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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짜’ 심했던 강청댁의 할미꽃 순정

산야초 2022. 4. 9. 12:13

[김민철의 꽃이야기] ‘강짜’ 심했던 강청댁의 할미꽃 순정

<138회>

입력 2022.04.05 00:00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서 용이의 아내 강청댁은 비호감형 인물 중 하나다. 용이는 무당의 딸 월선이를 잊지못하고 월선이가 강제로 시집갔다가 돌아와 하동 읍내에 주막을 차리자 장날마다 월선이를 찾는다. 강청댁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짜증과 질투로 이글이글 불타는 얼굴로 빗자루를 내던지며 “이놈의 살림살이 탕탕 뽀싸뿌리고 머리 깎고 중이 되든가 해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강청댁은 호열자(콜레라)가 평사리를 덮쳤을 때 맨 처음 허망하게 죽는다. 남긴 자식도 없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당연한 반발이지만, 소설에서 강청댁은 마을 사람들에게 강짜가 심하다는 평을 받고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월선이가 평사리에 와서 용이를 만나고 간 것을 알고 삼십리 밤길을 달려가 월선이에게 행패를 부리는 장면도 나온다. 인물도 키가 작고 ‘살결이 가무잡잡’하고 ‘풋살구처럼 오종종한 빈한한 얼굴’이라고 했다. 얼굴이 ‘분꽃같이 뽀얀’ 월선이와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작가는 강청댁이 죽고 난 다음 용이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신혼 때 에피소드 하나를 전하고 있다. 혼인을 치른 직후 용이는 봄갈이에 나섰는데 강청댁이 점심을 이고 온다.

 

<점심을 끝내고 돌아보았을 때 새댁은 언제 갔었던지 산기슭 쪽에서 급히 논둑길을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할미꽃 한움큼이 쥐어져 있었다. 가까이까지 온 새댁은

“저어, 이거,”

할미꽃을 용이 코앞에 쑥 내밀었다.

“피었소.”

하고 해죽이 웃었다.

“벌써...”

입속말도 우물쩍거렸다. 새댁 얼굴이 빨개졌다. 용이 얼굴도 붉어졌다.

“봄이니께.”

훌쩍 일어서서 그 동안 논둑의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 곁으로 간다. 소를 논으로 몰고 가서 쟁기를 끼우며 용이

“어서 가아!”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새댁에게 소리를 질렀다.>

 

요즘 피기 시작한 할미꽃.

 

용이와 강청댁은 이맘때 혼인을 치른 모양이다. 요즘 서울에도 할미꽃이 피고 있다. 작가는 강청댁이 허망하게 죽은 것이 미안해서였을까. 강청댁에게도 새 신랑에게 할미꽃을 꺾어주는 순정이, 용이에 대한 사랑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할미꽃은 이름부터 참 정다운 꽃이다. 우리나라 거의 전역에서 볕이 잘 드는 야산의 자락, 특히 묘지 근처에서 볼 수 있다. 키는 한 뼘쯤 자라지만 아주 굵고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고개 숙인 꽃송이를 보면, 꽃잎은 검붉은 색이고 그 안에 샛노란 수술들이 박혀 있다. 다섯장으로 갈라진 잎도 개성 만점이다. 줄기와 잎은 물론 꽃잎 뒤쪽까지 가득 돋아나는 솜털들은 할미꽃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요즘 피기 시작한 할미꽃.

 

할미꽃이란 이름은 꽃이 지고 열매가 익으면 그 열매에 흰털이 가득 달려 마치 하얗게 센 노인 머리와 같다고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할미꽃의 한자 이름은 백두옹(白頭翁)이다. 열매에 붙은 긴 깃털 같은 것은 씨앗을 가볍게 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할미꽃은 한창 꽃다운 시절엔 허리를 숙이고 있지만 열매가 익으면 언제 그랬냐는듯 꽃대를 위로 곧게 세운다. 조금이라도 위에서 씨앗을 날려야 더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피기 시작하는 백합과 식물 처녀치마도 수정한 다음 꽃대를 쑥쑥 올리는 전략을 갖고 있다.

 
요즘 피기 시작한 할미꽃.

한때 할미꽃을 참 보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도시는 물론 시골에 가도 할미꽃을 보기 힘들고 깨끗한 산에 가야 겨우 한두개 볼 수 있었다. 이 꽃이 공해에 특히 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환경이 나아지고 농약도 적게 쓰면서 예전보다는 야생의 할미꽃이 늘어난 것 같다. 더구나 그 사이 원예종으로 증식한 할미꽃이 크게 늘어나면서 공원이나 화단에서 할미꽃을 쉽게 볼 수 있다.

 

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답게 강한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꽃을 만진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독이 오를 수 있다. 할미꽃을 꺾은 강청댁도 손이 부어올랐을지 모른다.

 

할미꽃이 요즘 부활하는 꽃이라면 동강할미꽃은 워낙 유명한 아이돌급 야생화다. 검붉은 할미꽃에 비해 매우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로 피어 동강 절벽을 장식하는 꽃이다. 구부정하게 피는 할미꽃과 달리, 동강할미꽃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이다. 형태학적으로는 할미꽃에 비해 암술과 수술 수가 적은 점이 다르다.

 

동강할미꽃. 오른쪽이 동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