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봉 코스가 명품 단풍길… 11월 방문객 전국 국립공원 중 최고
한국 사람들은 ‘단풍’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산이 어디일까? 압도적으로 내장산內藏山(신선봉 763.5m)이다. 다들 설악산으로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통계 수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풍이 시작되는 10월에는 설악산이 압도적이다. 설악산에 대한 구체적 설명과 수치는 앞부분에 있는 설악산 르포에서 자세히 밝혔다. 하지만 남하하기 시작한 단풍이 남부지방에 안착한 이후엔 내장산이 단연 앞선다. 2017년 내장산 11월 방문객이 64만8,897명이다. 내장산 연간 방문객 210만2,467명의 30%에 육박하는 수치다. 뿐만 아니라 전체 국립공원 중에서도 11월 방문객이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단풍 명소 피아골과 뱀사골이 있는 지리산도 11월 방문객이 불과 28만여 명밖에 안 된다. 그만큼 11월은 내장산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 최고의 단풍 명산을 자랑하는 내장산이 이 정도 방문객을 기록할 정도면 아주 오래전부터 기록으로 전할 것 같다. <삼국사기>를 비롯해서 역사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전혀 찾을 수 없다. 내장산이란 지명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고려사>까지도 없다. 조선으로 넘어왔다. 드디어 찾았다.
내장산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 성종 때 문인 성임成任(1421~1484)이 내장산을 방문하고, 내장사 앞 정자에 남긴 ‘정혜루기’가 최초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성임의 정혜루기에 호남의 이름난 산이 많은데,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이 있다. 정읍 내장산도 그중의 하나다.’
호남의 5대 명산의 유래다. 또 흔히 내장산 단풍을 조선 8경 혹은 한국의 8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출처는 불명확하다. 아니 어디에도 없다. 1936년 발표된 <조선팔경가>에 한국의 여덟 명승지가 나온다. 금강산, 백두산, 한라산, 석굴암(경주), 달맞이고개(해운대), 압록강, 부전고원, 지리산이 이에 해당한다. 내장산은 없다.
성임은 15세기 생존 인물이니 그 즈음이나 직전에 내장산으로 불렸던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내장사 연혁에서조차 ‘636년 영은 조사가 대웅전 등 50여 동의 대가람을 영은사란 이름으로 창건했고, 1098년 행안 선사께서 전각당우를 중창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내장산은 애초에 영은 조사가 창건한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靈銀山이라 불렀다. 이후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계곡 속으로 들어가도 양의 구절양장 속에 들어간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장산으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산속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겨져 있어 내장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산속에 숨겨진 보물은 다름 아닌 사고본史庫本이다. 조선 왕조는 왕실 족보를 기록한 선첩璇牒과 조선 실록을 담은 금궤金櫃, 즉 사고본을 한양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에 분산 보관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전주 사고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소실됐다. 전주 사고본도 소실될 위기에 처하자, 태인 선비 손홍록과 안의라는 두 사람이 왜군의 발길이 닿기 전에 이태조의 초상화와 사고본을 거두어 내장산 용굴암이란 암자가 있던 바위굴에 숨겨 놓았다. 다행히 이 사고본은 무사했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유일하게 남았던 내장산 사고본은 다시 묘향산으로 옮겨지고, 다시 5부로 늘려 한양 춘추관과 오대산, 태백산, 강화 마니산, 무주 적상산으로 분산 보존토록 했다. 우리 역사 기록 보관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내장산인 것이다. 그래서 구절양장 같이 깊숙이 숨기는 내장산이란 이름으로 굳어졌고, 영은산이란 지명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정몽주도 ‘쌍계루에 부쳐’ 시문 남겨
내장산이란 지명의 최초 기록은 조선 초기이지만, 내장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노래한 시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사육신으로 유명한 포은 정몽주의 시 ‘쌍계루에 부쳐’가 쌍계루에 걸려 있다.
求詩今見白巖僧구시금견백암승
把筆沈吟愧未能파필침금괴미능
烟光縹緲暮山紫인광표묘모산자
月影徘徊秋水澄월영배회추수징
시를 써 달라 백암승이 청하니 붓을 잡고도 재주 없음이 부끄럽구나. 노을 빛 아득하게 저무는 산이 붉고 달빛이 배회하는 가을 물이 맑구나
아름다운 풍광의 쌍계루는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이 지은 명칭이라 전해진다. 목은은 백양사 쌍계루의 절경에 반해 ‘두 시냇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누각이 있어 왼쪽 물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니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아래로 서로 비치어 참으로 좋은 경치다’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다시 <신증동국여지승람> 장성조에 ‘황룡천은 백암산에서 나와 진원현 경내로 들어간다. 정토사가 백암사에 있는데, 이 절에는 쌍계루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내장산은 내장사지구와 백양사지구, 입암산지구로 나뉜다. 내장사지구는 일주문을 지나 벽련암~서래봉~불출봉~원적암을 통해 내장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편안하게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을 서래봉 코스라고 부른다. 여기에 내장산 단풍 행락객이 가장 많은 이유가 있다. 다른 산은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하지만 내장산은 정상 신선봉이 원래 높지 않은 데다 단풍이 내장사 주변 가까이 포진해 있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 전국의 어느 산보다 많다.
내장산 단풍을 대표하는 경관은 내장사의 108나무 단풍터널과 내장사 단풍, 우화정과 진입로 단풍, 원적계곡과 금선계곡 단풍까지다. 여기서도 계곡과 단풍이 조합을 이룬다. 역시 아름다운 단풍이 되려면 물은 필수 요건이다. 따라서 내장산 단풍을 즐기려면 서래봉으로 올라 불출봉을 거쳐 원적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단풍 명품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백양사지구는 백양사에서 출발해 약사암~백학봉~상왕봉~사자봉~봉황대를 거쳐 가인마을로 돌아오는 코스다. 전통적으로 내장산은 ‘춘백양추내장’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는 백양산, 가을 단풍은 내장산이란 의미다. 백양사의 숲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과 ‘가장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될 정도로 전국 어느 곳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백양사 계곡 입구에는 애기단풍나무와 갈참나무가 많다. 단풍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양사의 주봉인 백암산은 백양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그뒤 북쪽으로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가 유달리 눈에 들어온다. 바로 백학봉이다. 백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해서 명명됐다. 절승이다. 흔히 백양사 단풍 절경의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되는 장면이다.
힘찬 기상으로 백양사를 품안에 아우르고 백학봉의 위용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학바위의 모습은 백양사 대웅전 앞과 쌍계루 지당 앞에서 가장 탁월한 조망을 자랑한다. 쌍계루 앞의 계담溪潭과 그에 비쳐 거꾸로 투영되는 백학봉의 모습은 백학봉 절경의 백미로 꼽힌다. 출사가들이 항상 기다리는 장면이다. 실제 백양사에 들어서면 그 장면을 렌즈에 담으려는 출사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장산의 명칭 이력은 조선시대부터로 추정되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의 명성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 앞에서 언급한 고려 말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의 기록과 함께 조선 초 정도전이 남긴 사찰 창건 역사를 전하는 <정토사교루기>도 전한다. 이 외에도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등 쟁쟁한 인물들이 내장산에서 경관을 즐기면서 시를 읊은 기록이 전한다. 내장산에 단풍 구경 가서 이 시들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를 더하지 않을까 싶다. 만산홍엽의 내장산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