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8개, 셰프 1명, 음식은 쇠고기뿐…평창동 '심야식당'
[중앙일보] 입력 2018.05.02 00:01
어디로 갈까’ 식사 때마다 고민이라면 소문난 미식가들이 꼽아주는 식당은 어떠세요. 가심비( 價心比)를 고려해 선정한 내 마음속 최고의 맛집 ‘심(心)식당 ’입니다. 이번 주는 CJ E&M ‘올리브TV’ 이중화 책임프로듀서가 추천한 쇠고기 요리전문 한식당 ‘이(李)식당’입니다.
쇠고기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이(李)식당’.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우육전, 한우초밥, 양지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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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다녀간 사람도 단골이 될 만한 맛집”
[송정의 심(心)식당]
올리브TV 이중화 PD가 추천한 ‘이(李)식당’
올리브TV의 인기 프로그램 ‘올리브쇼’ ‘한식대첩’ ‘원나잇푸드트립’의 책임 프로듀서로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콘텐트를 제작해온 이중화 PD에게 맛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전통의 노포부터 새로 생긴 트렌디한 맛집까지 다양한 곳을 다니는 그에게 이식당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집 근처에 있어 아내와 함께 퇴근길에 또는 주말에 잠시 들러 요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특히 작은 식당 내부는 마치 만화 속 ‘심야식당’처럼 일상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이 PD는 “일자로 된 바밖에 없는 작은 식당인 데다 셰프 혼자 요리부터 서빙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서 1인 식당만의 묘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식당의 기본은 음식이다. 이 PD는 특히 이곳의 한우초밥과 담백한 양지국수를 좋아한다. 그는 “지난해 초, 처음 방문한 후 꾸준히 찾는 단골 가게”라며 “누구라도 일단 가보면 단골이 되거나 지인에게 소개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분위기와 맛있는 요리가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식당 내부는 오픈주방과 일자 카운터만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예고에서 북악터널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상가들 사이에 통유리로 된 작은 상가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상가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모던한 외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곳 ‘이식당’이다. 오픈 주방과 그 앞에 놓인 카운터(바)로만 구성된 작은 식당은 쇠고기로 만든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코리아 퀴진(한식당)을 표방한다. 대학에서 일식을 전공한 후 특급호텔 외식사업부와 일본 도쿄의 한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오너 셰프 이종화(32)씨가 아내 김서영(32)씨와 함께 2015년 문을 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동네는 새로운 가게가 하나 문을 열 때면 골목 주민 모두 관심을 가질 만큼 변화가 드문 곳이다. 이 셰프는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였기 때문에 가진 돈이 적어서 상권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들을 위주로 가게 자리를 찾아다녔다. 실제 권리금 없이 비어 있던 지금 가게를 발견하고 바로 계약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있던 식당도 백반집뿐이었던 동네에 깔끔한 한식당이 문을 열자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호기심으로 가게를 찾았다. 이들의 첫 마디는 똑같았다. “어쩌려고 이 동네에 식당을 열었냐”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오는 고객들이 점차 늘면서 식당은 6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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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전문 식당으로 다른 한식당과 차별화
이식당의 메뉴는 모두 쇠고기가 주재료다. 이 셰프는 “처음부터 식재료 하나에 집중하는 식당을 하려고 했다. 할 줄 아는 요리를 죽 늘어놓으면 그 가게만의 특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에서 일한 한식당이 일본식 불고기 전문점이었던 만큼 쇠고기 손질법 같은 기초부터 요리법까지 두루 익힐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셰프에게 쇠고기는 가장 자신 있는 식재료였다.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부부는 마장동에 가서 직접 고기를 산다. 한우는 고기 향이 강한 우둔살 부위만 사용한다. 그는 2~3일에 8~10㎏씩 우둔살을 덩어리째 사와 직접 근막과 기름기를 제거한 후 요리 용도에 맞게 잘라 쓴다. 이렇게 직접 고기를 정육하기 때문에 재료값을 아낄 수 있단다.
밑간한 우둔살을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혀 굽고 파무침 등 채소, 맛간장과 함께 내는 육전.
직접 손질한 우둔살로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데 대표 메뉴는 육전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간을 하고 밀가루를 묻힌 후 달걀 옷을 입혀 바로 부쳐낸다. 스테이크처럼 속까지 익히지 않아 식감이 아주 부드럽다. 이 곳의 모든 메뉴에는 채소가 함께 나온다. 쇠고기만으로는 부족한 식감과 영양을 채우기 위해서다. 육전은 양파·부추·파무침과 함께 담는다. 육전은 먹는 방법이 따로 있다. 이 셰프가 직접 만든 맛간장을 육전 위에 뿌리고 채소를 얹어 함께 먹으면 고기의 고소함, 간장의 감칠맛, 채소의 상큼함이 어우러져 한없이 먹게 된다.
양념을 바른 후 토치로 굽는 한우초밥. 사진은 양지국수에 나오는 세트 메뉴용이다.
한식당을 표방하지만 이 셰프만의 스타일로 요리한 다양한 메뉴가 있다. 한우초밥이 대표적이다. 초밥 위에 양념한 한우를 올린 후 토치로 겉면을 익혀낸다. 지금은 일식 전문 셰프처럼 능숙하게 초밥을 쥐지만 한식당에서 오래 일한 이 셰프에게 초밥은 익숙치 않은 메뉴였다. 오픈 주방이어서 초밥 쥐는 모습을 손님들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유튜브 속 스시 명인의 모습을 보고 따라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한다. 신선한 한우육회와 한우타다끼도 인기다.
3~4시간 푹 끓인 양지 육수에 생면을 넣어 담백한 양지국수.
남들이 잘 쓰지 않는 특수 부위도 쓰는데 바로 우설이다. 우설을 잘 구워낸 스테이크와 구이는 미식가들이 특히 좋아한다. 이외에도 양지를 3~4시간 푹 끓여 만든 육수에 생면을 넣은 양지국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인기다. 점심엔 양지국수와 초밥을 함께 주는 세트 메뉴도 있다.
이식당의 좌석은 단 8석뿐. 식사시간에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부부는 처음부터 규모가 작은 가게를 고집했다. 도쿄에서 살 때, 퇴근길이면 작은 이자카야에 들러 맛있는 요리와 술을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던 추억 때문이다.
이 셰프는 “월급 정도만 벌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비우고 시작했다. 규모가 크면 그 식당을 유지하기 위해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작은 식당은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오래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내 김씨도 장보기, 재료 손질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다. 가게 외관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간판부터 메뉴판에 있는 쓴 캘리그라피가 모두 김씨의 작품이다.
동네주민들의 사랑방이었던 이식당은 SNS에서 입소문을 탄 데다 평창동 주민인 방송인 김나영씨의 단골집으로 알려지면서 요즘은 외지에서도 많이 찾아온다. 혼자 와서 식사와 술을 즐기는 혼밥족도 많다.
이식당의 메뉴 가격은 식사는 1만원대, 요리는 1만~2만원대다.
이식당의 메뉴는 대부분 1만~2만원대다. 한우육회 2만5000원, 한우타다끼·한우육전 2만3000원, 우설구이 1만9000원이다. 식사 메뉴는 더 저렴하다. 한우초밥 1만6000원, 양지국수 1만1000원이다. 점심엔 양지국수·한우초밥(3피스)세트 1만5000원, 양지국수·약갈비덮밥 세트 1만3000원이다. 술은 부부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 생맥주·기린맥주·한라산·화요·사케 등이 있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동영상=전유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