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비제 / 오페라 '카르멘'

산야초 2018. 8. 10. 23:58

 

     



         

                                                 


 Bizet, Carmen

비제 / 오페라 '카르멘'

Georges Bizet 1838-1875


 

 

1875년 3월 3일,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객석에는 유명 예술가들이 가득했습니다. 작곡가 들리브, 구노, 뱅상 댕디, 오펜바흐, 마스네뿐만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 2세 같은 문인들도 이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요. 오페라 <카르멘>을 남긴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

비제는 뛰어난 신진 작곡가에게 주는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 유학했고, <닥터 미라클>(1857), <진주잡이>(1863), <페르트의 아름다운 처녀>(1867), <자밀레>(1872) 등의 오페라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특별한 ‘히트작’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 <카르멘>에 유난히 공을 들이고 열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자리 성공이었습니다.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에게서는 대단한 찬사를 얻었지만,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거든요.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에 감탄하며 공연을 20회나 관람했고, 철학자 니체는 “음습하고 우울한 독일적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찬란한 태양의 음악”이라고 말하며 “풍요롭고 정밀한 동시에 건축적으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카르멘>을 극찬했습니다. 훗날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카르멘>의 악보를 연구하라. 음표 한 개도 버릴 것이 없다”는 찬사까지 이 작품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음악적으로 탁월한 오페라가 대체 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까요?

전통적 여성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여자 카르멘

가장 큰 이유는 카르멘이라는 여주인공의 독특한 개성 탓이었습니다. 대체로 ‘청순가련형’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소프라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이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소프라노도 부릅니다)은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인물이었거든요. 마리아 칼라스는 <카르멘> 전곡 음반을 남겼고 독창회에서 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노래하기도 했지만, 카르멘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서는 일을 꺼렸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칼라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카르멘은 남자의 내면을 지닌 강한 여자죠. 하지만 저는 상당히 여성적인 성격이고, 여성적인 역할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 배역으로 무대에 서는 걸 원치 않아요.”

게다가 당시 오페라 코미크 극장은 가족이 함께 공연 나들이를 하거나 맞선을 보는 데 주로 사용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시라는 하층민이 떼로 등장해 밀수를 하고, 점을 치고, 결투를 벌이다가 결국 치정살인으로 끝나는 오페라를 봐야 하니 관객은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특히 초연 때 카르멘 역을 맡은 가수 셀레스틴 갈리 마리의 관능적이고 공격적인 연기는 관객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카르멘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도, 당시의 관객은 이런 여주인공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의 원작 <카르멘>(1845)에 비하면, 오페라 속 카르멘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훨씬 순화된 캐릭터인데도 말입니다.


 

안달루시아의 집시, 최하층 노동자 계급의 여자 카르멘

집시는 유럽에서 유태인보다도 더 심하게 천대와 박해를 받아온 소수민족의 하나입니다. 본래 서남아시아에 살던 인도 아랍계 유랑민족인 이들은 살던 땅에서 내몰린 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나라에 따라 ‘신티/로마, 마누슈, 히타노’ 등으로 불리는 이들 집시는 어느 나라에서든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법적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밑바닥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도둑질, 암거래, 밀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도피, 유랑생활을 계속하게 된 것이죠. 카르멘은 불같은 매력을 가진 집시 여성으로 당시의 도덕적 여성상에 반하는 야성적인 캐릭터다.

신대륙을 정복하고 나서 남아메리카 선주민들에게서 담배를 배운 유럽인들은 유럽 곳곳에도 대규모의 담배공장을 지었는데,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세비야 담배공장 노동환경의 열악함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도 통풍이 되지 않는 작업장 안에 5백 명쯤 되는 여자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담뱃잎을 말았습니다. 이 당시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란 신분 면에서나 보수 면에서나 최하층 노동자에 속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안달루시아의 집시들이었고, 카르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봐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이렇게 시작되는 카르멘의 아리아 ‘아바네라(Habanera)’는 원래 1800년경 쿠바의 아바나 지방에서 태어난 유행한 춤곡입니다. 탱고와 비슷한 두 박자 리듬에 셋잇단음이 따라 나오는 것이 특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