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의 개발사
이지스 시대를 열다
개발의 역사
최초의 이지스함
타이콘데로가급(Ticonderoga Class) 순양함은 이지스 전투 체계(Aegis Combat System, 이하 이지스)를 최초로 탑재한 미 해군의 전투함이다. 현재 주요 해군 열강들이 운용중이거나 도입을 예정하고 있는 최상급 주력함들이 이지스나 이와 유사한 기능의 전투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타이콘데로가급은 가히 새로운 무기의 역사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타이콘데로가급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지스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광의의 의미로 이지스는 1,000km에 달하는 탐지 거리를 자랑하는 AN/SPY-1 계열의 S밴드 비능동형 위상배열 레이더(이하 AN/SPY-1)와 이와 결합된 고성능 컴퓨터 그리고 각종 요격 수단을 통합한 전투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강력한 눈과 두뇌 그리고 주먹을 함께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이지스 전투함은 대함, 대잠, 대지 공격 능력까지도 보유하고 있지만 이지스라는 이름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나의 방패에서 따왔다는 점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함대나 지역의 방공이 가장 큰 목적이다. 어쩌면 수세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런 전투 체계는 제2차 대전을 통해 얻은 경험과 냉전시기에 가장 큰 위협이었던 소련 해군의 전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공격과 방어
20세기 초반에 바다의 제왕으로 군림한 전함들은 함대함 포격전을 염두에 두고 강력한 거포를 주먹으로, 두터운 장갑을 방어 수단으로 택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해전과 관련한 패러다임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전함의 사거리 밖에서 함재기를 출격시키는 항공모함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전함의 장갑은 두터웠지만 함재기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던지는 폭탄의 비를 견딜 수 없었다.
물량 대결에서 경쟁할 수 없었던 일본은 결국 패했지만 하늘에서의 공격으로부터 고통을 겪은 것은 승자인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불사한 가미카제의 자폭 돌격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미국은 이처럼 거대한 전쟁을 벌이며 터득한 전훈을 통해 함정과 함대의 방공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습하는 적기를 빨리 발견하고 최대한 멀리서부터 요격하는 것이었다.
강력한 레이더와 요격 수단을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요구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대응책 중 하나가 공중조기경보기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대함미사일이 본격 전력화되면서 레이더와 요격기만으로 함대를 방어하기가 어려워졌다. 당시는 고속으로 비행이 가능한 미사일의 존재는 파악할 수 있어도 회피나 기만 외에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의 항공모함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소련이 수립한 다량의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수상함과 폭격기에서 일거에 투사하는 전략은 엄청난 공포를 불러왔다. 이에 미국은 공격 징후가 포착되면 장거리 요격기나 공격기 등을 이용해 선제 격파하는 대응책을 수립했으나 이미 발사된 미사일을 차단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컸다. 함대를 보호할 강력한 방어선이 요구되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미 1958년에 타이폰(Typhon)으로 명명된 전투 체계의 연구가 시작되었던 적이 있었으나 기반이 취약해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 기술력이 향상된 1970년대 중반에 연구가 재개되어 원거리에서 목표물을 추적할 수 있는 고성능 레이더, 초음속 대함미사일까지 요격할 수 있는 초정밀 대공미사일 그리고 위험도를 정해 전투 순위를 자동으로 정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결합된 이지스가 마침내 탄생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처럼 이지스는 대공 방어 체계로 개발되었으나 현재는 고고도를 비행하는 탄도탄까지 요격할 수 있을 만큼 작전 능력이 향상되었고 공중, 해상, 수중 전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통합 전투 체계로 변모했다. 어느덧 실용화 된 지 40년 가까이 되었지만 계속 진화를 거듭하며 최고의 전투 체계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타이콘데로가급은 이를 최초로 탑재하며 새로운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이지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AN/SPY-1은 개량형을 사용하는 지금도 상당히 크기가 큰 편인데, 초기에는 탑재에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버지니아급(Virginia Class) 핵추진 순양함에 장착을 예정했으나 오일쇼크, 베트남 전쟁 등의 여파로 고가의 건조비 등이 문제가 되어 취소되고 대신 한창 양산 중이던 스프루언스급(Spruance Class) 구축함의 선체가 플랫폼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배수량이 1,500여 톤이 더 나갈 만큼 선체를 늘렸음에도 억지로 꾸겨 넣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지스를 장착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때문에 후속한 알레이버크급(Arleigh Burke Class) 구축함과 달리 4개의 위상배열 레이더가 일렬로 연결되지 못하고 두 개의 구조물에 각각 나뉘어져 있다. 이렇게라도 조속히 획득하려고 했을 만큼 당시 미 해군은 소련의 공세 전략에 상당히 다급한 상황이었다.
1983년 1번함 CG-47 타이콘데로가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실전 배치된 동급함은 함대 전체의 방공이 목적이고 배수량이 1만 톤에 육박하면서 미사일 순양함(CG)으로 구분되지만 사실 구축함보다 조금 큰 수준이다. 1983년부터 1994년까지 총 27척이 건조되었는데 외형상으로 크게 2개의 모델로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는 초기형은 Mk26 쌍발 미사일 발사대를, 후기형은 122셀의 Mk41 수직발사관을 장착하고 있는 점이다.
초기형 5척은 내구연한이 남았음에도 Mk26 발사대로는 SM-3와 토마호크를 사용할 수 없어 지난 2005년까지 전량 퇴역 처리되었다. 그중 4번함 CG-50 밸리포지(Valley Forge)는 훈련 표적함이 되어 하와이 인근에서 공격을 받고 수장당하기도 했다. 이후 국방비 절감을 위해 꾸준히 감축할 예정이었으나 미사일 방어에 대한 전력 보강이 요구되면서 2012년 개장을 해서 최대 40년 이상 운용할 예정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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