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남화 역사의 산 증인, 남농 허건(1908 ~ 1987)의 그림

산야초 2016. 4. 29. 21:38

 

 

 

 

 

 

 

 

 

 

 

 

 

 

 

 

 

 

 

 

 

 

 

 

 

 

 

 

 

 

 

 

 

 

 

 

 

 

 

 

 

 

 

 

 

 

 

 

 

 

 

 

 

허건. 한국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남농(南農). 전라남도 진도 출생. 19세기 남종화의 대가인 연(鍊)의 손자이며, 직업 화가였던 형(瀅)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집안 전래의 그림 재능을 나타냈으나 화가 생활의 빈궁함을 대물림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포상업전수학원에 들어가 상업을 공부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타고난 그림 자질이 독학으로 발휘되어,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鮮展) 동양화부에 수묵 담채(水墨淡彩 : 빛이 엷은 먹물과 엷은 채색)의 사실적 풍경화가 첫 입선한 뒤로, 1944년까지 연달아 입선과 특선에 오르면서 전통 화단에 진출하였다. 1940년의 수묵 채색화 「금강산 보덕굴」과 같은 무렵의 「산촌」은 현존하는 광복 전의 대표작이다.

 광복 후에는 그 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경쾌한 붓놀림과 현실감의 담채(淡彩 : 엷은 채색) 및 농채(濃彩 :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의 기법으로 전통적인 산수화의 의취(意趣 : 의지와 취향)와 현실적 시각의 표현 감정을 특질적으로 조화시키는 수법으로 시골 풍정을 주제 삼은 「4월 산촌록」(1948년)·「산사(山寺)」(1955년)·「운림동 소견」(1957년)을 그렸다. 그밖에 무한한 향토애의 계절적인 산수 풍경화를 연작하였다.

 1952년부터는 국전(國展)에 참가하여 추천 작가·초대 작가·심사 위원을 역임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굳혔다. 그리고 1957년 김기창·이유태·김영기·김정현·박내현·천경자 등과 중진 한국화가단체 백양회(白陽會) 창립에 참가하였다. 1970년대 중엽까지 지속된 그 연례 회원 작품전에 출품하였다.

 18세 때부터 목포에 정착한 이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철저한 향토 고수의 작품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그는 진도 출신의 같은 허씨 가문 연장자로 1920년대 이후 호남을 대표한 남종화풍의 대가로 광주(光州)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한 백련(百鍊)과 더불어 호남 전통화파의 상징적 두 고봉(高峯)으로 일컬어졌다.

 1979년 목포 성옥문화상을 받았으며, 1982년 은관문화훈장 및 목포시민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에 피선되었다. 그리고 1985년 전라남도 무등문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조선 후기의 저명한 화가 소치(小癡) 허유(許維)를 할아버지,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아버지로 하는 3대째의 화맥을 이어온 조선 후기에서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남화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세계의 의미도 이 같은 회화사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1987년 11월 5일 향년 80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