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가곡

목련꽃 그늘 아래서 / 백남옥 Sop.

산야초 2019. 5. 11. 23:11

목련꽃 그늘 아래서 / 백남옥 Sop.

 

 

 

 

                                                                                      첨부파일 백남옥-목련꽃 그늘 아래서.mp3

 

 

4월의 시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박목월 시,김순애 곡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너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크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너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名詩, 名曲을 찾아서 - 4월의 노래 (경향신문 1976.4.3)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질 쓰노라. 그름꽃 피는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 목련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낭만과 생동의 계절 4월의 봄볕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여학생들의 청순한 모습을 아늑히 풍겨주는 노래, '4월의 노래'는 학생시절이면 남녀학생 구별없이 부르며 낭만에 젖게한다. 

 

몇절만 불러도 성인들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즐거움을 연상케 해주고 여학생들에게는 무지개 같은 꿈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비극의 6.25 동란이 끝나가는 1953년 봄에 작곡되었다. 피난살이에서 서울로 수복할 즈음인 53년 봄 '學生界'라는 잡지의 주간인 박두진 당시 연세대 교수가 창간 4월호를 낼 때 학생들을 위한 새 노래를 실어주자는 것이 동기가 되어 박목월씨에게 작사를 의뢰하고 김순애씨에게 작곡을 위촉해서 탄생되었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피난살이와 6.25 사변이 끝나갈 무렵으로 새로운 희망과 구속에서 해방감을 느낄 시기이죠.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정서를 순화시켜주자는 의도에서 '4월의 노래'가 만들어졌습니다.'

 

작사자 박목월씨 (당시 한양대 문리대학장)는 이 노래를 작사할 때, 6.25전 이화여고 재직시 후관앞 목련꽃 나무밑 잔디에서 책을 읽는 여학생들의 인상적인 모습과 그들의 정서, 그리고 지루했던 피난살이의 구질스러운 생활에서 해방되어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 등을 연상했다고 작시 내용을 설명했다.

 

그래서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와 '아 !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라는 귀절이 생겼다고.....  여기에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를 넣어 새봄과 함께 찾아오는 시대적인 희망 (전쟁과 피난살이의 종결)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여학교에 재직할 때, 항상 여학생들이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는 자세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어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슬픔' 등 책을 앍거나 긴 사연의 편지를 쓰는 것 등은 20세 전후의 소녀적인 낭만과 정서를 대표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라고 박교수는 말했다. 처음부터 여학생들이 많이 부르리라는 예상이 적중해 '4월의 노래'는 50년대 말 전국적인 애창곡이 되었다.

 

박교수 자신도 50년대 말 경주여고의 초청강연을 받고 갔을 때 여학생들이 모두 이 노래를 합창하는 것을 듣고 작사자의 입장을 떠나 그들의 소녀적인 정서에 퍽 깊은 감명을 받았던 감명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박교수가 작곡할 것을 전제로 쓴 시로서 의도적인 내용이 있지만, '- 타노라', '- 부노라' 등의 어투는 당시의 가사로서는 새로운 형식으로 요즘도 유사한 어투가 모방되고 있다고 전한다.

 

한편 환도 후 피아노도 없어지고 적적한 방에서 이 노래처럼 화창한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서 '4월의 노래'를 작곡했다는 김순애 교수(이화여대 음대 작교과) 그 당시 자신의 '마음의 봄'을 표현한다는 기분으로 곡을 붙였다고 회상했다.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해 평소 비교적 무관심하다는 김여사는 '4월의 노래'는 60년대를 접어들면서 전국에서 애창되고 있다는 동료들의 인사를 자주 받으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후 바리톤 오현명씨가 취입한 음반을 선물로 받아 명곡을 듣는 기분으로 들어본 일이 있다고 웃었다.

 

음악 인쇄가 힘들 때인데도 잡지에 피아노 반주까지 실어 소개한 것은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하는 김교수는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는 귀절이 특히 뜻이 깊고 좋아 이 귀절을 상당히 강조했다.'사월'과 '등불'에 제일 높은 음을 붙여 희망적이면서도 교육적으로도 의미를 갖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곡가 자신도 이 귀절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 요즘 '4월의 노래'를 혼성 4부합창으로 편곡하고 있다는 김교수는 '지금 이 노래를 보니 그 당시 나도 젊었구나 하는 감회가 든다'고 향수를 느끼는 표정을 짓는다.

 

'작곡은 기법보다는 마음의 음악, 즉 음악적 이미지를 느끼고, 또 갖고 있느냐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김교수는 새로운 경향만을 뒤쫒고 강조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면서 지금도 자신은 작곡을 열심히 하고 여기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이화여대 음대 최초의 작곡과 졸업생으로 40년의 창작생활에서 180여곡을 작곡해왔다.

 

아침께나 한가한 시간이면 남산이나(자택이 후암동) 캠퍼스를 산책하며 英詩 등을 암송하면서 떠오르는 악상을 다듬거나 찾는 것이 취미 중의 하나라고 웃는 김교수는 오늘의 10대들을 위한 또 다른 '4월의 노래'를 작곡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경향신문 1976.4.3 구건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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