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통영 바닷길도 경고…동맹도 안 봐주는 항행의 자유 작전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4.25 05:00 수정 2021.04.25 10:26
인도 외교부는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인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외국 군함이 무단으로 항해한 사실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서 퀴즈 하나. 어느 나라의 군함이 인도 EEZ를 ‘무단항해’했을까?
이철재의 밀담
대다수는 요즘 남중국해를 넘어 인도양까지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미국이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함과 강습상륙함인 마킨 아일랜드함이 남중국행서 합동 훈련을 벌이고 있다. 이 훈련은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얼티메이트 밀리터리 채널 유튜브 계정 캡처
?잠깐. 미국이라고? 미국은 요즘 인도와 중국을 견제하는 쿼드(Quad)로 끈끈하게 맺어졌다. 군사동맹에 버금가는 사이다. 그런데 미국이라니….
미국 해군은 지난 7일 보도자료를 내고 7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인 존 폴 존슨함(DDG 53)이 락샤드위프 제도 서쪽 130해리(약 241㎞) 인도 EEZ 안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을 펼쳤다고 밝혔다.
인도 허가 없이 군함 진입, 알고보니 동맹국 미 해군
?또 잠깐. 항행의 자유 작전은 도대체 뭐지?
지난 8일 남중국해에서 미국 해군의 전투기와 말레이시아 공군의 전투기가 편대를 이뤄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위로 날아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군사적 교류를 늘리고 있다. 미 해군 유튜브 계정 캡처
항행의 자유 작전은 미 해군이 국제해양법에 근거하지 않은 권한을 주장하는 외국의 해역에 군함을 보내 통과하는 군사 작전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 해당 국가의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그 근거를 남기는 효과를 본다.
지금까진 미국이 항해의 자유 작전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섬에 대한 군사작전이라고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미 국방부가 하원에 제출한 ‘2020회계연도 항행의 자유 작전 연례 보고서(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미 해군은 19개국을 상대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행했다. 이들 국가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도 들어가 있다.
실제로 미 7함대는 지난달 31일 보급함인 찰스 드루함(T-AKE 10)을 한국의 국도(경남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 인근 바다로 보내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였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중국은 남중국해 피어리 크로스 리프(중국명 융수자오(永暑礁))에 활주로를 비롯 군사 시설을 지어놨다. 미국은 이 같은 중국의 조치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고 있다. CSIS
정부와 군 당국에 따르면 찰스 드루함은 일본 쓰시마(對馬島)에서 남해 욕지도 서남쪽에 진입한 뒤 이탈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 군함이 영해에 진입하려면 늦어도 하루 전에 우리에게 알린다”며 “한ㆍ미간 사전 교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급함인 앨런 셰퍼드함(T-AKE 3)은 지난해 12월 15일 대한해협 동수도(일본명 쓰시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했다는 7함대의 보도자료가 있다.
항행의 자유, 미국에겐 반드시 필요한 ‘국시’
?이쯤이면 미국은 동맹국을 상대로도 무자비하게 군함을 보내 항행의 자유를 강행하는 나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엔 나름의 명분이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에게 항행의 자유는 국시(國是)와 같다.
미국은 177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뛰어든 전쟁을 살펴보면 바다와 관련 있는 게 대다수다. 1801~1805년과 1815년 북아프리카 해적을 상대로 바르바리 전쟁을 치렀다. 영국이 미국 선원을 마구 징발한 걸 계기로 1812년 미영 전쟁이 일어났다. 1898년 미 해군 전함 메인함이 폭침된 뒤 스페인과 싸웠다.(미서 전쟁)
중립을 지킨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참전한 이유도 바다 때문이다.
독일의 잠수함이 영국의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침몰시키면서 126명의 미국인이 숨졌다.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독일에 “합법적 사업을 위해 공해상 어느 곳이라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미국 시민의 명백한 권리가 침해됐다고 밝혔다. 미국은 전쟁에 뛰어들었고, 연합국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후 윌슨 대통령은 전후 질서를 제안한 14개조 중 2항에 “평시나 전시를 막론하고, 영해 바깥 공해 상에서의 항해는 절대 자유”라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도 일본이 태평양의 미국 핵심 군사기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뒤 이뤄졌다.
김진형 전 합참 전력부장(예비역 해군 소장)은 “미국이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한 뒤 세계 경제의 큰 틀을 짠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기본적 조건이 미국이 서방 진영의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가간 무역을 활성화해 시장 경제를 키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 함대의 책임 구역(AOR). 미국 영해뿐만 아니라 전 세계 5대양을 아우른다. 7함대(7th Fleet)는 하와이 서쪽부터 인도양까지를 담당한다. Reddit
미 해군의 책임구역(AOR)을 보자. 미 해군의 함대는 미 영해가 아닌 전 세계의 5대양을 나눠 가진다. 7함대는 하와이 서쪽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담당한다.
항해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항해의 자유 작전으로 나타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항해의 자유 작전은 합법적인 통상과 전 세계에서 미군의 이동을 확보하기 위해 1979년에 시작했다.
동맹 한국과 일본도 예외 없어, 단 배려는 가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158개 곳에서 과도한 해양권 관할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158곳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영해 기점. 주로 서해와 남해에 모두 23개가 있다. 이 기점을 직선으로 연결한 게 직선 기선이다. 해양수산부 네이버 블로그
미국은 한국의 영해 직선 기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영해는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바다다. 1982년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기점을 연결한 기선으로부터 12해리(약 22㎞)까지 영해로 삼는다. 그런데 섬이 많은 바다에선 영해를 정하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을 기점으로 삼고, 직선으로 기선을 긋는다.
한국의 영해 기점은 모두 23개다. 그런데 지난달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이의를 건 곳은 7번 기점 홍도(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로 보인다. 이 무인도를 기점으로 직선 모양의 기선이 그려졌다. 국제법 전문가인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기범 교수는 “유엔 해양법 협약 7조 3항엔 ‘직선 기선은 해안의 일반적 방향으로부터 현저히 벗어나게 설정할 수 없다’고 돼 있다”며 “미국은 한국이 이 조항을 어겼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 영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이번에 처음 한 것이 아니다. 보고서는 미국이 지난해에도 한국 서해에서 항해의 자유 작전을 실행했다고 썼다. 이기범 교수는 “미국이 지난해 15번 영해 기점인 서해 소국홀도(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를 콕 집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매년 우리 영해에서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한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한국 남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친 미국 해군의 보급함인 찰스 드루함. 미 해군
일본 쓰시마 해협의 직선 기선도 미국이 보기엔 과도하게 일본 위주라고 판단한 것이다. 인도는 경우가 다르다. 미국은 인도가 자국 EEZ에 진입하기 전 사전 통보하라는 데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미국은 EEZ는 사전 통보 없이 항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기범 교수는 “유엔 해양법 협약은 EEZ에서 항해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향한 항행의 자유 작전, 앞으로 더 강경해질 듯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사실상 동맹국인 인도, 우호국인 대만에 대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불사하는 것은 결국 남중국해에서 암초에 군사 시설을 짓고 영해를 주장하는 중국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2018년 9월 30일 남중국해에서 항해의 자유 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인 디케이터함에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뤼양(旅洋)급 구축함이 45야드(41m)까지 접근했다. 디케이터함이 회피 기동으로 충돌을 막았다. 당시 중국 구축함 승조원이 충돌할 때 충격을 덜하기 위해 부이를 측면에 달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유투브 계정 캡처
군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 동맹국이나 우호국에게도 항행의 자유는 예외가 없는 원칙이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도의 국제문제 전문가인 마노즈 조시 연구위원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동맹국인 인도가 유엔 해양법 협약을 넘어 과도한 해양권 관할을 주장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이라는 사실을 중국에 보여주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이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리비아는 1973년 시드라만을 자국의 영해라 선포했다. 반면 미국은 리비아의 영해는 연안을 따라 설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1981년과 1986년 미국은 항모 전단을 시드라만에 보내 리비아와 교전을 벌였다.
1981년 8월 19일 시드라만에서 미국 해군의 F-14가 리비아 공군의 Su-24를 향해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이 교전으로 리비아 공군기 2대가 격추됐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 위키미디어
이와 달리 미국은 한국과 일본엔 전투함이 아닌 보급함을 보내 나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직선 기선 기준에 따른 영해 구분이 과도하다는 건 미국의 견해고, 우리는 객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한 측정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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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알음알음 동맹국에게 해오던 항행의 자유 작전을 미국이 이제는 보도자료를 내면서까지 세상에 알리는 게 심상찮다. 동맹국에게도 원칙의 예외가 없다는 미국은 앞으로 중국을 더 거세게 바다에서 봉쇄하려고 할 전망이다.
이철재ㆍ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美, 통영 바닷길도 경고…동맹도 안 봐주는 항행의 자유 작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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