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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비빔국수 아들의 복칼국수

산야초 2018. 4. 26. 21:19

어머니의 비빔국수 아들의 복칼국수

  • 월간외식경영  

    입력 : 2018.04.20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밀란국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서울 아현동 부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아현시장 내 <맛골분식>의 비빔국수 맛을 기억할 지 모른다. <맛골분식>은 그 시절 최고의 맛집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입소문으로 손님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아현동에서 이 집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 당시 인근 여자대학의 교지에 실렸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도시재개발로 점차 재래시장이 힘을 잃자 <맛골분식>의 명성도 차츰 빚이 바랬다. 13년 전 <맛골분식>은 서울 강남으로 이전했다. 이름도 <밀란국수>로 바꿔 달았다.

    비빔국수

    할머니 레시피대로 손자가 조물조물, 비빔국수

    아현동 <맛골분식>의 주역이 어머니였다면 <밀란국수>의 주역은 아들 이영준(66) 씨다. 식당 위치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식당 콘셉트도 시장 분식집에서 현대식 메밀국수 전문점으로 환골탈태했다. 식당 환경도 아현동에 비하면 대궐급이다.

    그렇지만 식당의 주 메뉴는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현대인 입맛에 맞게 조금씩 개선했지만 메뉴의 골간은 어머니의 레시피다. 주인장이 주방을 3년 전에 아들에게 넘겼으니 ‘할머니의 레시피’가 더 정확한 말이다.

    할머니의 비빔국수는 시장상인 여대생 동네주민 직업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사랑 받았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건 사람들은 싸고 맛있는 비빔국수를 먹을 때면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 국수를 든든히 먹고 사람들은 다시 힘을 내서 애오개(아현)를 넘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비빔국수(6000원)에는 할머니 때부터 지금까지 메밀이 들어갔다. 일종의 메밀국수다. 적지 않은 메밀이 들어갔음에도 면발이 차지다. 예전에 할머니는 손반죽을 하면서 엄청 치대셨다고 한다. 지금은 기계로 반죽해 원하는 물성을 얻고 있다. 

    비빔국수 맛을 좌우하는 건 역시 비빔장이다. 사과 배 파인애플 등 5가지 과일을 갈아 넣고 마늘과 고춧가루로 맛을 냈다. 양념의 핵심인 고춧가루는 아현동 시절부터 거래한 믿을만한 거래처에서 공급받고 있다고. 찐 달걀과 양배추 무채 오이채를 고명으로 올리고 참깨를 뿌렸다. 골고루 비벼 입에 넣으면 입 안 가득 새콤달콤함이 넘친다.

    밀란 샤브샤브
    건강에 좋은 국물, 샤브샤브와 복칼국수

    <맛골분식>이 <밀란국수>로 바뀌면서 메뉴구성에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어머니에서 아들 세대로 바뀐 세상의 입맛을 반영한 조치였으리라. 밀란 샤브샤브(1만원)와 복칼국수(8000원)가 새로 생긴 대표적 메뉴다.

    밀란 샤브샤브는 각종 채소와 멸치 뒤포리가 육수 맛의 중심을 잡고, 여기에 파인애플 사과 배 등의 과일로 단맛과 향을 다듬었다. 일종의 과일육수다. 연노랑의 맑은 육수를 팔팔 끓여 호주산 소고기 목심과 각종 채소를 데쳐서 먹는다. 소고기와 채소를 먹고 남은 국물에 수제만두와 메밀칼국수를 끓여먹는다.

    데친 소고기를 칠리소스나 겨자소스에 찍어먹기도 하지만 좀 더 맛나게 먹는 방법이 있다. 상추에 밥을 얹고 된장소스를 살짝 바른 상추쌈밥을 미리 내어오는데, 여기에 육수에 데친 소고기를 놓고 함께 쌈으로 먹는다. 남은 채소와 소고기를 모두 먹고 나면 육수는 각종 채소와 소고기 국물까지 우러나 더욱 진한 육수가 된다. 여기에 수제만두와 메밀칼국수를 넣고 마저 끓여먹는다. 이 만두는 주인장 부부가 직접 빚은 수제만두다. 주인장 모친이 타계한 3년 전까지만 해도 만두 빚기는 수십 년째 할머니의 몫이었다. 속이 알차고 손만두 특유의 손맛이 느껴진다.

    샤브샤브가 여성 선호 메뉴라면 복칼국수는 단연 남성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40%의 메밀이 들어간 메밀면을 제면실에서 직접 뽑은 칼국수와 밀복이 만났다. 육수에 미나리 대파 미역 미더덕 콩나물이 듬뿍 들어갔다. 모두 숙취해소엔 최고의 재료들이다. 육수가 끓으면 먼저 칼국수를 건져 먹는다.
    복칼국수
    겨자소스에 찍어 먹는 복어 살도 맛있지만 복어국은 역시 국물이다. 시원함의 깊이를 알 길 없는 국물을 훌훌 마시면 카오스의 뱃속이 순식간에 코스모스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남은 국물에 달걀과 김가루를 넣고 죽을 끓여 마무리 한다. 함께 먹는 배추김치와 얼갈이김치의 맛이 일품이다. 예전 할머니가 담갔던 김치 맛을 이어왔다고.

    3년 전, 아버지로부터 주방을 넘겨받은 20대 후반 아들은 온고지신의 자세로 손님들에게 더욱 사랑 받는 식당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한다. 할머니의 비빔국수와 아버지의 복칼국수에 이어 미래에 어떤 음식을 선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서울 강남구 개포로28길 4, 02-574-3216

    글 사진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