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의 극한까지 달려갈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듣는다. 아득한 타인의 음성.
너는 거기에 있다. 나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함께 여기, 낮은 곳에 있다.
(중략)
만나지 못해도 아름다운 우리의 방황하는 시선이
강처럼 흐르게 하리라.
-김정란, 詩法 중-
예술은 결국 소통을 전제로 시작한다. 하지만 살아온 경험이 서로 다른, 충분히 고독한 개인들에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 '뱃노래'에 대한 음악적 접근
줄리에타는 마술사 다페르투토의 고용을 받아 거울 속의 모습과 그림자로 상징되는 영혼을 앗아가는 고급 창부이다. 호프만은 줄리에타가 밤에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는 듣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노래가 유명한 '호프만의 뱃노래'이다. 호프만이 줄리에타에게 반한 것은 외모의 아름다움보다는 뱃노래의 영향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뱃노래가 호프만의 심리적 변화를 일으킨 것에 의문을 갖고 음악과 정신과의 관계를 밝혀본다.
음악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인류문명의 한 부분이었고 인간을 동물과 구별시키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방법이다.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전달된 감정은 듣는 사람에게 여러 반응을 일으킨다. 그중 정서적 반응은 지각과 기억을 수반하고 현재나 과거,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매우 다양하게 일어난다. 즉, 정서적인 반응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의 경험 이전에 우선되는 경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환기의 잠재성'(arousal potential)을 자극했다고 본다. 환기의 잠재성의 자극의 예로써 영화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영화음악을 감상함으로서 영화의 장면이나 대사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호프만이 줄리에타의 노래에 의해 급작스러운 사랑에 빠진 것은 환기의 잠재성이 자극 받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뱃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기쁜 노래 불러라. 그 고운 목소리 옛날의 노래를 슬피 불러 보라" 라는 가사가 나온다. 호프만은 이 부분을 통해 옛사랑, 노래하며 죽어갔던 안토니아를 떠올리고 사랑의 감정이 환기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뱃노래는 최근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귀도는 한눈에 반한 여인을 쫓아 오페라 극장에 들어가게 되고 그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때 공연되던 오페라가 호프만의 뱃노래였다. 그들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나찌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아내와 이별의 생활을 하던 귀도는 죽음을 불사하고 몰래 방송실에 들어가서 호프만의 뱃노래를 틀어준다. 뱃노래를 들을 아내는 남편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옛사랑의 추억을 환기하며 잠시 평안을 얻게 된다. 여기에서도 뱃노래를 통한 환기의 잠재성을 자극하는 음악의 역할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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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바흐 (Offenbach, Facques ; 1819.6.20~1880.10.5)
오펜바흐는 독일 태생으로 오페레타의 작곡가, 지휘자로서 유명한 그는 주로 파리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처음엔 요제프 알렉산더와 베른하르트 브로이어에게 사사, 후에는 파리에서 바슬랭과 알레비에게 배웠습니다. 오페라 코믹의 첼로 주자로 극장생활을 시작, 거기서 가벼운 무대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파리 음악원에서 4년간 음악 수업을 마치고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였습니다. 오펜바흐의 가벼운 오페렛타(특히 1860년대에 씌어진 것들)는 공소하고, 경박한 그 당시의 파리의 취향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그 시대의 음악사조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만한 곡이라고 한다면 '캉캉춤'으로 알려진 '천국과 지옥' 에서의 장면일 것입니다.
1850년, 테아트르 프랑세의 지휘자가 되었고 1855년에는 부프 파리지앵이란 이름과 함께 자신이 문을 연 마리니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습니다('부프'라는 호칭은 보드빌식의 희극과 이탈리아풍의 오페라 부파의 혼성을 의미한다). 그 후 1855년에 '부프 파리지앵' 이라는 극장을 자신이 경영하면서 자작의 1막 오페레타를 많이 상연하자 점차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이 결정적인 그의 성공작이 되었는데 이는 오펜바흐의 경쾌하고, 사치스런 음악이 파리 사람들의 기호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계속하여 '아름다운 엘렌, '푸른 수염', '파리의 생활', '분대장' 등 청중들이 쉽게 친할 수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습니다. 1857년, 오펜바흐의 일행은 런던을 방문했습니다. '천국과 지옥'(1858) 및 1860년대의 여러 작품, (1866), '제롤스텐의 대공비'(1867), '라 페리콜'(1868)을 통해 속속 거둔 성공의 물결이 겨우 잠잠해진 것은 1871년 전쟁이 끝나고, 파리에 음울한 기분이 떠돌기 시작할 무렵 이었습니다. 그는 작곡을 계속했으며, 바르고 진지한 작품을 쓰려는 의도에서 몰두했던 '호프만의 이야기'는, 작곡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미완성인 채였습니다.
오펜바흐의 오페렛타는 전체적으로 빛나는 기지가 기조를 이루고 있고, 바보스런 장면이나 대사에서 당시 관습이나 세상사에 대한 풍자를 늘어놓고 친숙한 곡을 흉내내고는 그것에 대해 비웃곤 했습니다.
오펜바흐의 오페렛타는 오늘에도 변함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천국과 지옥'의 마지막 갈롭(캉캉춤이 있는 장면)등은,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가벼운 클래식곡이 되어 있습니다.
오펜바흐는 서정적 표현에 관한 한 본능적 재능이 분명히 결여되어 있었다고 비판되기도 하지만(즉, 오펜바흐가 오페렛타를 쓰라고 격려한 슈트라우스 등과 비교하여), 교묘한 선율에 의해 반드시 그래야 마땅한 효과를 거두며, 듣는 이가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는 사실로 보아, 그런 단점은 충분히 보충되어 있는 것입니다.
1860년에는 처음으로 빈을 방문하였고 또한 런던에서의 그의 인기는 대단하여 네 번이나 런던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만년에 들어 관절이 붓는 병으로 고생하면서 '호프만의 이야기'를 90퍼센트 정도 완성하고, 1880년 10월 5일 작고하였습니다.
그의 음악적인 정신의 기반은 시민적인 자유주의와 풍자 정신에 있는데, 아름답고 풍부한 멜로디와 명쾌한 관현악법, 교묘한 유머 등으로 일반에게 친근감을 갖게 합니다.
주요 작품
오페라 ; '천국과 지옥'(원명 : 지옥의 오르페우스), '아름다운 엘렌, '분대장', '호프만의 이야기', '파리의 생활', '푸른 수염', '제롤스텐의 대공비', '라 페리콜', '인생은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