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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틈새 공간' 만드니 건물 가치 쭉쭉 오르네

산야초 2020. 1. 29. 23:07

생각지 못한 '틈새 공간' 만드니 건물 가치 쭉쭉 오르네

입력 : 2020.01.29 04:16

[미리 만난 건축주대학 멘토] 오세왕 지디엘건축사사무소 대표 “사라진 공간 찾아내는 설계에 주력”

“발코니는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매개 공간이기도 하고 불이 나면 비상 탈출구가 됩니다. 주택에서는 꼭 필요한 공간인데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입주자들이 실사용 면적을 넓히려고 발코니를 모두 확장해 내부 공간화한 탓이죠. 하지만 설계에 조금만 신경쓰면 공간을 넓게 쓰면서 외부 공간도 함께 확보할 수 있습니다.”

포스코 강남사옥, 수원 삼성전자 연구개발센터 등 국내 유명한 오피스 빌딩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오세왕(57) 지디엘건축사무소 대표는 건물을 설계할 때 ‘사라진 공간 찾기’에 집중한다. 그는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법과 비용 문제로 없어지는 공간을 설계에 반영해 실사용 면적을 확보하고 거주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땅집고] 오세왕 지디엘건축사무소 대표. / 김리영 기자

그는 이같은 철학이 담긴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의 타운하우스 ‘빌라드 와이(2010년 완공)’로 대한민국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2012년)을 수상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지은 오피스 빌딩은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상(2009년)을 받았다.

오 대표는 오는 2월 4일 개강하는 ‘조선일보 땅집고 건축주대학’ 11기 과정(▶수강 신청하기)에서 ‘초보 건축주를 위한 주거상가혼합 빌딩 설계 전략’을 강의한다. 강의에 앞서 오 대표에게서 용적률에 반영되지 않는 다양한 서비스 면적을 만들어내는 설계 기술을 미리 들어봤다.

■ 발코니 설치 불법인 오피스텔에 만든 ‘합법적 발코니’

오 대표는 주택에 딸린 ‘발코니’와 ‘테라스’, ‘베란다’ 등의 개념부터 다시 정리했다. 엇비슷해 보여도 법적으로는 형태와 용도, 용적률과 건폐율 규제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 따라서 이 차이를 잘 활용하면 법적 문제 없이 서비스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땅집고] 서비스 면적으로 불리는 다양한 외부 공간과 차양 장치로 확보할 수 있는 공간. /지디엘건축사무소

‘발코니’는 지붕이 없이 외벽에 돌출된 공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으로 지붕과 벽, 창 등을 포함한다. ‘베란다’는 현관에 설치하는 ‘포치(Porch)’처럼 돌출됐지만 지붕만 있는 공간이 2층 이상으로 올라온 형태다. ‘테라스’는 원래 1층 바닥에 데크를 설치한 공간으로 지붕이 없다. 위 그림처럼 위층과 아래층 면적 차이로 생긴 외부공간을 흔히 ‘테라스’라고 부른다.

발코니는 건폐율 계산시 외벽 면적에 포함되지만 용적률 산정에서는 빠진다. 테라스는 바닥에서 1m 이하 높이에 있다면 건폐율·용적률에서 모두 제외된다.

[땅집고] 다양한 옥외 공간의 형태와 규제 내용. /지디엘건축사무소

이런 점에 착안해 오 대표는 발코니와 베란다 같은 옥외공간 설치가 불법인 오피스텔에 숨은 서비스 공간을 만들었다. 울룩불룩한 입면 디자인을 활용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외부공간은 외벽에 돌출되지 않아 발코니가 아니고, 지붕은 해당층이 아닌 위층에 있어 엄밀한 의미의 베란다도 아니다. 합법의 테두리에 있으면서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 서비스 공간인 셈이다.

[땅집고] 발코니처럼 보이지만 해당 층에 지붕이 없고, 외부로 돌출되지 않아 법적으로는 발코니나 베란다로 분류하지 않는 공간이 탄생했다. /지디엘건축사무소

오 대표는 “이런 설계도면으로 2013년 첫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 담당 공무원과 건축주를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오피스텔 시공과 비교해 공사비 차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발코니가 딸린 주택은 분양가를 높일 수 있어 훨씬 이득이었다.

■ 서비스 면적의 극대화…테라스와 발코니의 중복

분당신도시에 지은 타운하우스 ‘빌라드 와이’는 오 대표가 서비스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각종 설계 기법을 도입한 집이다.

[땅집고] 2010년 완공한 분당 구미동의 타운하우스 '빌라드 와이'. /지디엘건축사무소

전체 6개동 총 36가구로 내부 평면과 층수가 집집마다 전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지하1층부터 지상3~4층까지 공간이 계단처럼 사선으로 올라간다는 점이다. 계단식 구조로 아래층 일부분이 위층 테라스로 쓰여 2층과 3층은 테라스와 발코니를 모두 갖게 됐다.

3층에는 용적률에 반영되지 않는 다락도 만들어 실사용 면적이 크게 늘었다. 1층에는 테라스 같은 외부공간이 없는 대신 계단식 구조로 된 2층 건물에 의해 자연스럽게 지붕이 딸린 공간이 생겨났고, 출입문을 내부 방향으로 낼 수 있었다.
[땅집고] 빌라드와이의 공간 구성. /지디엘건축사무소
이런 공간은 일반적인 주택 설계로는 확보하지 못하는 서비스 면적이다. 한 개동에서 이렇게 탄생한 서비스 면적은 총 644㎡, 지상층 총 연면적(1041㎡)의 약 60%에 해당하는 공간을 덤으로 얻은 셈이다.

■“경사지는 축복…땅을 깎아서라도 만들어라”

오 대표는 경사지에 집을 짓는 것은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설계하는 건물은 대부분 지하층이 있다. 지하층은 공간의 절반이 바닥으로 묻힐 경우 용적률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사지는 윗부분 높이를 바닥의 기준으로 삼는다. 오 대표는 경사지가 아니더라도 한쪽 땅을 파서 인위적으로 대지의 단차를 만들고 지하층이 한쪽 대지 안으로 절반 가량이 묻히도록 설계하는 방식으로 지하공간을 활용한다.

[땅집고] 대지의 단차를 활용한 주택 건축 예시. /지디엘건축사무소

경사지를 활용하면 지하층이 확보되고 출입문을 지하층과 반대편 지상층에 각각 하나씩 두 곳으로 낼 수 있다. 주택에서 가치가 가장 낮다는 1층도 몸값이 올라간다. 1층을 띄움으로써 사실상 1층이 2층이 되고, 지하층이 1층으로 격상된다.

오 대표는 예비건축주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무조건 층수를 올리는데 급급해하거나 필요한 공간을 없애가면서까지 내부 면적을 넓히는 것보다 건물마다 활용 가능한 용적률과 건폐율 한도를 점검해보고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에서 틈새 공간을 찾는 편이 건물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