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양국 고위 공직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조셉 바이든 부통령, 통역, 오바마 대통령, 박 대통령, 윤병세 외교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승식 기자]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렸던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뒷얘기들이 외교가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두 정상의 첫 만남이었던 이날 회담은 당초 예정 시간을 20여 분 넘겨 끝났고 오찬장으로 가는 도중 로즈가든 쪽 복도를 걸으면서 10분간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이날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고위 관계자는 13일 “회담이 마냥 매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백악관 오벌룸에서 만난 두 정상은 처음에는 담담하게 서로의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길게 이어지자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 중간에 들어가는 일이 두세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박 대통령에게 그런 면이 있었는지 놀랍기도 하고 다소 아슬아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영어실력이 수준급인 박 대통령이 자신이 꼭 해야 할 얘기가 있을 때 적절히 개입하면서 회담 분위기를 이끌어간 것이란 설명이다.
특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할 땐 팽팽한 신경전도 있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의 말을 받으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 했지만 박 대통령은 다시 화제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양국 간 주요 현안인 원자력 협력협정 개정 문제는 자칫 시간이 빠듯해 논의되지 못하고 넘어갈 뻔했으나 박 대통령이 ‘불씨’를 살려내 회담 막바지에 의제에 올랐다. 시간에 쫓기자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설명을 듣다가 “이제 자리를 옮겨 얘기하자”고도 했지만 박 대통령은 “잠깐만요”라고 제지하며 계속 협상 얘기를 이어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외교라인 핵심 관계자도 “회담이 끝나기 직전, 막판에 박 대통령이 원자력 협정 얘기를 꺼내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선진적이고 호혜적인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발표했다.
회담엔 미국 측에서 조셉 바이든 부통령, 척 헤이글 국방장관, 토머스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배석했지만 두 정상의 대화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발언 차례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이분도 외교를 잘 아는 전문가”라며 바이든 부통령을 소개했다. 이어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분인데 오늘 말이 없다. 한마디 하시라”고 해 바이든 부통령에게 발언 기회를 주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한 흔적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아시아 패러독스란 용어를 먼저 사용했다고 한다. 아시아 패러독스는 국가 간 경제적 의존은 늘어나도 정치·안보 협력은 뒤처지는 현상을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박 대통령의 중국어 구사 능력이 좋아 한·중 관계를 강화시키기 좋을 것” “정치인은 약속을 중시해야 한다”는 언급도 했다.
◆“큰 성과 있었다”=박 대통령은 13일 귀국 후 처음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통해 한·미 동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미국 측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냈다”며 “다행히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경제면에서도 실질적인 양국 간 경제협력 증진 방안들이 논의됐고, 우리 경제인들과 함께 대북 리스크를 불식시키고 활발한 투자 유치 활동을 통해 3억8000만 달러 투자를 이끌어 내는 성과가 있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