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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피아노협주곡 1번 E 단조

산야초 2016. 6. 22. 23:17



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Op.11

쇼팽 / 피아노협주곡 1번 E 단조

(Frdric Franois Chopin 1810∼1849)

 

 


전악장 이어듣기

스무 살의 쇼팽이 살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독립을 위한 민중 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혼란스러움을 벗어나고자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가족과 마지막 휴가를 보낸 뒤 1830년 10월 11일 폴란드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열었고, 바로 이 자리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를 초연했다. 환송식이 열린 자리에서,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은잔이 그에게 수여되었다. 11월 2일, 쇼팽은 “죽기 위해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라는 느낌을 뒤로 한 채 다시는 밟아보지 못할 폴란드의 땅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피아노 협주곡에 담긴 첫사랑에 대한 은밀한 고백
1829년 8월 빈에서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치고 바르샤바로 돌아온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바르샤바 음악원 졸업과 빈에서의 성공은 쇼팽이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계획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렵 열 아홉 살의 쇼팽은 처음으로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쇼팽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이 났지만, 처음 느끼는 강렬한 기분과 뜨거운 가슴이 고스란히 음악으로 녹아들어 바르샤바 시대의 절정을 장식하는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폴란드 '쇼팽의 집'정원에 있는 쇼팽 조각상. 쇼팽은 조국에서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초연했다. 그의 친한 친구인 티투스 보이체코프스키(Tytus Woyciechowski)에게 1829년 10월 3일에 쓴 편지에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숭배할 수 있는 이상형을 찾았다네. 매일 밤 그녀 꿈을 꿀 정도야.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본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나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네. 협주곡 f단조의 느린 악장을 작곡하면서 그녀를 떠올리곤 하지.”

그 상대는 폴란드 음악원의 학생이었던 성악가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Konstancja Gladkowska)였다.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쇼팽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고, 쇼팽이 세상을 뜨고 난 뒤 모리츠 카라소프스키(Moriz Karasowski)가 쓴 쇼팽 전기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곧 잊어버리게 된 이 풋사랑에 대한 감정이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의 라르게토 악장과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의 로망스 악장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음을 쇼팽 생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오직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뿐이었다. 그의 소심한 마음 때문인지 이 [2번 협주곡]은 글라드코프스카에게 헌정되지 않고, 몇 해 뒤 파리 시절 친교를 맺은 미모의 백작 부인 델핀 포토카에게 헌정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1악장 (Allegro maestoso)

내가 사랑하는 소리....비 오는 날의 영혼...쇼팽 (글 : 클라라)

빠르고 경쾌한 3악장이 끝나고야 우리는 숨을 쉬었던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나를 숨막히게 한 것은 2악장의 romance. largetto였다. 로만틱하게, 더 느리게1악장에서 이미 우리는 비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현악기를 기일게 끌면서 촉촉한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노라면 피아노가 강렬한 음색과 영롱한 소리로 등장한다. 낮은 소리에서 높은 소리까지 구르듯 흐르는 카텐짜의 부분. 우리의 영혼은 피아노 소리를 따라 세상의 고뇌를 다 잊고 아름답게 흐를 뿐이다. 드디어 오케스트라가 합세한다. 피아노가 낼 수 있는 가장 맑은 소리의 모임들... 뒤를 따르는 현과 관의 복합적인 울림.... 밝음과 어둠의 조화/빠름과 느림의 조화/높음과 낮음의 조화 ....우리 영혼은 어느 새 드높여지고 있는 것이다.

현악기의 합주가 우리의 영혼의 하부를 받치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는 동안 다시 피아노는 고요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아아....... 쇼팽의 피아노가 우리 영혼을 이리도 맑게 닦고 닦아서 잊어버릴 수 없는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2악장 (Romance. Larghetto)

그러나 계속되는 2악장... 1악장이 많은 영혼의 합창이었다면 2악장은 어느 고뇌하는 영혼의 독창이다. 한없이 맑은 소리 그 소리 속에서 고뇌하는 영혼을 본 것은 그 고즈넉함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합창이 빠르게 울려 퍼졌다면 독창은 느린 곡조로 가슴에 스민다. 호소하는 것일까? 현악기들의 합주가 조용히 호소에 응답하고 피아노가 다시 흐느끼면 관악기가 높은 소리로 흐느낌을 받아 준다.

이 흐느낌......... 여기에 빗소리가 혼합되는 것이다. 또르륵 또르륵 또르륵 또르륵 피아노는 4번을 구르면서 물소리를 들려준다. 물소리보다 아름다운 물소리 쇼팽에게 묻고 싶었다. 물소리를 좋아하시나요? 물은 자꾸만 흐르고 구르면서 고요해진다.


3악장 (Rondo. Vivace)

엄숙하게 3악장이 시작된다. 더 이상의 감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일어서라 물방울들이여... 아름답게 일어서라...세상의 고뇌를 딛고 일어서라 영혼들이여... 아픔을 이제는 모두 씻고 일어서라... 용기를 가지라 그대는 약하지 않느니....... 내가 주는 아름다움이 힘이 되리니... 너의 영롱함으로 세상에 서라... 장엄한 마무리! -중략-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꼭 들어야 하는 이 소리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내가 사랑하는 이 소리 고뇌하는 영혼의 아픔을 지긋이 돌아본다.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어법이 탄생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낭만주의 협주곡 양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불균형이 단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받아 왔다. 쇼팽 스스로도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솔로 파트만 연주했던 것을 미루어본다면, 그가 오케스트라 부분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파리 시절에도 주위에서 폴란드 고유의 양식을 대변할 만한 오페라를 작곡하라고 부추겼지만, 자신의 미숙한 관현악 기법을 알고 있었던 쇼팽은 솔로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더욱 집착했다. 그러나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많은 작곡가들이 그 관현악 파트를 보강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개정판으로 쇼팽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 칼 타우지히(Karl Tausig)가 교정한 [1번 협주곡]과 카를 클린트보르트(Karl Klindworth)의 [2번 협주곡]을 꼽을 수 있다.

쇼팽은 피아니스트로서 단 30여 회의 대중 연주회를 가졌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특히 1번을 자주 연주했다. 1830년 11월 폴란드를 떠난 그는 빈, 브레슬라우, 뮌헨, 파리를 경유하며 개최한 연주회에서 [1번 협주곡]을 연주했지만 그 이전에 작곡한 [2번 협주곡]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1832년 2월에 가진 정식 파리 데뷔 연주회에서야 비로소 [1번 협주곡]은 그가 기대했던 수준의 찬사를 이끌어내게 되었다. 이후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1번 협주곡]은 파리에서의 쇼팽의 위상을 확고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번 협주곡]은 1830년 3월 17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이 공연은 쇼팽의 바르샤바 정식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당시 관습에 따라 1악장 연주를 마치고 난 뒤 호른과 현악기를 위한 즉흥곡을 한 곡 연주하고 2, 3악장을 연주했다. 초연 당시의 여러 신문들은 이 협주곡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쇼팽의 뛰어난 연주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특히 당시 비평 중에 오케스트라 튜티 부분이 피아노와 잘 어우러지며 협주곡의 정신을 완벽하게 전달했다는 비평이 이채롭다. 현재 작품번호는 제1번 e단조가 Op.11로 앞서 있지만, 사실은 제2번 f단조 Op.21이 한 해 먼저 작곡되었다. 이렇게 작곡 순서와 출판번호가 뒤바뀐 이유는 쇼팽이 먼저 작곡한 2번에 비해 나중에 쓴 1번을 더 만족스러워했기 때문에 이를 먼저 출판했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