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파격, 또 파격' 세계 건축의 聖地가 된 가구공장

산야초 2019. 2. 12. 22:21

'파격, 또 파격' 세계 건축의 聖地가 된 가구공장

  •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입력 : 2018.04.26 07:10

    건축은 인류 역사와 함께 수천년을 공존해 왔다. 건축이 없는 인간 삶은 상상 불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건축에 대해 잘 모른다. 땅집고는 쉽게 건축에 다가설 수 있도록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와 함께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담긴 국내외 건축물을 찾아간다.

    [양진석의 교양 건축] ⑨ 기업의 정체성을 알린 비트라캠퍼스

    독일의 남쪽, 거의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면해 있는 곳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구회사 비트라(Vitra)가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최고의 현대 건축을 짓기 시작했다. 건축이나 디자인, 예술에 관심 있다면 꼭 가볼만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곳은 비트라의 공장 부지다. 1980년대부터 유명 건축가와 신진 건축가가 참여해 공장 건물은 물론이고 전시장까지 짓기 시작했다.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건물은 1989년 완성한 ‘비트라디자인뮤지엄’. 건축과 디자인의 총체라고 불릴 만큼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90년대 초부터 하나둘씩 독특한 건물이 자리잡았다. 모두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이다.

    비트라 캠퍼스의 성공으로 비트라는 세계 최고 가구회사 자리에 올랐고 브랜드 파워 역시 대단하다. 비트라캠퍼스가 유명해진 비결은 무엇이고 어떤 건축적 가치가 숨어 있을까.
    비트라의 쇼룸 역할을 하는 비트라하우스. 집을 여러 채 쌓아 놓은 형태의 디자인이 유니크하다. /사진=이서규

    ■비트라 캠퍼스의 아이콘 ‘비트라하우스’

    비트라캠퍼스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비트라하우스(VitraHaus)다. 유럽에서 흔한 전통 가옥 형태의 집들이 컨테이너처럼 쌓여 있는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는 건축이다. 시작부터 범상치가 않다.

    이 건물은 ‘하우스(Haus·집)’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쇼룸’으로 쓴다. 비트라캠퍼스 방문객들이 일부러 이곳까지 왔는데 비트라 가구를 한눈에 보고 싶다고 요청해 2010년에 만든 일종의 비트라 쇼륨이다. 설계는 세계적 건축가 그룹 헤르초크(Herzog)와 드 뮤론(de Meuron)이 맡았다.

    이 건축가 듀오는 이 작품에서 과거 그들의 어떤 작품과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파격적인 형태와 공간을 선보였다. 끊임없이 변신하는 최고의 건축가답게 비트라의 브랜드 정체성에 가장 충실한 전시장 건축을 선보인 것. ‘집’이란 콘셉트에 충실하게 집을 여러 채 쌓아 놓은 형태의 이 건물은 유니크하고 직설적이다.
    외관 경사 지붕의 공간감이 비트라하우스 내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와이그룹 제공

    홈(home)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고향, 중심,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심장 같은 존재다. 결국 비트라하우스가 비트라캠퍼스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란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비트라 가구 전시장이라고 해서 자칫 과하게 힘(?)을 주거나 캠퍼스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조형감을 표현하려 했다면 아마도 실패한 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가의 지혜와 비트라의 감각이 돋보이는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비트라하우스는 현재 비트라캠퍼스의 시각적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팩토리 빌딩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은 일본 혼성 듀오 건축가 그룹 SANAA가 완성한 하얀색 원형 건축이다. /와이그룹 제공


    ■계속 진화하는 비트라캠퍼스 ‘팩토리빌딩

    비트라캠퍼스에 들어선 주요 건축물. /와이그룹 제공

    2012년 또 하나의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팩토리빌딩이다. 팩토리빌딩 연작 시리즈는 1981년 니컬러스 그림쇼의 디자인, 프랭크 게리의 비트라뮤지엄에 이어 비트라 팩토리빌딩 디자인의 계보를 이어갔다.

    팩토리빌딩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은 바로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와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로 구성된 일본 혼성 듀오 건축가 그룹 SANNA가 완성한 유니크한 하얀색 원형 건축이다. 이 건물은 비트라의 물류센터 역할을 하는 곳으로 흰색 특수유리 마감 처리를 한 외벽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SANNA의 주요 건축 콘셉트인 ‘가벼운 건축’이 잘 드러나는 곳으로 기존 물류센터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즈음 SANNA는 결국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SANNA는 비트라와 프리츠커상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비트라는 스타 건축가가 꼭 거쳐야만 하는 현장처럼 여겨지게 됐다.

    1989년 프랭크 게리의 유럽 첫 진출작인 비트라디자인뮤지엄. 비트라의 가구 컬렉션 전시장 기능을 한다. /와이그룹 제공

    건축으로 가구의 정신을 표현하다

    창업자 아들이던 롤프 펠바움(Rolf Fehlbaum) 비트라 회장은 건축가들을 불러 모아 건물을 세우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가구회사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신에 맞는 행보도 이어갔다.

    비트라뮤지엄에서는 그 동안 비트라가 제작한 4000종의 가구들을 모아 전시하고, 비트라 하우스는 최근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브랜드 전시장 기능을 한다. 또한 비트라캠퍼스에서는 옥션에서 구입한 빈티지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프랭크 게리 특유의 조형감각이 잘 살아 있는 비트라디자인뮤지엄. /와이그룹 제공

    펠바움 회장은 가구는 디자인이 돼 대량 생산돼야 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대량 생산과 기성품 제작이라는 가치를 그대로 살려, 세계를 돌며 옥션에서 의미 있는 디자인의 가구들을 사들이고 비트라캠퍼스에 설치했다. 건축은 물론 가구도 작품을 컬렉션하듯 캠퍼스에 하나 둘씩 배치한 것이다.

    이처럼 비트라캠퍼스는 건물을 짓고 가구를 컬렉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가구와 건축이 만나는 접점인 실험주택도 시도한다. 비트라는 하이테크 건축가 렌조 피아노에게 초소형 주택 작업을 의뢰해 2009년부터 개발한 약 6평짜리 집 ‘디오게네(Diogene)’를 캠퍼스 내에 설치했다. 렌조 피아노는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갖춘 집을 사전 제작해 기성품화한 주택을 선보인 것이다. 이렇게 또 한번 비트라는 세상을 놀라게 하며 비트라라는 가구회사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가 설계한 돔 전경. /사진=김상일

    건축으로
최고의 기업 마케팅을 보여준 비트라

    비트라캠퍼스 사례는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적극 지원하고, 사회 공헌과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활동적인 행보와 그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서도 한 번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비트라캠퍼스는 건축의 가치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아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트라는 유명 건축 몇 개 쯤 세워 놓고 대외 홍보하는 얄팍한 상술이 아닌, 건축·디자인의 역사와 철학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공장 부지에 들어 선 소방서 건물은 자하 하디드 최초의 건축 작품이다. /사진=김정후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펠바움 회장의 미래를 내다 본 판단이 지금의 비트라를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존재할 수 있게 했다. 비트라는 비트라캠퍼스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최고 가구회사라는 브랜드 입지를 완전히 굳혔고 공장부지를 최고의 관광 코스로 만들었다. 가구와 건축의 관계를 확실히 정립하고, 건축을 통해 최고의 기업 가치를 올린 대표적 사례가 됐다. 기업이 제대로 된 건축을 선보이는 것은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 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대표는 일본 교토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파이포럼 주임교수,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객원교수, 와이그룹 대표건축가로 있다. 러브하우스 플랫폼을 개발해 대중을 위한 새로운 건축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재 강원도 양양 ‘설해원’ 리조트를 설계하고 준공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