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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붉고,물도 붉고,사람도 붉은… 삼홍소의 원조 피아골 단풍

산야초 2018. 10. 14. 21:23

[기록에 전하는 단풍 명산 <3>| 3선 가이드| ①지리산] 산도 붉고,물도 붉고,사람도 붉은… 삼홍소의 원조 피아골 단풍

  • 글 월간산 박정원 편집장
  •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입력 : 2018.10.04 10:41 | 수정 : 2018.10.04 10:46 [588호]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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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직·이륙 등 조선 선비들도 단풍 예찬

    남명 조식(1501~1572)의 시 ‘삼홍소三紅沼’는 몰라도 지리산 피아골 삼홍소는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피아골 삼홍소 출처가 바로 남명 조식의 시인 것이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의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이고,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 수홍水紅이며, 그 품에 안긴 사람이 붉게 물들어 보인다 해서 인홍人紅이다. 단풍이 얼마나 붉었으면 산도, 물도, 사람도 붉게 변했으랴. 남명이 당시 삼홍소를 노래할 정도였으면 지리산 단풍은 조선 초기 이전부터 유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리산은 이미 수많은 선비들이 유람을 하거나 무릉도원, 혹은 청학동을 찾아 곳곳을 누비며 다닌 기록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 일출天王日出이 지리 1경이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지리 10경에 총 망라했다. 지리 2경이 바로 피아골 단풍이다. 직전단풍稷田丹楓이라 한다. 그만큼 지리산을 대표할 만한 경관이다. 그 외의 지리 10경은 노고(단)운해老姑壇雲海, 반야낙조般若落照, 벽소명월碧宵明月, 불일폭포佛日瀑布, 세석細石철쭉, 연하선경烟霞仙境, 칠선계곡七仙溪谷, 섬진청류蟾津淸流 등이다.

    지리산 무제치기폭포 주변 울긋불긋한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이고 있다.
    운무에 뒤덮인 지리산 천왕봉도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뱀사골 계곡의 단풍이 유난히 아름답다.

    지리산은 또한 우리나라 고갯길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남원에서 정령치를 거쳐 성삼재~실상사로 이어지는 종단도로에서도 단풍숲의 극치를 감상할 수 있다. 걸어서나 차를 타고 모두 단풍, 아니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지리산인 것이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유두류록>에서 지리산 단풍을 콕 집어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1472년 지리산을 처음 유람하면서 단풍을 보고는 ‘마치 그림 같구나’라고 감탄한 장면이 나온다. 지리산 유산록의 효시로 평가되는 이륙李陸(1438~1488)의 <지리산기智異山記>에서도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칭송하고 있다. 이륙은 김종직보다 어리지만 그보다 9년 앞선 1463년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기록을 남겨 지리산 유산기의 효시가 됐다. 1580년 변사정도 <유두류록>에서 ‘푸른 회나무와 초록 단풍이 비단을 펼친 듯 사람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쉴 수밖에 없었다’고 지리산 단풍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화집의 효시로 꼽히는 고려 말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에도 지리산이 등장한다. 아니, 나올 수밖에 없다. 그는 청학동을 찾아서 지리산에 들어간다. ‘지리산이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꽃 같은 봉우리와 꽃받침 같은 골짜기가 면면하게 잇따라서 대방군帶方郡에 와서는 수천 리를 서리어 맺히었다. 늙은이들이 서로 전해 오는 말에 그 안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여 엎드려서 몇 리를 지나면 넓게 트인 지경에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 푸른 학이 서식하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다. 청학동에 대한 소개는 계속 이어진다. 이와 같이 지리산은 신선이 사는 신비한 산으로 조선 선비들이 끊임없이 찾았다. 그들이 남긴 유산록은 금강산이 제일 많고 그다음이 지리산이다. 금강산은 수려한 면에서는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반면 지리산은 신선하고 신비로운 산으로서 으뜸 중의 으뜸이었다. 따라서 금강산은 경치에 대한 기록이 많은 반면, 지리산은 경치보다는 신선과 관련한 청학동에 대한 언급이 압도적이다. 그렇다고 지리산 풍광이 여느 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최고의 단풍 명산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산이다.

    지리 10경 중 2경이 피아골 단풍

    지리산 단풍 예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피아골~뱀사골까지 단풍 구경을 떠나 보자. 지리 2경에 해당하는 직전단풍이다. 그런데 왜 직전이 피아골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직전의 ‘稷’은 오곡 중의 하나인 기장 혹은 피를 말하며, 직전稷田은 그 피를 일군 밭을 뜻한다. 피는 산지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뎌 지리산 골짜기 외진 곳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 피밭을 일궈 주식으로 삼았던 데서 유래했다. 직전을 이전에는 ‘피밭골’로 불렀다. 그러다 부르기 쉽게 피아골로 변화한 것이다. 일부는 한국전쟁 당시 죽은 수많은 병사들의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로 계곡을 이뤘다고 해서 피아골이라 했다는 설도 있으나 완전 낭설이다.


    반야봉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피아골 등산로 양쪽은 오른쪽, 즉 동쪽의 불무장등, 왼쪽인 서쪽 왕시리봉이 감싸고 있다. 왕시리봉은 노고단에서, 불무장등은 삼도봉에서 뻗어 내려온 능선이다. 피아골은 그 사이로 난 계곡이다. 이곳에 곰이 가끔씩 출몰하기도 한다.


    피아골은 사실 사계절 내내 절경이다. 봄이면 진달래, 여름이면 원시림의 짙은 녹음, 가을이면 지리 2경으로 꼽히는 단풍, 겨울 설경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다.


    단풍의 필수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계곡, 즉 물이다. 계곡은 또한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곳이다. 적당한 수분은 단풍을 더욱 곱게 만든다. 전국의 단풍 명산을 보면 전부 계곡을 끼고 있다. 지리산 단풍 명소도 전부 계곡이 있는 곳이다.


    피아골 입구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거진 숲이 나오고 계곡 위로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지나면 삼홍소가 나온다. 가을의 아름다운 색의 향연을 벌이는 곳이다.


    계곡은 계속 이어져 남매폭포, 와폭, 구계폭 등 작은 폭포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그 위로 붉게 수놓인 단풍들이 환상적이다. 울긋불긋 물든 잎들이 눈의 호사를 누리게 한다. 입을 다물 수 없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눈을 팔 수 없다. 발걸음을 옮길 수 없게 한다. 하지만 발길을 뗄 수밖에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피아골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한 지 1시간 40분 만에 피아골대피소에 도착했다. 직전마을에서 4km, 탐방지원센터에서는 6km 거리다. 피아골대피소에서 등산객들의 안전을 이유로 일출과 일몰 기준으로 등산로를 통제하고 있다. 오전 8시, 오후 4시 등산 출입문을 여닫는다.


    피아골대피소 뒤로는 가파른 등산로가 이어진다. 주능선으로 연결되는 약 2km의 좁은 오르막길 등산로가 계속된다. 가파른 등산로 좌우로 신갈나무와 졸참나무 등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활엽수들이 단풍의 주인공들이다. 그 사이사이 단풍나무들이 뻘겋게 물들어 뽐내고 있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사방 천지가 확 트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르막길로 올라온 땀을 한순간에 씻어낸다. 이 맛에 등산을 한다. 그리고 계절마다 형형색색 변하는 경치에 눈이 호사를 누리는 건 덤이다.

    선홍빛 단풍과 운무에 덮인 지리산 능선이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지리산의 단풍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반드시 등산을 해야 한다. 정신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머리를 쓴 것만큼 몸을 움직여 줘야 한다. 그래야 노후생활을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다. 의사들이 등산을 즐기는 이유다. 그들은 정신과 육체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면 뇌 활동이 활성화되고, 단풍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눈까지 좋아진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곧 임걸령이다. 사시사철, 특히 영하 20℃의 한겨울에도 약수가 나오는 옹달샘이 있는 곳이다. 능선 위에도 단풍은 예외 아니다. 그 단풍은 평지보다 훨씬 빨리 보여 준다. 지리산의 뛰어난 식생은 수종에서부터 알 수 있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우점종이지만 이미 숲의 천이가 진행되면서 수종이 더욱 다양해졌다. 활엽수는 전부 노랑, 빨강, 주황으로 변하고 있다. 울긋불긋 뒤덮인 지리산 능선이다.


    뱀사골로 가려면 노루목, 삼도봉, 화개재를 지나야 한다. 지리산의 장관을 보면서 뱀사골 하산길로 접어든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520여 개 계단을 거쳐 삼거리에 도착한다.


    뱀사골도 절경의 소沼로 유명한 계곡이다. 큰 소만 하더라도 간장소, 병풍소, 병소, 뱀소, 탁용소, 요룡소 등 지리산에서 소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이름 없는 것들도 많다. 소가 많은 만큼이나 단풍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피아골과 같이 매년 단풍 축제를 개최한다. 역시 계곡과 단풍은 불가분의 관계다.


    뱀사골 아래 마을은 반선半仙이다. 신선이 반쯤 됐다는 뜻인가. 지리산에 올라섰으면 신선인데, 아래 있다고 반선인가. 그 아래 와운삼거리에 뱀사골탐방지원센터까지 가면 피아골~뱀사골 단풍 산행은 끝이 난다. 아니 끝났다고 단풍이 없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지리산 어디를 가든 단풍이 있다. 그때가 가을이다. 가을에 지리산에 가면 단풍이 있고, 신선이 된다. 사실인지 확인하러 지리산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