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굴·황가오리… 九味 다 먹었다? 고흥産 커피까지 마셔야 진짜

피굴·황가오리… 九味 다 먹었다? 고흥産 커피까지 마셔야 진짜

고흥(高興). 들어는 봤는데 어딘지 정확히 모르겠단 이들이 많다. 경남 고성, 전북 고창과 헷갈려 하기도 한다.
그만큼 고흥은 덜 알려졌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전남 여수·순천과 보성 사이에 있는 고흥만큼 먹거리가 풍성한 곳도 드물다.
고흥군에서 꼽는 대표 음식이 구미(九味), 그러니까 무려 아홉 가지. 봄에는 어떤 별미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찾은 고흥,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취재=고흥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입력 : 2016.05.14 06:09

[南道 봄맛 여행] ③ 전남 고흥

고흥은 순천만과 여수만으로 둘러싸인 다도해의 반도답게 해산물이 다양하고 맛있다. 특히 굴이 좋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고흥은 예부터 자연산 굴이 많이 났으며 일제 때 굴 양식이 성행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고흥에는 '피굴'이란 독특한 향토 음식이 있다. 원래 겨울부터 초봄에 주로 먹는 음식으로 요즘은 쉽게 찾을 수 없어 특별히 '해주식당' 주인 김순옥씨에게 부탁했다. 맑고 뽀얀 국물에는 잘게 썬 쪽파와 참깨가 동동 떠 있고, 국물 안에는 굴 알맹이가 잔뜩 들었다. 차가운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니 그렇게 시원하고 개운할 수가 없다. 해장 국물론 최고일 듯싶었다.

제철 맞은 갑오징어의 도톰한 살을 저며 회를 떴다. 고흥의 찬란한 봄볕을 받으니 목련 꽃잎처럼 화사하게 빛난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김씨는 "굴을 피(皮), 그러니까 껍질째 끓인다 해서 피굴"이라며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굴을 껍질째 물에 넣고 은근한 불에서 20분쯤 삶아요. 굴을 건지고 국물을 가만두면 불순물이 가라앉아요. 몇 번 걸러 맑은 국물에 소금 간만 해요. 여기다 굴 알맹이를 까 넣죠. 자연산 굴이라야 이렇게 뽀얀 국물이 나오지, 양식 굴은 시커먼 국물이 나와 못해요."

고흥의 식당들이 애피타이저처럼 내는 '낙지죽'도 고흥만의 향토 음식이다. 낙지에다가 팥과 찹쌀 등 각종 곡물을 넣고 끓인다. 구수하면서 속이 편안해지는 맛이다. 피굴은 해주식당에서 한정식(1인 3만5000원, 4인 이상)을 시키면 나온다. 낙지죽은 그냥 가도 먹을 수 있지만 피굴은 늘 내지 않는 데다 국물을 식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룻밤 전에는 미리 주문해야 한다. 5월 말까지는 피굴을 맛볼 수 있다. 김치찌개, 매운탕, 생선구이 등 매일 다른 주요리가 나오는 백반(7000원)은 가성비가 뛰어나다. 해주식당 고흥군 과역면 고흥로 3009, (061)834-7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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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식당 낙지죽. 고흥 향토 음식 피굴.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고흥읍 내 ‘도라지식당’은 주당(酒黨)이면 한 번은 가볼 만한 술집이다. ‘황가오리’(2만원)라는 생소한 생선 이름이 벽에 붙은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여주인은 “가오리의 일종인데 고흥 바다에서 3월부터 여름까지 나온다”고 했다. 신기해서 주문해봤다. 핑크빛에 가까운 흰 살에 붉은 선이 선명하게 들어간 희한한 생선회가 나왔다. 마블링 잘 된 꽃등심 비슷했다. “참기름장 찍어 먹으면 소고기랑 똑같아요. 15㎏이 넘어야 이런 결이 나와요.” 주인 말대로 기름장을 찍어 먹어 보니 흔히 ‘육사시미’라고 하는 양념하지 않은 소고기 육회와 비슷했다. 회보다 간이 별미였다. 기름장을 찍어 혀에 올리자 그야말로 ‘애간장이 녹는’ 부드러운 식감. 홍어애(간)와 비슷하나 더 달큰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꽁치회(2만원)를 봄에 파는 것도 희한했다. 꽁치는 가을이 제철로 아는 생선 아닌가. “우리 고흥에선 꽁치가 벚꽃이 폈다 지면 올라와요. 5월까지 한 달만 나와요.”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니 학꽁치 비슷했다. 주인이 “내가 견본품으로 해드릴게”라며 먹는 법을 보여줬다. 먼저 된장에 박아서 삭힌 깻잎 한 장을 펼치고 밥 한 숟가락과 꽁치회 두 점, 풋고추 한 토막, 쌈된장을 순서대로 올리더니 “싸 먹어 보라”고 했다. 짭조름한 깻잎과 구수한 쌈된장이 꽁치의 감칠맛을 끌어냈다. 도라지식당 고흥군 고흥읍 여산당촌길 4, (061)835-2304

도라지식당 황가오리회.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금 맛의 절정에 오른, 그리고 이 봄에만 맛볼 수 있는 해산물을 꼽으라면 단연 갑(甲)오징어다. 녹동항에 있는 ‘참빛식당’ 주인 강병년씨는 “갑오징어가 한 달 전부터 나왔고 한 달 후까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갑오징어는 갑옷처럼 딱딱한 뼈가 몸속에 들었다. 일반 오징어보다 다리가 짧고 귀가 작다. 맛은 외모보다도 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살이 훨씬 두툼하고 감칠맛이 빼어나다. 그래서 고급 식재료로 사용되고 가격도 비싸다. 한 접시(3만원) 주문하자 몸통은 넓적하게, 날개는 길쭉하게 썰어 회로 냈다. ‘다리는 어딨나’ 했더니 곧 데쳐 내온다. 부위별 맛을 최대한 살려 썰고 조리하는 센스가 돋보였다. 목련 꽃잎처럼 생긴 몸통 회는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칠맛이 배어 나왔고, 날개는 끈적하게 혀에 달라붙는 관능적인 맛이다.

녹동항에 왔으면 꼭 맛봐야 하는 것이 장어탕(1만·2만원)이다. 흔히 ‘아나고’라고 하는 붕장어를 써서 끓인다. 된장을 풀어 진하지만 텁텁하지 않다. 구수하고 깊은 된장 맛이 붕장어 감칠맛과 만나 찰떡궁합 맛의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더해 얼큰한 맛을, 시래기로 구수함을 더한다. 참빛식당 고흥군 도양읍 비봉로 257, (061)843-8890

녹동항 장어탕.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몇 해 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커피원두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고흥에는 커피나무가 약 4500주가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지난 5일 ‘고흥커피사관학교’가 개교했다. 고흥군에서 폐교를 사들여 커피 생산의 모든 과정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운동장에는 세운 거대한 하우스 안에는 커피나무 수백 그루가 있었다.

고흥커피사관학교에서 커피 콩을 수확하고 있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가지에는 커피 열매가 빨갛게 체리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이 열매 속에 든 씨를 빼서 씻어 말리고 볶으면(로스팅하면) 커피원두가 된다. 커피나무와 열매를 보고 커피원두를 로스팅하는 등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100% 고흥에서 생산돼 커피원두로 내린 커피(6000원)도 맛볼 수 있다. 국내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듯싶다. 고흥커피사관학교 과역면 원연등길 72-5, 010-6675-7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