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사 불화 속 ‘숨은 태극기’ 105년 만에 발견… “일제 눈 피해 그린 듯”
입력 2023.02.21 15:42
지난해 11월 초, 전북 남원 선원사의 전각 명부전에서 주지 운문 스님이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문득 부처 뒤편에 걸린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지장보살과 명부의 시왕을 그린 불화)’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 저건…!” 그림 속에서 태극과 4괘를 갖춘 태극기가 보였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분명 태극기였다.
105년 만에 발견된 ‘숨은 태극기’ 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선원사는 16일 “1917년 제작 탱화 ‘지장시왕도’(184㎝×171㎝) 속에서 태극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독립운동 정신 고취를 위해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불화 속에 태극기를 그려넣었다는 것이다.
태극기는 변성대왕으로 추정되는 그림 속 한 캐릭터의 관모에 사다리꼴 형태로 그려져 있다. 크기는 가로 8.3㎝, 세로 4㎝다. 아직 태극기가 오늘날의 형태로 정착되기 전이라 태극의 색깔과 4괘의 위치는 지금과 차이가 있다. 탱화 밑에는 ‘다이쇼(大正) 6년’(1917년)이라는 연도 표기와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이 적혔다. 이 그림은 1917년 11월 5~17일 당시 주지인 기선 스님이 화엄사 주지 진응 스님의 감독하에 수화승 만총 등이 그리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명호 전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불화에서 태극기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만해 한용운과도 교류했던 진응 스님이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그려 넣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는 1912년 칙령 19호로 기념일 등에 일장기를 게양하도록 해 태극기를 금지했고, 이런 엄혹한 시기에 불화에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은 위험을 무릅쓴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태극기가 그려진 관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변성대왕은 칼로 남을 괴롭힌 죄인이 칼로 인한 고통을 받는 도산지옥을 관장하는데, 일제가 반드시 칼로써 망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얘기다. 선원사는 이 그림의 근대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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