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유동규 버린 이재명… 안희정 지킨 노무현에게 배워라
[서민의 문파타파]
불법정치자금 구속된 안희정
“빚졌다” 울어버린 노무현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
입력 2021.10.09 03:00
“원래 리모델링 하던 분인데 선거를 도와주셨고….”
대선 후보 토론 도중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질문을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는 유씨와의 인연을 리모델링 얘기로 시작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유씨는 2008년 분당 아파트 단지의 리모델링 추진위원회 조합장을 맡는다. 이후 이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출마하자 유씨는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데, 그 이후부터 그는 출세가도를 달린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2010년 시장직 인수위원회 간사가 됐고, 그 뒤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공사) 기획본부장, 사장 직무대행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한다.
공사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이 지사와의 친분을 내세운 유 전 본부장이 공사 내 실세였다.” 이 지사는 그럴 만한 실력이 돼서 기용한 거라 했지만, 유씨는 기획본부장이 될 때 임원 인사 규정에서 열거한 자격 요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유씨는 ‘임명권자가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자’에 해당돼 공직자가 된 셈. 그 특별한 사유가 뭔지 궁금하긴 하다. 휴대폰 창 밖으로 던지기나 뺨 때리는 능력 등은 충분히 검증됐지만, 그게 공사 일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물론 유씨가 일방적으로 시혜만 입은 것은 아니었다. 이 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본부장이던 유씨는 직원들을 이끌고 재판정에 간다. 성남시의회 회의록에는 당시 상황이 잘 묘사돼 있다.
일러스트=유현호
시의원: 본부장부터 간부들이 전부 응원차 새벽부터 나갔지요?
유씨: 예, 그렇습니다.
시의원: 이재명 시장 쫓아다니면서 90도 절하고 팀장들 전부 동원해서 거기서 인사하라고 발령 낸 거예요?
유씨: 90도 인사한 게 아니라 겸손하게 공손하게 인사했습니다.
자신을 질책하는 시의원 앞에서도 당당한 유씨를 보면서 감동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을까? 훗날 경기지사가 된 이재명은 관광 분야에 전문성이라곤 없는 그를 차관급인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임명함으로써 화답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 언론은 유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심(李心)을 읽는 몇 안 되는 정무라인.’ 이런 이를 우리 사회는 ‘측근’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심’은 박정하기 짝이 없어, 사태가 불리해지자 이 지사는 유씨가 측근이라는 걸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얼마 전 토론회 도중 이 지사는 유씨가 측근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산하기관 중간 간부가 다 측근이면 측근으로 미어터질 것이다.” 이 지사는 심지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측근설을 반박한다. 유씨가 관광공사 사장으로 재직할 때 영화 제작 예산 380억원을 요청했는데 자신이 거절했고, 이에 상심한 유씨가 관광공사 사장을 때려치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유씨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다. “측근 그룹에도 끼지 못한다.” 이쯤되면 그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내려야 할 듯싶다.
사전을 찾아보니 ‘측근’은 ‘곁에서 가까이 모시는 사람’. 오랜 기간 이 지사의 곁을 지켰던 유씨로서는 그의 거듭된 부인이 서운할 수 있겠다. 이 지사와의 관계를 묻는 기자에게 유씨가 “개인적 친분으로 엮으려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나도 더 이상 당신 측근이 아니’라는 선전포고이리라.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가 국정원 기획실장으로 들어가서 그 조직을 다 바꿔놓겠다고 말했다는 유동규.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로 끌려가는 그의 얼굴에선 ‘내가 왜 저런 인간의 측근 노릇을 했을까?’라는 회한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이 지사와 비교되는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이하 노통)이다. 그에게는 안희정(이하 안씨)이라는 측근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일로 감방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노통의 신뢰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노통 당선 후 대선 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보좌관이었던 안씨가 몇몇 대기업에서 47억원을 모금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선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당시엔 기업에서 돈을 받는 고질적 관행이 있었으니 당시 대선 캠프의 살림꾼이었던 안씨에게만 죄를 묻는 건 가혹해 보인다.
문제는 그가 받은 돈 일부를 개인 용도로 유용했다는 점이었다. 1억6000만원을 자신의 아파트 중도금을 내는 데 쓴 것은 노무현 정부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게다가 안씨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인 2003년에도 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고, 그중 1억원을 자신이 출마하려던 지역구의 여론조사에 사용한 바 있다. 이외에도 안씨는 나라종금으로부터 퇴출되지 않게 해달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혐의가 불거져 기소된 바 있다. 결국 안씨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1년의 옥살이를 한다.
이런저런 혐의로 안씨가 검찰에 불려나가던 때, 노통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2003년 5월 1일, 노 대통령은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안희정씨가 노 대통령 대신 매를 맞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그러자 노통은 이렇게 대답한다. “안희정씨는 오래 전부터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였다. 사리사욕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이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8년 1월, 노통은 안씨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동영상을 찍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켰습니다. 안희정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했죠. 나는 엄청난 빚을 진 것입니다.” 촬영 도중 노통은 얼굴을 책으로 감싼 채 울음을 터뜨렸다. 안씨의 옥살이가 자신 때문이라는 고백으로 들렸다. 덕분에 안씨는 노통을 이롭게 하려고 총대를 멘 의로운 사람이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그 후 안씨가 충남지사에 당선되고,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정치자금을 받아 개인 용도로 쓴 이를 끝까지 버리지 않은 노통과 자신에게 오랜 기간 헌신한 이가 수사 대상이 되자 측근이 아니라고 한 이재명 지사. 이 둘의 간격은 너무도 넓다. 그래서 외쳐본다. “이 지사는 유동규가 측근임을 인정하라! 잘되면 측근이고 잘못되면 측근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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