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조선왕조 인목대비 친필 족자

산야초 2015. 12. 26. 19:58

 

인목대비친필족자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 (안성시)
명     칭 인목대비친필족자(仁穆大妃親筆族子)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서예/ 서예
수량/면적 1폭
지 정 일 1973.07.10
소 재 지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칠장사

 

전문설명

이 족자는 인목대비(1584∼1632)가 쓴 것으로, 영창대군을 잃고 폐모의 위기에 몰려 용주사의 암자였던 칠장사로 피해 있을 때로 추정된다.

인목대비는 조선 선조임금의 계비(繼妃:임금이 두번째로 결혼하여 얻은 비)로, 선조 35년(1602) 왕비에 책봉되었고, 1606년 영창대군을 낳았다. 당시 세자는 광해군이었는데 실권자이던 유영경이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 했으나,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왕이 되었다. 그러자 왕통의 취약함을 감추기 위해 광해군은 선조의 첫째 왕자인 임해군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살해했으며, 또한 인목대비를 폐비시킨 뒤 서궁에 감금하였다.

이 족자는 억울하게 죽은 친정아버지 김제남과 영창대군을 생각하면서 칠언시를 직접 써서 김광명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칠언시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늙은 소는 힘을 쓴지 이미 여러 해

목이 찢기고 가죽이 뚫려 다만 부처의 자비스러운 눈뿐이로구나

쟁기질과 써레질이 이미 끝나고 봄물은 넉넉한데

주인은 어찌 심하게 또 채찍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