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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멀쩡한 전월세 시장을 암시장으로 만든 정부, 이 난장판 어쩔 건가

산야초 2020. 10. 31. 21:38

[사설] 멀쩡한 전월세 시장을 암시장으로 만든 정부, 이 난장판 어쩔 건가

조선일보

입력 2020.10.31 03:24

정부여당이 밀어붙인 임대차법 시행 3개월 만에 전월세 시장이 뒷돈 거래와 꼼수 계약이 판을 치는 '암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세입자는 집을 나가는 조건으로 집주인에게 거액 '위로금'을 요구하고, 집주인은 보증금 5% 상한선을 우회하기 위해 '이면 계약'을 강요한다. 전셋집을 보려면 '관람료'를 내야 하고, 중개업자에게 '급행료'를 찔러줘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임대차법 시행 3개월 만에 전월세 시장이 뒷돈 거래와 꼼수 계약이 판치는 암(暗)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무기로 공공연하게 위로금을 요구하고, 집주인은 5% 전월세 상한선을 우회하기 위해 이면 계약을 강요하는 등 뒷돈 암거래가 확산하고 있다. 경제부총리마저 매도한 집의 세입자를 내보내느라 위로금을 줘야 했을 정도니 일반 국민이야 오죽하겠나.

 

꼼수 거래 유형도 다양해져 전세금 증액 상한선인 5% 이상 올리는 금액은 나중에 반환할 보증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속하는 이면 계약이 등장하는가 하면 새로 쓰는 전세 계약서에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이미 사용했다고 명시하게 만드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세입자가 못 나가겠다고 버티면 위로금, 이사비를 따로 챙겨줘서 내보내는 관행도 정착하고 있다. 위로금 액수도 갈수록 커져 서울 강남권에선 4000만~5000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모든 파행과 꼼수 거래의 도화선이 임대차 3법이다. 정부·여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임대차법이 당초 우려대로 전세 매물 품귀와 전셋값 폭등을 촉발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이번 주에도 0.1% 상승하며 70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수도권 전셋값 상승률(0.23%)은 5년 만에 가장 높았다. 5대 광역시 전셋값 상승률(0.24%)은 수도권보다 더 높아 전셋값 폭등 양상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세 매물이 하도 귀하다 보니 집을 보여주는 대가로 관람료를 받는가 하면, 중개업자에게 급행료를 찔러줘야 하는 경우까지 등장했다.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규제 강화 등의 여파로 새 아파트 공급 물량은 갈수록 줄고 있어 전세 대란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6900가구로 올해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새로 분양한 아파트가 165채에 그쳐 작년 같은 기간의 10분의 1로 격감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미친 집값과 전셋값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다”는 청년의 하소연까지 등장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딴 나라에 사는 듯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는 원론적인 말뿐이다. 문제의 근원인 임대차법은 놓아두고 어떻게 안정시키겠다는 건가. 잘못 설계된 법과 부실 정책이 이 난리를 불러일으켰는데도 국토부 장관은 ‘코로나’와 ‘저금리’를 탓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 정권’ 핑계를 대고 있다. 집 없는 주거 취약층은 당장 눈앞이 캄캄한데 언제까지 현실을 보지 않고 남 탓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