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행정부가 공약 발굴…관권 선거 조짐 심각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11.0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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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공약 발굴’ 지시 의혹이 제기된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선관위, 산업부 차관 선거중립 수사 의뢰
야당, “공권력 동원한 총체적 관권선거”
대선 본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현 정부 청와대 출신 정무직 고위 공무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는 일이 벌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공약 발굴을 지시한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대검에 수사 의뢰한 것이다. 박 차관은 지난 8월 산업부 회의에서 ‘대선 캠프가 완성된 후 의견을 내면 늦는다. 공약으로 괜찮은 느낌이 드는 어젠다를 내라’는 취지로 주문했다고 한다. 박 차관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와 선거 관여 금지 규정을 위반했는지가 조사 대상이다.
박 차관 논란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매우 부적절하고 재발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에서도 의혹이 불거졌다. 김경선 차관이 지난 7월 과장급을 상대로 정책공약 회의를 열고 제출을 지시했다는 야당 측 주장이 나왔다. 부처발 의혹이 잇따르자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
김부겸 국무총리는 어제 부랴부랴 전 부처 공직자에게 편지를 보내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를 지시했다. 하지만 공약 발굴 의혹에 대해선 “오해가 있더라도 민감한 시기에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적절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는 선에서 그쳤다. 총리실은 현 정부의 성과와 아쉬운 점, 새 과제 등을 행정백서처럼 정리해 여야 후보 측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임명한 이들이 주도한 ‘정책 과제 발굴’은 여당 후보 지원용이란 의심을 벗기 어렵다. 김 총리 스스로 중단하는 게 맞다.
사설 다른 기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추진하며 예산 당국을 압박하는 것도 관권선거 시비를 낳고 있다. 이 후보는 어제 첫 선대위 회의에서도 “국가부채비율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당에 적극 추진을 주문했다. 이 후보와 경기지사 시절 마찰을 빚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여당 대선후보가 밀어붙이니 즉답을 피한다. 김 총리가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막 뒤지면 돈이 나오느냐”며 난색을 보였지만, 대선 전 지급 가능성은 남아 있다.
사정이 이러니 야권에서 관권선거 중단 요구가 나온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문 대통령을 향해 “총체적 관권선거 책동을 중단하라”며 “이재명 후보를 지원하려고 정부·여당이 국가 공권력과 예산, 정책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리, 국정원장, 법무부·행안부 장관 등 선거 관련 주무부처 수장이 여당 출신 정치인이라며 선거중립 내각 구성도 요구했다. 정치인 출신이 장관인 교육부가 논문 검증과 관련해 국민대와 가천대에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논란도 이는 상황이다. 관권선거는 시비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른다. 문 대통령과 김 총리는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는 자세로 관권선거의 싹부터 잘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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