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재건된 화석정의 현판에 박정희 대통령이 적은 '병오 사월'의 뜻은?

산야초 2015. 9. 3. 16:56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24):박정희와 율곡의 국방관(上)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재건된 화석정의 현판에 박정희 대통령이 적은 '병오 사월'의 뜻은?

  • 문갑식 블로그
    편집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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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생,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연세대 행정학석사와 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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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03 10:07 | 수정 : 2015.09.0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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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한 대치 상황이 엄중하던 시기, 경기도 파주의 임진강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서 있는 곳은 화석정(花石亭)이라는 정자입니다. 정자 주변에 임진팔경(臨津八景)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팻말이 있습니다. 이곳의 빼어난 경치 8곳을 말합니다.
    화석정에는 임진왜란과 얽힌 사연이 있다. 야사에 따르면 율곡의 말을 듣지않고 국방력을 강화하지않은 선조는 왜군에 쫓겨 피난갈 때 이 정자를 불태워 주변을 밝힌 뒤 임진강을 건넜다고 한다.
    화석정에는 임진왜란과 얽힌 사연이 있다. 야사에 따르면 율곡의 말을 듣지않고 국방력을 강화하지않은 선조는 왜군에 쫓겨 피난갈 때 이 정자를 불태워 주변을 밝힌 뒤 임진강을 건넜다고 한다.
    원래 모습과 눈앞의 풍광은 차이가 컸습니다. 개발하느라 어수선하고 시선을 두는 곳에는 전깃줄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지요. 옛 모습은 간데없고 다리가 놓여 있는가 하면 강변도로는 트럭과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살풍경입니다. 두 달 전 이곳에 왔을 때 놀랐습니다. 화석정이 온통 공사판이었습니다. 뭔가 예전 장인의 기법을 기대했는데 그라인더 같은 공구(工具)가 널려 있었습니다. 문화재를 이렇게 관리하는 우리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에 내내 한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화석정 근처에는 원래 래소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하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화석정에서 본 임진팔경의 안내문인데 지금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화석정 근처에는 원래 래소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하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화석정에서 본 임진팔경의 안내문인데 지금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화석정’은 말끔하게 단장돼 있었습니다. 군사시설 속에 정자 한 채 놓여 있지만 여기엔 우리가 잊어선 역사가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 선생이 어렸을 적 놀던 곳이며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던 장소입니다.
    화석정 옆에는 율곡이 여덟살 때 지었다는 화석정 시가 새겨져있다.
    화석정 옆에는 율곡이 여덟살 때 지었다는 화석정 시가 새겨져있다.
    여담이지만 율곡 선생은 5000권, 그 어머니인 신사임당께서는 5만원권 화폐에 등장하지요. 모자(母子)가 한꺼번에 화폐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정자 터는 고려시대 ‘삼은’중 한명인 야은 길재(吉再)선생의 유지(遺址)가 있던 곳입니다.
    신사임당이 그린 팔폭병풍이다.
    신사임당이 그린 팔폭병풍이다.
    세종 25년, 즉 1443년 율곡의 5대조 이명신이 정자를 건립하고 증조부인 이의석이 1478년 정자를 중수(重修)했으며 이숙함이 ‘화석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랬던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현종 14년(1673년) 다시 세워졌지요. 정자의 운명은 이후로도 역사와 궤를 함께 했습니다. 6·25때 다시 불탄 것을 1966년 파주의 유림(儒林)이 성금을 모아 재건했으니 이 정자 한곳에 우리 역사상 3대 전란이라 할 임진왜란과 6·25의 상흔(傷痕)이 짙게 남아있다고 하겠습니다.
    아침 햇살이 화석정과  느티나무를 비치고있다. 평일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다.
    아침 햇살이 화석정과 느티나무를 비치고있다. 평일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다.
    화석정은 왜군의 전격전에 혼비백산 달아나던 선조가 눈물을 뿌렸던 곳으로 알려졌지요. 비 내리던 날 임진강변에 선조가 다다랐을 때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웠습니다. 그때 누군가 화석정에 불을 붙였는데 활활 타올라 주위를 밝혔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율곡이 훗날 이런 일이 있을 것에 대비해, 정자에 기름칠해놓았다는 야사(野史)가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날 이른 아침 이곳을 찾았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화석정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이다. 가운데 부분이 북한 땅이다.
    화석정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이다. 가운데 부분이 북한 땅이다.
    화석정 바로 앞에 있는 매점을 관리하는 노인은 이렇게 묻더군요. “좋습니까?” 그래서 대답했지요. “얼마 전에 왔을 때 공사 중이어서 다시 왔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두 달 전쯤 오셨겠구먼. 그 공사가 50년 만에 한 것이라오.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께서 세운 뒤로 처음 하는 공사였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요? 분명히 화석정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지방 유림의 성금으로 세워졌다는 말이 있는데…. 그분은 제 의문을 이렇게 풀어줬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1966년 이곳에 왔다가 다 쓰러진 정자의 기초석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면서 돈을 주셨지요.” 그는 놀라는 제게 다시 이런 말을 보태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탕이 돼 지방 유림이 모금을 했고요. 궁금하면 저 위에 현판을 보세요.” 화석정 현판에는 ‘병오 사월(丙午 四月) 박정희’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병오년을 찾아봤지요.<中편에 계속>
    화석정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병오 사월이라고 써있다.
    화석정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병오 사월이라고 써있다.
    Photo By 이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