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중국 앞에서 새가슴 되는 진보 진영에 묻고 싶은 것

산야초 2016. 8. 18. 23:07

중국 앞에서 새가슴 되는 진보 진영에 묻고 싶은 것

[최보식 칼럼] 그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입력 : 2016.08.18 18:47 | 수정 : 2016.08.18 19:13

    중국에 고자질하듯 달려가거나 그 앞잡이처럼
    "중국이 가만 안 있을 것" 엄포를 놓는 광경은
    슬픈 코미디를 보는 듯

    최보식 선임기자
    '진보 인사'나 야당 의원들에게 꼭 듣고 싶은 답변이 있다. 중국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지…. 중국에 고자질하듯 달려가거나 그 앞잡이처럼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 광경은 슬픈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중국이 시켜서 그런 게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하니 더욱 기막힌 노릇이다.

    이번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8년 전 서울 도심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이 있었을 때다. 중국 정부의 인권(人權)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와 티베트 독립 지지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우리 공권력의 통제하에 있었다. 난데없이 중국인들이 떼 지어 나타나 이들을 덮쳤다. 백주에 각목을 휘두르는 등 무법천지가 펼쳐졌다.
    한반도 사드 도입과 관련한 중국 현지의 의견을 듣겠다며 지난 8월 8일 2박 3일 일정으로 방중(訪中)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 왼쪽부터 김병욱, 김영호, 신동근, 손혜원, 소병훈 의원. /연합뉴스
    이 사태에 '진보 진영'은 침묵했다. 그 흔한 촛불시위 한번 조직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랬다면 '일왕(日王)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밤마다 촛불을 켰을 것이다. 우리 영해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 선원들이 낫과 몽둥이로 단속 해경을 살해했을 때도, 생존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온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송시켰을 때도, 그쪽 진영에서는 입이 없었다.

    역사적 사실을 놓고도 그렇다.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 문제에는 양국 정부 간의 외교적 합의 노력에도 '굴욕'이라며 참지 못하지만, 현재의 분단(分斷) 고통으로 연결되는 6·25 때 중공군의 참전에 대해서는 '책임' 비슷한 말도 못 꺼낸다. 대신 이들 중에는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을 '제국주의 악당 두목'이라고 떠들고 있다.
    2016년 8월 8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이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하기 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 8월 10일 오후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 방문을 마친 더민주 의원들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사진 오른쪽)
    '진보 진영'이 중국 앞에서만 콩알처럼 작아지는 것은 진정 배울 만하고 존경할 만한 대국(大國)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의 문을 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一黨) 체제다. 당 선전기관지들만 존재할 뿐, 민주주의의 기초인 자유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검열·통제되기 일쑤다. 이런 정치 체제가 자유·민주·인권을 떠들어온 '진보 진영'에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그게 아니면 뼛속까지 중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중국과 사이가 틀어지면 북한 문제가 어려워지고, 우리의 최대 시장을 많이 잃어버릴 수는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해야 할 말까지 제대로 못 하는 것은 유독 진보 진영에만 조선 왕조 500년의 '속국(屬國)' 유전자가 더 많이 전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중국이 이런 우리 마음속 두려움, 유구한 전통의 위계(位階) 질서를 모를 리 없다.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협상을 해보면 미국과는 수평적 대화가 되지만 중국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요구에 따르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우리 머리 위에 이런 나라를 이고 산다는 것은 좋든 싫든 지정학적 숙명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압적인 자세는 우리가 만든 측면도 크다. 그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두려움을 드러내고 순응해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름휴가로 중국의 명산(名山)에 갈 계획이었다. 관광비자 발급 과정에서 '취재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중국대사관 측은 '중앙정부의 규정'이라고 했다.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한 상태였지만 비상식적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16년 8월 10일 오후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 방문을 마친 더민주 의원들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동안 보수단체 회원들이 공항에서 의원들을 비난하고 있다.
    치사한 길들이기에 굴복하면 중국은 이를 당연히 여긴다. '진보 진영'이나 야당에서는 "중국의 본격적인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선전한다. 중국과 무역하고 거래하는 이들은 실제 피곤해질 것이다. 국가 전체로 봐도 경제 타격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사는 서로 이익이 되기에 하는 거지 어느 한 쪽이 봐줘서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이 '자선사업가'로서 우리와 거래를 해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불편하고 힘들면 마찬가지로 중국도 힘들 것이다. 우리가 전전긍긍할수록 영원한 중국의 '을(乙)' 신세로 굳어질 공산이 높다.

    이제 중국도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사드 배치 문제로 계속 압박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서 손잡겠는가. 결국 한·미·일의 연대를 더욱 공고하게 해줄 뿐이다. 중국은 스스로 포위망에 갇히고, 국제사회에서 지탄받는 김정은 정권만 끌어안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여러 측면에서 훨씬 더 큰 손실을 입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중국 두려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얼마간 손해 볼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이 두려움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진보 진영 '이나 야당이 나서서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를 합창만 안 해도,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과의 정상적 관계 설정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고전 맹자(孟子)에 '나 스스로 굽실거린 뒤에 다른 사람이 우습게 본다(自侮然後 人侮之)'라는 구절이 있다. 국민도 같은 것이다. 국민의 격(格)을 갖추고 있으면 다른 나라가 만만하게 대하지 않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