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트레일 홍천 창촌리길~새소리길 11km
백두대간트레일은 백두대간을 따라 조성되고 있는 총 길이 2,165km에 달하는 걷기길이다. 지자체와 관련 부처의 토지 용도변경 등 협의사항 지연으로 조성이 조금씩 늦어져, 현재는 인제와 홍천에 걸쳐 220km 정도만 완성된 상태다. 아직 노선이 완성되지 않은 데다 백두대간 능선종주의 인기에 가려 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한 상태지만,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아 부담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두대간은 친숙해도 트레일은 낯설 수 있다. 트레일trail이란 산자락에 길게 조성된 오솔길과 같은 개념이다. 둘레길과 구별되는 점은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등산로와 다른 점은 수평적 선형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길 원정대’의 세 번째 원정지는 백두대간트레일 홍천 구간의 창촌리길과 새소리길이다. 총 길이는 11km. 내면고원체육공원에서 출발해 원당초등학교에서 끝난다.
창촌리길은 대한동골을 지나는 마을길이며, 새소리길은 느릅골을 통해 새터골로 넘어가는 계곡길이다. 길을 개척하는 도중에 새소리가 워낙 많이 들려 ‘새소리길’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제법 빠듯하지만 푸근한 시골길과 고요한 숲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다.
6월 23일 오전 10시 내면고원체육공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두들 모여 체조로 몸을 풀고 있었다. 이번 원정은 홍천터미널에서 내면고원체육공원까지 셔틀버스를 운영해 원정대원들의 편의를 도왔기 때문인지 자동차로 이동한 대원들이 많이 없고 중·장년층의 친구, 부부들과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주로 참석했다. 주최 측에서는 새소리길에 어울리는 작은 피리가 달린 목걸이를 나눠줬다. 인솔은 백두대간트레일 홍천 안내센터의 김명근 팀장이 담당했다.
고향집 찾은 듯 푸근한 마을길
공원 정문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 트레킹을 시작한다. 대한교와 이전교를 왼쪽에 두고 지나치면 갈림길 없는 대한동길이다. 길 왼쪽으로 맑은 개울이 흐른다. 김 팀장은 “계방산에서 발원한 개울이며 내린천으로 유입된다“고 설명했다. 길 양옆으로 펼쳐진 오이, 고추, 깨, 당근 등을 심은 밭에서 한가로이 김을 매는 마을 주민들이 점점이 보인다. 정겹기 짝이 없는 시골길이다.
다만, 마을 초입에서 들리던 개 짖는 소리는 마을 끝까지 이어져 귀를 아프게 했다. 한 대원은 “새소리길이 아니라 개소리길”이라고 농을 던질 정도로 집집마다 개가 있다. 다른 대원도 “창촌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때 창고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데 창고를 지켜야 돼서 개가 많은가 보다”고 덧붙인다.
한적한 마을길 양옆 능선에는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고 길 주변에는 꿀풀이 아무렇게나 피어 있다. 한가로운 산골이다. 가끔씩 나오는 산앵두를 따먹으며 가다 보면 큰돌배나무쉼터가 나온다. 잠시 휴식하며 김 팀장의 설명을 듣는다.
“이 큰돌배나무는 수령이 약 250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대한동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다가 이 나무 밑에서 예나 지금이나 땀을 식힌다고 해요. 또한 이곳은 백두대간트레일 기점으로 여기서 오른쪽의 노량골 방면으로 향하면 자운리길 구간으로 길이 이어지고, 소한동 방면으로 직진하면 새소리길로 이어지는 창촌리길입니다.”
더 나아가다 마을길이 지겨워질 때 쯤 큰 소나무를 기점으로 뒷골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아스팔트로 이뤄진 임도길이 가파른 오르막을 이루고 있다. 길 주변에는 산머루와 산딸기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 대원들의 입을 즐겁게 한다. 계속 고도를 높이다 보면 임도가 끝나며 너덜길이 나오고, 골짜기 최상단에 위치한 마지막 밭 오른편으로 숲길이 이어진다.
숲길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았던 듯 푹신한 흙길이다. 5분쯤 나무 계단을 밟아 오르면 호젓한 참나무를 양 옆에 두고 벤치 두 개가 놓여 있는 잿골 고개에 오를 수 있다. 이 고개를 통해 대한동 뒷골과 소한동 잿골이 연결된다. 이곳의 명칭은 네이버 지도에는 큰토골로 표기되며, 동아지도 상에서는 현골, 홍천군청 및 트레일 이정표 상으론 잿골이다. 오지의 지역명은 대개 그 유래와 기원이 불분명한 탓에 표기가 제각각이다.
고개에서 한 걸음 내려서면 너른 골짜기 가득 채워진 밭 너머로 소계방산에서 이어진 산 능선이 펼쳐진다. 골짜기 왼쪽을 따라 솔방울이 발에 무수히 채는 숲길을 걸어 내려간다. 잔뜩 숨을 머금은 흙 위에 솔잎마저 두껍게 깔려 있어 푹신한 카펫을 밟는 느낌이다. 5분쯤 내려가면 차도에 닿는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는 소한동 마을길은 다소 지루하지만 골바람이 시원해 적적하지 않다.
새와 물이 어울려 기쁘게 우는 길
소한6교부터 단숨에 내려가면 소한3교에서 새소리길 기점이 나온다.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을 옆에 두고 너덜길을 따른다. 김 팀장은 “대한동의 계곡은 계방산에서, 소한동의 계곡은 소계방산에서 발원해 모두 내린천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전했다. 식사를 하며 주의사항을 듣는다.
“아까 넘은 고개가 언덕이라면 이곳의 고개는 산이에요. 길은 잘 정비돼있지만 오르막이 꽤 가파릅니다. 또한 계곡을 몇 차례 가로 지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돼요. 길 주변에는 쐐기풀들이 많아서 오늘 반바지 입으신 분들은 고생깨나 하실 겁니다. 최근 가물어서 계곡의 물이 풍성하지 못한 게 아쉽네요. 반대로 작년에는 너무 유량이 많아서 새소리길이 아니라 물소리길이라 해야 될 정도였어요.”
광원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을 따라서 오른다. 계곡 주변에는 느릅나무가 무성히 자라 있다. 이 때문인지 골짜기의 이름이 느릅골이다. 교대로 나타나는 너덜길과 흙길이 잘 정비돼 있고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도 튼튼하다. 트레일 조성을 위해 기울인 트레킹지원센터의 무던한 노력의 흔적이 길 곳곳에 묻어난다.
원정에 참여한 어린 대원들은 연신 피리를 불며 새소리를 찾는다. 이에 응답하듯 찌르르 우는 새소리가 울창한 나무 위에서 들려온다. 새소리와 피리소리, 물소리가 어울려 운다. 산 위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에 실려 소리들이 뒤섞인다. 울음소리지만 슬프지 않게 생명으로 기쁘게 빛난다.
시원한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다시 오른다. 짙푸른 숲길 주변은 사람의 흔적 없이 정글처럼 우거져 있다. 계곡을 따라 골짜기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길을 좇는다. 곰취 등 산나물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한참을 오른 뒤 나타난 빨간 표식지를 따라서 계곡을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붙는다.
경사가 상당히 센 오르막이라 가쁜 숨소리에 가려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골을 따라 지그재그로 난 숲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오르다 보면 드디어 고개에 다다른다. 이 고개는 창촌리와 광원리의 지역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광원리 쪽 방면은 과거 사금이 났다고 해 이름이 유래된 쇠터울, 금기동金基洞이다.
신갈나무에 가려 고개의 조망이 좋진 않다.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촘촘한 나무 계단과 흙길로 된 기나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근처 산세가 소나무군락이 우세한 반면 능선의 길 주변에는 사스래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참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그늘진 숲길을 걸을 수 있다.
내리막이 잠잠해지면 길이 넓어지고 임도로 이어진다. 길옆으로 또 작은 개울이 흐르고 곳곳에 버찌, 산딸기, 오디가 열려 있다. 여러 대원들이 “여기 다시 올 땐 행동식이 필요 없겠다”며 연신 주워 먹는다. 임도는 곧 차도로 바뀐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가로수처럼 길 가에 늘어서 있어 마치 공원 산책로를 걷는 느낌을 준다. 숲에 양해를 구한 듯 길과 숲이 맞닿아 있고 숲은 너그러이 길을 덮어 준다.
정면에 풍성히 솟아 있는 무명봉을 향해 나아가면 원당동院堂洞이다. 원당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때 원院집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원집이란 고려 조선시대 공무로 여행하는 벼슬아치들이나 일반인 여행자들을 위해 관아 근처나 역驛, 역과 역 사이 등에 설치했던 숙박시설을 말한다. 길 끝에 나타나는 원당초등학교가 트레킹 종점이다. 자연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이다. 산행거리 11km, 산행시간 6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