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의 음식이 있는 풍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 '당옥'
남고생처럼 라면 두 개에 공깃밥을 말아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정육점 아들처럼 소고기를 근 단위로 쌓아두고 연기를 피우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날도 있다. 작고 달콤한 것을 입안에 살짝 넣고 사르르 녹아가는 아슬아슬한 감촉을 혀로 느끼고 싶은 날도 있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하얀 목을 내보인 채 야무지게 일을 해내는 B 사감처럼 깔끔한 샌드위치 한 조각에 끼니를 정리하고 싶은 날도 있다.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신사동 '당옥(ダンオク)'에 갔다. 조그만 테이블과 깔끔히 정돈된 주방이 있는 당옥은 유혹적이지만 내성적인 단맛과 정갈하지만 두둑이 배를 채우는 끼니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당옥은 이름 그대로 '달콤한 집'이란 뜻이다. 디저트 중에서도 일본식 와(和)케이크를 전문으로 한다. 와케이크는 일본식 케이크란 의미다. 어떤 수입품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일본 사람들은 서양 케이크도 일본풍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네는 달다는 기본 성질만 남긴 채 녹차니 팥이니 하는 일본 식재료를 써서 일본 정통 과자와 서양 케이크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음식을 만들어냈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와케이크를 내놓는 당옥은 교토 기온(祇園) 거리의 가게 같았다. 실내가 비좁고 사람들이 그 틈에 비집고 앉아 있다는 뜻이다. 그 좁은 틈으로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가 홀로 주방과 홀을 오가며 음식을 내고 손님을 맞았다. 진열대에 놓인 케이크는 하나같이 막내 조카처럼 앙증맞고 색이 고왔다. 먼저 주문과 결제를 하고 건물 밖에 놓은 좁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아침부터 내린 비가 멈춘 오후였다. 공기가 가볍고 산뜻했다. 잠시 뒤 가게 문이 열렸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와케이크를 내놓는 당옥은 교토 기온(祇園) 거리의 가게 같았다. 실내가 비좁고 사람들이 그 틈에 비집고 앉아 있다는 뜻이다. 그 좁은 틈으로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가 홀로 주방과 홀을 오가며 음식을 내고 손님을 맞았다. 진열대에 놓인 케이크는 하나같이 막내 조카처럼 앙증맞고 색이 고왔다. 먼저 주문과 결제를 하고 건물 밖에 놓은 좁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아침부터 내린 비가 멈춘 오후였다. 공기가 가볍고 산뜻했다. 잠시 뒤 가게 문이 열렸다.

녹차 가루를 우린 말차(抹茶)가 접시에 받쳐져 나왔다. 바위에 부딪힌 파도처럼 뽀얗게 포말이 올라간 말차는 쌉싸름한 첫맛과 고소한 중간 맛 그리고 크림 같은 끝 맛을 지니고 있었다. 말차 맛의 비결은 간단하다. 좋은 녹차 가루는 기본이다. 그리고 노동에 가까운 기술이 들어간다. 곱게 간 녹차 가루를 차센(茶筅)이라고 하는 차 전용 대나무 거품기로 잘 섞어주어야 조밀한 거품과 매끈한 질감을 얻을 수 있다. 잠시 전 좁은 창 너머로 허리를 숙인 채 작은 차센을 빠르게 휘젓던 여자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따스한 말차를 입에 머금고 다시 비 갠 오후의 공기를 맞았다. 구수한 말차 향이 일본 하이쿠(俳句)처럼 아련한 여운을 남기며 옅은 바람에 흩어졌다.
말차가 채 식기 전 여자는 "오래 기다리셨죠?"라는 말과 함께 케이크를 올린 다음 쟁반을 들고 나왔다. 프랑스산 키리(kiri) 크림치즈에 이탈리아 마스카포네 치즈, 고르곤졸라 치즈, 생크림, 팥을 섞고 유자를 올린 '유자 와케이크', 유자 대신 말차를 섞은 '말차 와케이크', 치즈로 소를 만들고 인절미처럼 국산 잡곡 10종류를 배합해 겉을 묻힌 '인절미 와케이크'를 차례로 맛봤다. 크림치즈의 신맛, 크림이 지닌 유지방의 단맛, 고르곤졸라 치즈의 쿰쿰한 향이 어울려 산뜻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단순하지 않은 맛이 났다. 말차와 유자, 잡곡 가루는 겉돌지 않고 넉살 좋은 전학생처럼 치즈와 자연스레 어울렸다.
말차가 채 식기 전 여자는 "오래 기다리셨죠?"라는 말과 함께 케이크를 올린 다음 쟁반을 들고 나왔다. 프랑스산 키리(kiri) 크림치즈에 이탈리아 마스카포네 치즈, 고르곤졸라 치즈, 생크림, 팥을 섞고 유자를 올린 '유자 와케이크', 유자 대신 말차를 섞은 '말차 와케이크', 치즈로 소를 만들고 인절미처럼 국산 잡곡 10종류를 배합해 겉을 묻힌 '인절미 와케이크'를 차례로 맛봤다. 크림치즈의 신맛, 크림이 지닌 유지방의 단맛, 고르곤졸라 치즈의 쿰쿰한 향이 어울려 산뜻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단순하지 않은 맛이 났다. 말차와 유자, 잡곡 가루는 겉돌지 않고 넉살 좋은 전학생처럼 치즈와 자연스레 어울렸다.

오키나와산(産) 소금을 쓴 소금 아이스크림은 오랜만에 맛본 제대로 된 물건이었다. 고소한 달걀노른자의 풍미가 느긋이 밑에 깔렸고 그 위에 달콤한 유지방을 두툼히 쌓아 올렸다. 짠 소금 알갱이가 씹힐 때 단맛과 고소한 맛 모두 배로 증폭됐다. 아이스크림이 체온에 녹으며 펼쳐지는 맛의 스펙트럼은 잘 짜인 4중주처럼 하나로 들리면서도 제각각 맛이 모두 살아 있었다. 유화제나 안정제를 쓰지 않아 빨리 녹지만 어차피 순식간에 퍼 먹게 되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비울 때쯤 이 집 명물인 '카츠샌드'와 '다시마키샌드'가 나왔다. 일본식으로 달게 부친 도톰한 달걀말이를 식빵 사이에 넣고 당근을 갈아 만든 소스를 곁들인 다시마키샌드는 부드럽고 폭신했다. 겨자를 섞어 만든 당근 소스 덕분에 달걀 싫어하는 어린애라도 얌전히 하나를 해치울 수 있을 성싶었다. 돈가스를 바로 튀겨 넣은 카츠샌드는 돈가스 사이로 아래에는 갈색 소스를 바르고 위에는 당근 소스를 발랐다. 바삭한 돈가스 와 부드러운 식빵의 조합은 애정 섞인 긴장감이 감도는 혼성 이중창 같았다. 뿌리채소 특유의 은근한 단맛이 맛의 균형을 잡고 힘을 불어넣었다.
마지막 빵 한 조각까지 말끔히 비우고 일어났을 때 주방에 있던 여자가 밖으로 나와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뒤돌아봤을 때 여자는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몇 마디 작고 평범한 말이 등 뒤에서 오래 맴돌았다.
아이스크림을 비울 때쯤 이 집 명물인 '카츠샌드'와 '다시마키샌드'가 나왔다. 일본식으로 달게 부친 도톰한 달걀말이를 식빵 사이에 넣고 당근을 갈아 만든 소스를 곁들인 다시마키샌드는 부드럽고 폭신했다. 겨자를 섞어 만든 당근 소스 덕분에 달걀 싫어하는 어린애라도 얌전히 하나를 해치울 수 있을 성싶었다. 돈가스를 바로 튀겨 넣은 카츠샌드는 돈가스 사이로 아래에는 갈색 소스를 바르고 위에는 당근 소스를 발랐다. 바삭한 돈가스 와 부드러운 식빵의 조합은 애정 섞인 긴장감이 감도는 혼성 이중창 같았다. 뿌리채소 특유의 은근한 단맛이 맛의 균형을 잡고 힘을 불어넣었다.
마지막 빵 한 조각까지 말끔히 비우고 일어났을 때 주방에 있던 여자가 밖으로 나와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뒤돌아봤을 때 여자는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몇 마디 작고 평범한 말이 등 뒤에서 오래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