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데 자네이루의 경치 좋은 바위산 트레킹
브라질에는 삼바축제인 카니발 못지않게 유명한 트레킹 코스가 많다. 그중에서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열대 우림 지역인 티후카Tijuca국립공원에는 사람 얼굴 형상을 한 바위 봉우리와, 아찔한 절벽에서 아슬아슬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페드라 다 가베아PEDRA DA GAVEA 산이 있었다.
브라질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던 카니발 기간이 끝나고 휴식도 할 겸, 도심에서 멀지않은 이파네마Ipanema해변 근처의 페드라 다 가베아 산을 올랐다. 리우 데 자네이루는 도심 가까이 북한산처럼 멋진 산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수상인 코르코바도Corcovado를 비롯해 코파카바나Copacabana해변과 이파네마해변을 갖추고 있어, 높은 범죄율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브라질의 2월은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처럼 더웠다. 우기라 후텁지근하기까지 했다.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미 땀투성이가 되었다. 빨리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리소 창구 앞에는 신원을 적는 방명록이 놓여 있었지만, 관리인은 없었다. ‘작은 산 하나 오르는데 무슨 방명록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이유가 있겠지 싶어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노부부가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스쳐지나갔다. 잘 정돈된 아스팔트길이 이어져 있어 관광객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산이라 생각했지만, 정상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지나자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무더위 속 습한 공기와 함께 불쾌하리만치 텁텁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간간이 보이는 노란 화살표의 방향표시만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나무들이 즐비해 있어 한여름의 한국 산을 오르는 듯한 느낌에 잠시 소소한 향수에 젖었다. 길은 점점 가팔라졌고,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철심을 박아놓은 암릉 구간을 기어오르면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극도의 불안감으로 초조해져
간간이 나무에 붙어 있는 경고 표지판에는 ‘절대 혼자서 산행을 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모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있었다. 표지판을 보자 혼자 온 나는 덜컥 불안해졌다. 산책하는 노부부 이후로는 단 한 명도 관광객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길을 잃을까봐 붙여놓은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야생동물이 출몰하거나 악명 높은 브라질의 범죄가 이곳에서도 일어나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제껏 겁 없이 혼자서 장거리 트레킹을 해왔으면서도 ‘설마’로 시작된 초조함은 귀신에 홀린 듯 극도의 불안감으로 번졌다.
누군가 나타나도 걱정이고, 없어도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근교의 낮은 산이라 쉽게 보고 사전조사도 없이 무작정 나선 나의 돌발적인 행동을 후회했다. 시선은 쉴 새 없이 사방을 살피느라 바빴고, 나뭇가지 밟는 소리 하나에도 놀랄 지경이었다. 이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안심할 만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가파른 산길을 뛰다시피 올랐다.
마침내 우거진 숲을 벗어나 조망이 트이는 곳에 올라서자 몇몇의 사람들이 보였고, 불안함은 시원한 바람에 땀과 함께 씻은 듯 사라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두 다리에 극도의 피곤함이 밀려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혼자서 세계 각지를 돌며, 항상 맘속 깊은 곳에 품고는 있었지만, 겁쟁이가 되어 포기할까봐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던 두려움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봉인해제된 느낌이었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포르투갈어에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다시 일어나 ‘아무 두려움 없는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한 거대한 바위를 볼 수 있는 쉼터였다. 깊게 파인 눈과 깎인 듯 선명한 코, 입은 딱히 어디라고 지정할 수 없지만, 뾰루퉁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임에는 틀림없었다. 다들 이 큰바위 얼굴과 함께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나도 시뻘게진 얼굴을 들이대며 이 유명인과 인증샷을 남겼다.
큰바위 얼굴의 안내를 받으며 수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니 북한산 백운대를 닮은 가파른 암릉 구간이 나타났다. 큰바위 얼굴 뒤쪽으로 정상 오르는 길이 있었다. 밧줄 하나에 의지해 올라가려는 사람들로 정체 중이었다.
돈 내고 할아버지의 로프 이용해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도 안전하게 밧줄을 잡고 올라가려 했지만, 70세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하네스를 준비해 놓고, 겁이 많은 관광객들을 도와주며 돈을 받고 있었다. 일종의 로프 이용료를 받고 있는 셈이다. 남미에 존재하는 모든 인공 설치물은 공짜가 없었다. 왕복 5,000원 정도의 비용이라 비싸진 않지만, 사람들이 밀려 있어 그냥 로프 없이 오르기로 했다. 이미 공포감을 맛본 터라 고소에 대한 두려움이 반감된 듯했다. 겁 없는 관광객들은 정해진 루트 없이 여기저기서 오르고 있었다.
나도 가장 안전해 보이는 바위의 홀드를 잡고 오르고 있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상태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밑을 내려다보자 풍경이 말할 수 없이 멋졌지만, 엄청난 고도감은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과도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근육에 기합이 들어간 상태로 정신없이 기어올랐다. 두 발로 설 수 있는 바위에 안착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 있었다. 가볍게 생각한 이 산은 시종일관 나를 쥐락펴락 하고 있었다.
암릉 구간을 벗어나 조금 더 오르자 드디어 넓은 정상에 도착했다. 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니, 페드라 다 가베아의 명소인 둥근 절벽의 끝이었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구도로 아찔함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도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진을 부탁하는 사람들 때문에 녹록하지 않았다. 몇몇의 사진을 찍어 준 뒤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발 844m의 산꼭대기 바위 위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먹구름에 맞닿아 끝을 가늠할 수 없이 대서양이 펼쳐져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정화하듯 초록을 한껏 머금은 이파네마해변을 바라보고 있자니,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르는지 알 수 있었다. 작지만 멀리서도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코르코바도의 예수상을 찾는 재미도 이 산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이 생각지 못했던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흐르자 점점 바람이 강해졌다. 가끔 몸이 휘청할 정도로 몰아치는 바람에 사람들은 절벽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하늘도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이파네마해변에 발을 담그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람과 수풀을 가르며 다시 암릉 구간에 왔다. 강한 바람을 뚫고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할아버지에게 반값을 지불하고 로프에 몸을 맡긴 채 가뿐하게 절벽을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인증샷을 찍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하산길은 외롭지 않게 많은 이들이 함께(?)해 주었다. 오를 때는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혼자 걸어야 했던 것이었다. 아직도 그곳을 왜 혼자 걸으면 안 되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리우 데 자네이루에 들른다면 꼭 페드라 다 가베아산을 오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혼자가 아닌 꼭 누군가와 함께.
트레킹 정보
1 산 높이 | 844m
2 산행 거리 | 2.6㎞
3 소요 시간 | 2시간 30분
4 산행 난이도 | 중상(정상 아래에 30m 정도 가파른 암릉 구간 있음)
5 주의사항 | 범죄가 많은 도시이므로 혼자 트레킹은 삼가 할 것.
6 날씨 | 아마존 강 유역을 제외하면 브라질 대부분 지역은 강수량이 적당한 편이지만 덥고 습한 기후다. 남반구라 우리와 계절이 반대지만 연중 기온 차이가 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