사가 나타나 백작과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중세에서는 특히 종교적인 문제로 죄과를 명백하게 가리지 못할 경우, 피고인을 수호하는 기사가 선임되어 고소인과 결투를 함으로서 결백을 가리는 관례가 있었다. 이같은 내용은 월터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흑기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아이반호가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판정을 받은 유태처녀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수호기사로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브라반트 공국에서는 아무도 엘자 공주의 결백을 위해 수호기사가 되어 텔라문트 백작과 결투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름다운 엘자 공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당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날 밤 엘자 공주는 꿈을 꾼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늠름한 기사가 홀연히 나타나 자기의 결백을 위해 수호기사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엘자가 부르는 아리아 Einsam in trueben Tagen(고독한 이 밤에)는 엘자의 슬픈 심경을 잘 표현해 주는 곡이다.

 

            재판을 기다리는 엘자 공주

 

날이 밝았다. 다시 재판이 시작되었다. 정오까지 엘자를 위한 수호기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엘자는 화형에 처해질 운명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엘자가 꿈에 보았던 바로 그 기사가 빛나는 갑옷을 입고 백조가 끄는 작은 배를 타고 미끄러지듯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신비의 기사는 만인 앞에 늠름하게 등장하여 엘자의 수호기사가 될 것임을 선언한다. 모두들 백조의 기사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백조의 기사는 엘자에게 자기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서부터 왔는지 아무 것도 묻지 말아줄 것을 약속해달라고 말한다. 이때에 부르는 백조의 기사의 아리아가 Nie sollst du mich fragen(결코 묻지 말기를)이다. 엘자는 그같은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다. 드디어 미지의 기사와 텔라문트 백작과의 결투가 벌어진다. 텔라문트 백작은 브라반트 공국에서 제일가는 막강한 기사이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대결로 텔라문트 백작은 힘없이 쓰러진다. 그러나 백조의 기사는 텔라문트의 목숨만은 살려 준다. 엘자의 결백은 입증되었다.

 

            백조의 기사 그림

 

제2막.

텔라문트 백작과 악독한 부인 오르트루트는 복수를 위한 음모를 꾸민다. 엘자가 발코니에 나와서 이름 모르는 용감한 기사에 대한 연모의 심정을 노래할 때 어둠 속에서 나타난 오르트루트가 엘자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는다. 오르트루트는 그 기사가 마법을 쓰는 사악한 사람이며 결국은 엘자를 사랑하지 않고 떠날 것이라고 속삭인다. 한편 하인리히 왕은 텔라문트에게 추방령을 내린후 곧 이어 엘자와 백조의 기사와의 결혼식을 거행토록 한다. 당시에는 결투에서 이기거나 시합에서 이기면 부상으로 주인공 처녀와 결혼하는 것이 관례였다. 결혼식을 위해 앤트워프의 대성당에 입장하는 귀족들과 기사들의 대행진이 참으로 장엄하다. 이 오페라의 전편을 통해 가장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파트이다. 텔라문트 백작과 그의 부인 오르트루트는 악의 상징이다. 부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어서 악행을 저지르는 텔라문트 백작을 보면 마치 에덴동산에서 이브의 꾐에 빠져 죄를 짓는 아담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선의 상징인 백조의 기사가 악의 상징인 텔라문트 백작을 초인적인 능력으로 타파함으로써 악의 희생물이 될뻔한 엘자를 구한다. 백조의 기사는 마치 창세기에 나오는 세라프(Seraph)와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백조의 기사가 텔라문트 백작과 결투를 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오페라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강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엘자와 로엔그린의 결혼(현대적 연출)

 

제3막.

유명한 축혼가 Treulich gefuehrt(진심으로 인도하소서)가 신비스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엘자와 백조의 기사와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결혼식을 마친 두 사람은 사랑의 듀엣을 부르며 서로의 사랑을 다짐한다. Das susse Lied verhalt(감미로운 노래)라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듀엣이다. 신방으로 들어온 엘자는 백조의 기사가 자기에 대한 사랑이 식어 아무 말도 없이 떠날 것이라는 어떤 여인(실은 오르트루트)의 말을 기억하고 제발 누구인지 이름을 얘기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백조의 기사는 대답을 회피하며 만일 이름을 밝히게 되면 그 때는 엘자를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엘자는 아무래도 백조의 기사를 잃을 것 같아 이름이라도 알아 두려고 생각한다. 이때 두 사람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일념에 넘쳐 있는 텔라문트가 칼을 들고 뛰쳐 들어온다. 하지만 오히려 백조의 기사의 칼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만다.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백조의 기사는 하인리히 왕에게 더 이상 군대를 이끌고 외적으로부터 독일을 지킬수 없다고 하며 먼 곳으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이때 부르는 아리아가 Ach! Nun ist all' unser Glueck dahin(아, 이제 우리의 기쁨은 날아갔도다)이다.

 

       로엔그린과 엘자

 

오페라 로엔그린의 가장 중심 되는 메시지는 제3막의 ‘사랑의 2중창’이다. 바그너의 서정적인 천재성을 찾아 볼 수 있는 곡이다. 이 듀엣에서도 선과 악의 미묘한 대립관계를 엿볼 수 있다. 로엔그린은 엘자의 이름을 부드럽게 부름으로써 숭고한 사랑을 표현코자 했다. 그러나 엘자는 비밀에 쌓여 있는 그의 이름을 첫 번째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달라고 하면서 로엔그린의 사랑에 조건을 붙인다. 로엔그린은 그가 엘자의 결백을 무조건 믿듯이 자기를 믿어 달라고 말한다. 선함과 악함의 미묘한 대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과 악의 대립,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은연중 독일 통일의 염원과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통하여 신성한 성배의 기사가 독일을 수호한다는 점을 은근히 내세웠다. 다만 오르트루트와 텔레문트를 비롯한 몇몇 무리가 독일 통일을 위협하고 있지만 결국 정의로운 신의 능력에 의해 응징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폰 에센바흐가 쓴 파르지발에 의하면 엘자도 북구의 신인 오딘(Odin)과 프레야(Freya)를 믿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결국 엘자도 반기독교인이었으나 나중에 그리스도와 성배를 영접한다는 것이다.

 

                         

백조의 기사가 하인리히 왕과 엘자앞에서 스스로 로엔그린임을 밝힌다.

 

백조의 기사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시작한다. 자기는 성배의 수호기사인 파르지발의 아들로서 이름은 로엔그린이라고 밝힌다. 성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어 경외감을 표시한다. 백조의 기사는 이제 브라반트 공국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은 사라졌으므로 자기는 원래의 소임인 성배를 수호하러 떠나겠다고 말한다. 로엔그린은 함께 온 백조에게 Mein lieber Schwann(나의 사랑하는 백조여)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작별을 고한 후 마지막으로 엘자 공주에게도 작별을 고한다. 한쪽 구석에 있는 오르트루트는 이제야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때에 로엔그린이 하늘에 기도하여 백조를 마법에서 깨어나도록 한다. 고트프리트 왕자가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악마 오르트루트는 파멸한다. 고트프리트 왕자를 본 엘자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끝에 왕자의 팔에 쓰러질듯 안긴다.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은 이들을 두고 멀리 떠나며 막이 내린다.

 

                                                  

            로엔그린이 떠날 때 백조과 왕자로 변하여 쓰러진 엘자를 부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