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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로 간 조선시대 미라

산야초 2018. 5. 22. 21:58

[주간조선 단독] 국과수로 간 조선시대 미라


입력 2018.05.20 13:58


“‘컨탬’ 조심합시다.” 정종민 연구관이 말했다. 일회용 헤어캡과 팔토시, 라텍스 장갑을 벌써 착용한 채였다. 같은 차림의 곽성신 연구사는 작업대 위에 메스와 작은 보관용기를 조심스럽게 늘어놨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원주 본원에서 들고 온 도구들이었다. ‘컨탬’은 컨태미네이션(contamination), 즉‘오염’을 뜻하는 준말이다.


지난 5월 15일 고려대 의대 내 ‘지역법의관 사무소’ 안이었다. 이 사무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대학들과 협약을 맺고, 시신 부검을 할 수 있도록 대학 내에 설치한 일종의 작은 분소다. 서울에선 3개 대학에서 운영 중이다. 고려대, 서울대, 가톨릭대다.


2016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출토된 남성 미라다. 내부 장기 검사를 위해 복부 부위를 절개했다. 머리 옆에 놓여 있는 것이 절개한 복부다.

문 밖이 갑자기 소란스럽다. 카트 바퀴 소리다. 서둘러 헤어캡을 뒤집어썼다. ‘애써서 검사했는데 시료를 오염시킨 기자의 고향이나 알아냈다’는 원망을 들을 순 없었다. 좁은 침대 모양을 한 카트가 천천히 들어섰다. 카트의 탑승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덮어쓰고 있다. “그냥 카트 위에서 합시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가 말했다. 역시 ‘컨탬’가능성 때문이었다. 흰 천을 들췄다. 투명한 비닐 아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뼈와 살이 모두 온전한 시신, 미라였다. 얼핏 봐도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다.

비닐을 자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김 교수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스치는 듯했다. ‘미라 전문가’인 그에게도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국과수 연구팀이 최초로 미라 연구에 동참하는 순간이니 말이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가 오른쪽 정강이의 절개한 부분을 봉합 중이다. 명주실로 꿰맸다. 봉합해 놓은 왼쪽 다리의 절개 부위를 확인하고 있다.

400년 전 40대 이상 추정

미라의 상태는 놀랄 만큼 온전했다. 피부색만 어둡게 변했다 뿐이지 몸이며 얼굴 생김이 생생했다. 손톱과 머리카락도 그대로였다. 2016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견된 이후로도 보관을 잘 해온 듯했다.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냉장고가 이 가칭 ‘김의정’ 미라의 임시 거처다. 의정부라는 발굴 지명을 딴 가칭이다. 김한겸 교수팀은 김의정 미라가 400년 전에 생존했고 적어도 40대 이상이라 추정한다. 같이 있을 법한 묘비석은 아쉽게도 못 찾았다. 입고 있던 옷과 칠성판, 만사 등 함께 출토된 물품은 각기 다른 기관들에서 연구 중이다. 칠성판은 관 바닥에 까는 널빤지다. 북두칠성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놔서 칠성판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엔 북두칠성이 시계였다. 북두칠성만 찾으면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시간에 15도씩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어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계의 태엽이 끝나면 죽음이다. 다시 새로운 시간을 받으러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셨다’고 할 때, 돌아가는 그곳이 바로 북두칠성이다.


사망원인은 뭘까. 출토 이래 김한겸 교수팀은 여러 가지 검사를 하며 연구를 해왔다. 추정되는 사망원인을 일단 3가지로 추렸다. 첫째, 심혈관 질환이다. 미라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비만 체형이었다. 신장 169㎝에 생존 당시 추정 몸무게는 90㎏이다. 특히 복부 부분의 지방층이 현저히 두꺼워 보였다. 검사 결과 동맥경화가 관찰됐다. 둘째, 폐디스토마다. 이름 그대로 사람의 폐 안에 들어가 사는 기생충이다. 번식을 위해 숙주인 사람이 기침을 하게 만든다. 알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서다. 폐디스토마에 걸리면 기침이 나오고, 마치 결핵처럼 피 섞인 객담을 뱉는 이유다. 김 교수는 2004년 대전에서 발견된 ‘학봉 장군 미라’ 역시 폐 질환과 디스토마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조선 전기에 양반계급에선 민물생선을 날로 먹는 식생활이 일반적이었다. 기생충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었단 얘기다. 세 번째는 간경화다. 최종 결론은 앞으로 발표할 보고서에 담을 예정이다.


정종민 연구관이 메스를 들었다. “일단 모발부터 채취할게요.” 머리카락은 많은 얘기를 해준다. 한 달에 약 1㎝씩 자란다. 긴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지난 몇 년간 뭘 먹었는지, 어떤 약물을 복용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중금속 함유량 등을 통해서다. 정 연구관이 조심스럽게 메스를 움직여 머리카락을 모근째 떼어냈다. 머리가 엉켜 있어 분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자세히 보니 상투였다. 그것도 ‘쌍상투’였다. 정 연구관은 상투를 고정한 검정색 끈도 조금 잘랐다.


4개과 드림팀 떴다

다음은 근육조직. 김 교수와 정 연구관 사이에 은근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정 연구관은 검사를 위한 시료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고 싶어하고, 김 교수는 미라를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원형 그대로 지키고 싶어했다. 두 사람 각자의 직업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살릴 수 있는 방법만 고민해온 의사와, 사건 해결을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는 데 골몰해온 국과수 연구관의 차이라고 할까. 잠깐의 실랑이 끝에 허벅지 뒤편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절개해도 정면에선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근육을 떼어내던 정 연구관이 조그맣게 탄성을 내뱉었다. “400년 전 시신이라기엔 정말 보존이 잘되어 있네요.” 김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 미라의 특징은 탄력성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이집트 미라나 남미의 미라와 다른 점이에요.”


이번엔 뼈를 잘라낼 차례다. 오염을 막기 위한 일회용 칼날이 등장했다. 재사용하는 손잡이에 연결하니 손바닥 두 배 길이의 작은 톱이 됐다. 미리 오른다리 대퇴부 쪽을 옆으로 절개해놨다. 정 연구관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톱질을 했다. 채취한 뼛조각은 즉시 플라스틱 용기 안으로 옮겼다. “저희 과는 피부 표면과 치아도 필요합니다.” 옆에서 곽성신 연구사가 말했다. 정 연구관은 법유전자과, 곽 연구사는 법화학과 소속이다. 국과수는 이번에 4개 과에서 미라 연구를 진행한다. 법유전자과와 법독성학과, 법화학과, 중앙법의학센터다. 법유전자과에선 뼈나 모발에서 DNA를 추출해 미라의 신원을 추정한다. 법독성학과에선 독극물 함유량을 분석해 사망원인을 찾아낸다. 법화학과에선 뼈나 모발을 분석해 이 사람이 생전에 어디에서 살았는지를 추정해본다. 중앙법의학센터는 미라의 생전 얼굴을 복원한다.


치아는 쉽게 분리됐다. “치아를 한 개만 빼도 자칫하면 나머지 치아가 다 같이 빠질 수 있어요.” 김 교수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직접 미라의 입안에서 치아를 분리했다. 소중하게 받아드는 곽 연구사에게 왜 치아가 중요한지 물었다. “뼈는 계속 자라는데 치아는 일생 동안 안 변합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정보를 갖고 있는 셈이에요. 스트론튬 같은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해 시신이 어디에서 살았는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아프리카계 사람이라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살았는지 미국에서 살았는지에 따라 스트론튬 비율이 다를 수 있어요. 스트론튬은 그 지역의 식생과 관련이 있거든요.”


지난 3월 진(Genes)이라는 학술지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미 연방수사국(FBI) 법과학자가 발표한 논문이었다. 4000년 전 이집트 미라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보스턴박물관이 소장한 ‘이집트 총독 부부’ 미라였다. 부부가 함께 매장된 데다 머리만 남은 탓에 이 미라가 남편인지 부인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연구로 남편의 미라라는 걸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이집트 상류층이었던 이 총독이 인종적으로 유라시아계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북아프리카인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 일종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 DNA는 총독의 모계 쪽 선조가 유라시아에서 왔다는 걸 보여줬다. FBI의 연구팀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에서 시도해본 검사법을 이용해 심각하게 훼손된 시신을 조사할 수 있는 범죄 수사 기법을 확립한 게 성과”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고유전학 연구에 도움을 준 부수적인 성과도 올렸다.


연내 연구결과 발표

국과수가 이번에 미라 연구에 동참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 국과수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동아시아인 특유의 손기술에, 짧은 기간에 대형 재난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외부적 조건, 빨리빨리 근성이 큰 몫을 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는 타다 남은 뼛조각으로 돌아온 승객들의 신원을 3구 빼고 모두 알아냈다. 강호순이 연쇄살인마라는 걸 밝혀낸 것도 국과수였다. 추가 범죄를 부인하던 강호순은 국과수가 현장 유류품에서 다른 피해자의 혈흔을 찾아내자 결국 여죄를 인정했다. 미라를 통해 오래되고 부패한 시료를 분석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면 지금까지 해결 안 된 ‘콜드케이스(미제사건)’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날 미라에서 채취한 시료엔 내장조직도 포함됐다. 색은 하얗게 변했지만 내장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법화학과 민지숙 박사는 냄새도 연구해볼 계획이다. 왜 미라에선 부패 냄새가 거의 안 나고 향긋한 소나무 냄새가 날까, 원인을 찾겠다는 것이다.


미라 시신을 관찰하는데 왼쪽 옆구리 쪽이 눈에 거슬렸다. 들여다보니 작은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다. 염할 때 시신을 싸는 염습지로 보였다. 역시 보관함으로 옮겨졌다. 미라는 시대와 매장 양식, 시신이 사망한 계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 전기, 귀족, 겨울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만나 탄생하는 경우다. 조선 전기에 국가적으로 회곽묘를 권장했다. 관 주변에 생석회 갠 물을 부어 굳히는 방식이다. 마치 관 전체를 시멘트로 밀봉해놓은 식이 된다. 이때 생석회에서 열이 발생한다. 관 내부가 무균 상태가 된다. 시신이 썩지 않을 충분조건이 갖춰진단 얘기다. 생석회는 당시 공급이 한정돼 있었다. 회곽묘를 양반층밖에 쓸 수 없었던 이유다. 겨울에 사망해야 부패가 시작되기 전에 매장될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 이후부턴 물자가 귀해져서인지 매장 방식이 또 바뀌었다. 이런 이유로 미라는 조선 전기에 조성한 양반의 묘에서 집중적으로 나온다.


시료 채취엔 2시간이 걸렸다. 미라가 다시 임시거처로 돌아갈 시간, 김 교수가 바늘을 들고 다가섰다. 명주실을 꿰어 절개한 부분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정강이 부분이 감쪽같이 붙었다. 기분 탓인지 미라의 표정이 평온해진 듯 보였다.


미 라의 큰 체격과 쌍상투 머리 모양은 무엇을 의미할까, 모발과 치아는 어떤 역사를 담고 있을까, DNA가 말해주는 그의 기원은 어디일까,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한겸 교수는 2년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올해 안에 결과를 발표한다. 국과수의 미라 연구도 올해 안에 결과가 나올 듯하다. 이들을 통해 ‘김의정 미라’는 후손들에게 어떤 비밀을 알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