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동요 속 ‘얼룩송아지’는 우리 토종 한우 ‘칡소’

산야초 2016. 3. 28. 14:57

동요에 나오는 얼룩송아지는 젖소가 아니다



동요 속 ‘얼룩송아지’는 우리 토종 한우 ‘칡소’

- 농가의 든든한 일꾼이자 살림 밑천이었던 한우

- 동요 속 얼룩송아지, 얼룩배기 황소는 모두 칡소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깨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가 있듯이. 오늘은 까치의 설날이다. 예부터 우리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였다. 우리 조상님들은 설날이 되면 고향으로 찾아 올 자식들이 무사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길조로 여긴 까치의 설날까지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설을 앞두고 내린 폭설로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이 도로가 미끄러워 추위에 고생이 많단다. 하지만 고향에서 따끈한 음식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마음은 벌써 고향에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가장 먼저 부르던 동요가 바로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이다. 소띠해 설날을 맞아 그 근원을 살펴 보았더니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젖소가 아니라 토종 한우인 칡소인 것으로 밝혀졌다. 마치 호랑이 표피를 닮은 우리 토종 한우 칡소의 늠늠한 모습.


 동요 속 얼룩송아지를 젖소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

  올해는 소띠의 해이다. 소는 우직하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 내 아버지의 곁에서 논과 밭을 갈고 짐을 운반하는 일소로, 자식의 대학자금을 조달하는 든든한 재산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살림밑천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우를 우리의 자존심이라고까지 부른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심화된 것도 한우가 민족의 자존심과 같은 존재로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 민족과 역사를 같이 해 온 한우. 그런데 한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바로 동요 속에 나오는 얼룩송아지를 젖소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1930년에 박목월 시인께서 작사하신 동요 ‘송아지’의 가사를 보면,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동요에 나오는 얼룩송아지는 과연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룩 송아지를 외국에서 들여 온 얼룩덜룩한 젖소로 알고 있다. 하긴 외국에서 들여온 젖소인 ‘홀스타인’은 무늬가 얼룩덜룩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얼룩송아지는 젖소가 아니다. 가장 쉽고 많이 부르는 동요 ‘송아지’의 주인공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 토종 한우인 ‘칡소’이다.

 

 

칡소는 황갈색, 검은색, 흑갈색 등 여러 색이 온몸에 칡덩굴 같은 얼룩무늬가 있는 황소를 말한다. 털의 무늬가 호랑이와 비슷하여 호반우(虎班牛)라고도 부른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얼룩배기 황소나 동요의 얼룩송아지, 그리고 이중섭 화가의 소 그림도 모두 칡소이다.




동요 속 얼룩송아지는 토종 한우 ‘칡소’가 맞아

  얼룩덜룩한 서양의 젖소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02년이다. 당시에 몇 마리가 들어 왔으나 보급이 널리 되지 못해 몇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박목월 시인께서 ‘송아지’를 작사하신 연도가 1930년이긴 하지만 이 시기에는 젖소가 크게 보급되지 않은 시기이다. 박목월 시인은 젖소를 보고 쓴 글이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에 많이 자라고 있던 얼룩배기 ‘칡소’를 보고 동시를 쓰셨다고 한다.

 

  때문에 동요 속에 나오는 엄마를 닮은 소는 우리나라 토종 한우 중 하나인 호피 무늬가 얼룩덜룩한 ‘칡소’이다. 올해 설날을 계기로 여럿이 모인 장소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아 나가는 것도 소띠의 해에 맞는 설날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제의 수탈로 사라진 ‘칡소’의 운명

  우리나라 토종 ‘칡소’는 온 몸이 황갈색 바탕에 칡넝쿨이 우거지듯 흑색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온 몸에 얼룩무늬가 있는 칡소는 힘이 아주 세고 용맹해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로 호랑이와 싸워서 이겼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데 이 용맹스럽던 칡소는 일제시대 때 일본사람들이 전쟁물자(고기와 털)로 사용하기 위해 칡소 150만 마리가 수탈됨으로써 그 씨가 말라 버렸다. 이 같은 사실은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이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기록인 ‘축산연구사업 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나타났다.

 

  특히 1910년대 한우는 현재 흔하게 볼 수 있는 황색의 한우뿐 아니라 칡소와 흑소 등 다양한 모색이 존재했으나 일제가 1938년 한우 심사표준을 지금의 한우처럼 모두 황색으로 정하면서 칡소와 흑소는 거의 모두 사라져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칡소는 불과 20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일제가 칡소를 수탈해 간 것을 연대별로 살펴보면, 1910~1921년까지 28만 마리, 1922~1928년까지 35만 마리, 1929~1938년까지 53만 마리를 수탈하고 일본 패망직전인 1939~1941년에는 30만 마리를 수탈하는 등 해마다 수탈 두수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912년에 '경상도 지역 한우의 모색분포 현황'을 보면 적갈색 한우가 77.8%, 흑갈색은 10,3%, 흑우는 8.8%, 칡소는 2.6%, 갈색과 흑색 백반우 9.5% 등 다양한 털색을 가진 재래한우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우의 색상을 적갈색으로 통일하라고 강제로 정함에 따라 털이 검은 흑우, ‘얼룩백이 황소’인 칡소 등 재래 한우가 거의 사라졌다. 현재 1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우리 토종 한우 ‘칡소’(좌) 와 '흑소(우)


  토종 한우, 칡소와 흑우 복원 사업 활발

  우리나라 토종 한우의 일종인 ‘칡소’는 말 그대로 검은 칡덩굴이 온몸 전체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다. 체중은 700kg이 넘을 정도로 건장해 일소로도 제격이다. 칡소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머리와 온몸에 칡덩굴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마치 호랑이 무늬처럼 보인다고 하여 '호반우'(虎班牛)'라고도 부른다.

화가 이중섭의 소 그림이나 시인 정지용의 '향수'에도 '얼룩빼기 황소'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많이 있던 친근한 토종 소였다.

 

  잊혀져 가는 토종 소 칡소와 흑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농촌진흥청이 우리의 토종 한우의 일종인 칡소와 흑소의 복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15년 만에 복원에 성공한 토종닭처럼 몇 년 후에는 얼룩배기 칡소와 까만색의 흑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날이 꼭 올 것이다. 소띠 해 설날. 우리의 자존심. 소를 생각하며 많은 복을 누리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