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맛 기행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간다.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맛있는 걸 줄줄이 만날 수 있어서다. 이번 여행의 종착지는 충남 보령시에 있는 무창포해수욕장이다. 3월에 웬 해수욕장이냐고? 모르는 소리. 이맘때 무창포에서는 소라 껍데기를 풀어 주꾸미를 잡는다. 눈앞에 펼쳐진 서해 앞바다에서 갓 잡은 주꾸미를 먹을 수 있다.
아직 봄이 앉기 전 어느 일요일 아침, 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성산대교를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가면 목적지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아스팔트 위를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해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해대교 위에 올라서니 푸른 빛깔이 눈앞에 펼쳐졌다. 창문을 내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싱싱한 바다 냄새가 세포하나하나를 깨운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게 바다가 주는 에너지를 머금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바다 냄새를 좇으니 보령까지는 금방이었다. 톨게이트를 지나 10여 분 달리니 오늘의 목적지 무창포해수욕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봄의 문턱에서 만난 바다는 청록빛을 띠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파란색 아래 그보다 조금 더 진한 바다색은 누가 부러 색을 골라서 그러데이션을 한 것처럼 어울렸다.
창문을 여니 바깥 공기는 아직 겨울이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보령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에는 겨울의 서늘함이 남아 있었다. 찬바람을 막아줄 따뜻한 옷차림이 필수니 잊지 말고 챙기자. 옷깃을 여미고 무창포 수산시장으로 들어섰다.
싱싱한 봄 주꾸미는 샤브샤브와 궁합이 좋다. 주꾸미의 탱글한 식감과 싱싱한 맛이 살아나는 요리법이다. |
아직 겨울이 묻어 있는 바람을 물리치고 수산시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쥐포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문 앞에 있는 건어물 가게에서 노가리나 쥐포 같은 걸 구워서 관광객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손에 노가리를 하나 받아 들고 본격적으로 수산시장 탐방에 나섰다.
무창포 수산시장은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수산시장 앞바다에서 수시로 막 건져 올린 생물이 배달돼서 그런가 싶다. 수산시장을 돌고 있는데 주꾸미 여러 마리가 들어있는 그물 꾸러미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주인 아주머니가 그물 안에서 꺼낸 주꾸미 크기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제껏 먹었던 주꾸미는 주꾸미가 아니었다 싶을 만큼 컸다. 그중 몇 마리는 주꾸미 특유의 짧은 다리가 아니면 낙지라고 오해할 법했다.
“막 잡아 온 거예요. 지금이 주꾸미 철이라 샤브샤브를 해먹어도 맛있고, 탕탕이를 해먹어도 맛있어요.”
그 한마디에 주꾸미가 점심 메뉴로 결정됐다. 주꾸미 샤브샤브와 탕탕이다.
무창포시장은 다른 수산시장과 마찬가지로 2층 식당에 차림비를 내면 맛있는 한상을 차려준다. 자리에 앉은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주꾸미 샤브샤브가 나왔다. 아직 주인공이 몸을 담그지 않은 냄비 안에는 제철을 맞은 쑥과 미나리의 향긋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1) 바다 위에서 주꾸미를 잡는 어부. 소라 껍데기를 바다에 풀어놓으면 껍데기 안으로 주꾸미가 들어간다. 주꾸미는 바다에 던져놓은 소라 껍데기를 건져 잡는다. 2) 갓 잡힌 주꾸미가 꿈틀대다가 그릇 밖으로 기어 나가고 있다. 3) 충남 보령시 무창포 앞바다 바위에 앉은 갈매기. |
막 잡은 주꾸미로 만든 탕탕이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했다. 커다란 바구니에는 주꾸미 열 마리 정도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다. 집게로 살살 건드리니 놀랐는지 몸을 바짝 움츠린다. 호기심에 대왕 주꾸미를 손으로 집었다. 주꾸미가 손바닥에 붙으려 있는 힘껏 빨판에 힘을 줬다. 작은 구멍이 있는 진공청소기에 피부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미끌미끌한 촉감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얼른 끓는 냄비 속으로 집어넣었다.
손바닥을 빨아 당기던 주꾸미는 몇 초 지나지 않아 눈에 익숙한 붉은빛으로 변했다. 색이 변하자마자 건져서 다리를 자르고 대가리는 다시 탕 속에 넣는다. 안에 있는 내장까지 푹 익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맑은 국물을 선호한다면 주꾸미를 자를 때 먹물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실수로 먹물을 터뜨렸다고 해도 괜찮다. 육수에 흘러든 먹물이 진하고 더 짭조름한 맛을 낸다.
1) 무창포수산시장 상인이 서해에서 잡은 도다리와 주꾸미를 들어 보이고 있다. 2) 봄철 산란기에는 고소한 주꾸미 알을 맛볼 수 있다. 밥알 모양의 알은 찰기가 사라진 쌀밥과 식감이 비슷하다. 3) 주꾸미 산지로 유명한 충남 서산시 삼길포항. 봄철 삼길포항은 주꾸미를 맛보러 온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
살짝 데친 주꾸미를 입으로 넣은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제철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지 납득이 갔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젓가락질을 부추긴다. 씹을수록 입안에서 달큰한 맛이 퍼진다. 주꾸미에는 타우린이 풍부하다는데 그 때문인지 씹기만 해도 짓눌린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다.
한참 먹고 있는데 주꾸미 탕탕이가 나왔다. 탕탕이는 낙지만 먹어봤지 주꾸미로는 처음이었다. 살짝 두른 참기름 양념이 ‘꼬순내’를 풍긴다. 잘게 썬 주꾸미 다리를 숟가락 가득 떴다. 워낙 미끄러워 젓가락질이 쉽지 않아서다. 불에 닿지 않은 주꾸미는 익힌 것과 맛이 좀 달랐다. 익힌 주꾸미가 쫀득하다면 이건 좀 더 탱글하다고 할까. 주꾸미의 싱싱한 향이 입안에 돌자 알코올 생각이 퍼뜩 났다.
소주와 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만큼 궁합이 환상이다. 탕탕이 한 숟갈에 소주 한 잔을 마신 뒤 밖을 내다봤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입맛을 돋운다. 무창포에서 새로운 삼합을 발견했다. 참고로 푹 익은 배추김치에 주꾸미를 올려 먹어도 맛있다.
1) 팔팔 끓는 육수에 주꾸미를 넣어 색이 붉게 변하면 건져서 다리부터 먹는다. 대가리는 더 오래 익혀야 한다. 2) 길쭉한 다리가 낙지 같지만 주꾸미다. 바다에서 갓 잡은 주꾸미가 상인의 손에 잡혀 꿈틀거리고 있다. 3) 낙지 탕탕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주꾸미 탕탕이. 싱싱할 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
끓는 탕 속을 휘저어 주꾸미 대가리를 꺼냈다. 처음 탕 속에 집어넣었던 것과 다르게 단단함이 느껴졌다. 내장까지 잘 익은 것이다. 가위를 들고 대가리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봄 주꾸미의 백미는 바로 대가리 속에 숨어 있다. 주꾸미는 봄이 산란기라 이때만이 대가리에 가득 찬 알을 먹을 수 있다. 수술대에 오른 의사의 심정이 이렇게 비장할까 싶었다. 알을 둘러싼 표면을 조심스레 잘랐다. 하얗고 동그란 알주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싶어 얼른 입에 넣었다. 알을 둘러싼 막이 터지면서 밥알 모양 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동시에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주꾸미를 다 건져 먹었다면 이제 주인공은 면 사리로 바뀐다. 그전에 먼저 냄비 안 염도부터 체크하자. 잘못하다간 주꾸미가 뱉어낸 염분 때문에 소태 맛 국수를 먹을 수도 있어서다. 간이 적당하다 싶을 때 사리를 넣으면 된다. 주꾸미 육수를 머금은 국물에서 시원한 맛이 난다. 이른 봄날 나른한 일요일 점심으로 이보다 더 좋은 만찬이 있을까.
#서해 3월 맛 로드
주꾸미만 있냐고? 다른 먹거리도 많다. 이맘때 아니면 그 맛을 못 내는 먹거리가 천지다. 먹어봤어도 갈 수밖에 없다.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법이니까.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면 알려주는 대로 가면 된다. 적어도 후회하진 않을 맛으로 엄선했다.
충남 서천, 보령 주꾸미
추천 맛집
서천 서산회관(041-951-7677)
엄지네(041-952-0212)
보령 청정횟집(041-936-0135)
그린하우스(041-936-3435)
가볼 만한 곳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 장항스카이워크, 마량포구, 홍원항, 보령 개화예술공원, 죽도 상화원, 무창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왕대사
충남 태안 도다리
추천 맛집
털보선장 횟집(041-672-1700)
온누리회타운(041-673-8966)
가볼 만한 곳
안면도 미로공원, 천리포수목원, 안흥성, 쥬라기공원, 만리포해수욕장, 몽산해변
충남 당진 실치회
추천 맛집
민영이네 횟집(041-352-7882)
해안선횟집(041-353-6757)
가볼 만한 곳
삽교호 놀이동산, 신리성지, 왜목마을, 합덕성당
전북 익산 웅어회
추천 맛집
금강식당(063-861-5242)
어부식당(063-862-6827)
가볼 만한 곳
솜리문화예술회관, 익산토성, 왕궁리 유적, 쌍릉,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