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01 23:00 | 수정 : 2013.11.03 14:50
전북 남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모(53·자영업)씨는 1982년 봄 친구가 “돈 벌러 서울로 가자”는 말에 무작정 상경(上京)했다. 구로공단에는 ‘삼립빵’ ‘코카콜라’사를 비롯해 일자리가 많았고, 그는 친구가 이끄는대로 서울 금천구(옛 구로구 일부)의 구로공단 인근의 전기배선업체에 취직했다.
“구로공단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시골 출신들로 가득했어요. 추석같은 명절이면 고향가는 전세버스들이 동네 골목마다 줄줄이 서 있었는데 전라도로 가는 버스가 가장 많았어요.” 최씨는 “친구 1명씩 직원으로 데려 올 때마다 회사에서 격려금을 줄 정도로 구인난이 심해 명절이 한번 끝나면 고향 선·후배들이 부쩍부쩍 늘어나곤 했다”고 말했다.
한 집에 20~30개 방이 몰려있는 ‘벌집’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해 이곳에서 고향 처녀를 만나 결혼하고 자녀들도 키우며 30여년째 터줏대감으로 살고 있는 그는 서울 금천구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금천구는 호남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비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다. 인구가 23만여명인 금천구는 5명 중 1명(19.2%)이 호남출신으로 충청·영남출신보다 훨씬 많다. 40대 이상에서 3.3명 중 한명이 호남출신일 정도로 호남사투리가 낯설지 않은 지역이다.
◇서울에 사는 출신지역별 인구비중
“구로공단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시골 출신들로 가득했어요. 추석같은 명절이면 고향가는 전세버스들이 동네 골목마다 줄줄이 서 있었는데 전라도로 가는 버스가 가장 많았어요.” 최씨는 “친구 1명씩 직원으로 데려 올 때마다 회사에서 격려금을 줄 정도로 구인난이 심해 명절이 한번 끝나면 고향 선·후배들이 부쩍부쩍 늘어나곤 했다”고 말했다.
한 집에 20~30개 방이 몰려있는 ‘벌집’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해 이곳에서 고향 처녀를 만나 결혼하고 자녀들도 키우며 30여년째 터줏대감으로 살고 있는 그는 서울 금천구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금천구는 호남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비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다. 인구가 23만여명인 금천구는 5명 중 1명(19.2%)이 호남출신으로 충청·영남출신보다 훨씬 많다. 40대 이상에서 3.3명 중 한명이 호남출신일 정도로 호남사투리가 낯설지 않은 지역이다.
◇서울에 사는 출신지역별 인구비중
프리미엄조선이 3일 통계청의 2010년 인구센서스를 분석한 결과, 서울 인구(955만명) 중 호남 출신이 6.4명 중의 1명꼴(150만명)로 가장 많았다. 영남(121만명)출신보다 29만명이 더 많다. 이어 충청(94만명), 경기(75만명), 강원(33만명), 인천(13만명), 제주(4만7000명) 출신 순이었다.
전국적인 고향 분포를 보면 영남(1419만명)이 호남(847만명)출신보다 572만명이나 더 많다. 그러나 서울은 전국 인구 분포와 달리 호남출신이 영남출신을 앞지른다.
서울에 호남 출신이 많은 이유
호남 출신들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집중적으로 몰렸다. 반면 영남출신들은 구미·울산·포항에 공업단지가 생기고 부산·대구같은 대도시로 분산돼 서울로 오는 경우가 그만큼 많지 않았다.
한 공공기관 인사과의 이모(50)씨는 “호남출신들은 서울로 발령받으면 가족들이 모두 함께 서울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부산이나 대구 출신들은 혼자만 서울로 부임한 뒤 기회가 되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영남 출신들의 고향 중심 사고방식은 지역적 특성인 보수 성향과도 관련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헌 교원대 명예교수는 “서울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구 용광로’”라며 “서울은 1960년 이후 산업화시대가 되면서 호남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학업때문에 서울로 오는 이들이 급증해 서울의 인구 지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60년대엔 북한 출신이 많아
‘1960년 인구센서스’를 보면 서울은 6·25전쟁때 월남한 북한 출신이 전체 인구의 11.1%(27만명)로 가장 많았고, 충청(9.8%), 호남(8.4%), 영남(8.3%)순이었다.
북한 출신들은 전쟁기간동안 부산으로 몰려갔다가 휴전이후 대부분 서울에서 터잡았다. 당시 북한에서 월남해 서울에 정착한 피란민들은 30~50대가 주류로 이들은 서울 본토박이와 숫자가 비슷할 정도였다. 평안도 출신이 가장 많았고, 함경도·황해도출신 순이었다. 경기도에는 황해도출신, 강원도에는 함경도 출신이 많이 정착한 것과 대비된다. 하지만 휴전이 된지 60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망해 27만명이던 것이 5만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충청 출신들은 서울과 가까와 일찍이 몰려들었다. 1960년에 충청남도 온양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고향 선배의 소개로 서울로 왔다는 이모(64·택시기사)씨는 “충청도사람들은 일자리가 없고 서울과 가까와 1950년대 후반부터 서울로 많이 올라왔다”며 “청량리나 중랑구 면목동 등에 충청 출신이 많았고 1970년대에 구로공단이 생기면서 그 지역에도 많이 갔다”고 말했다.
1960~1990년, 격동의 인구이동
호남에서 서울로 사람들이 대거 몰려온 것은 1960년부터 1990년까지 30년간이다. 호남출신은 1960년 20만여명에서 1990년엔 178만명이 됐다. 30년간 8.6배가 늘었다.
전문가들은 “1970~1980년에 일자리나 학업을 위해 호남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들만 60만명에 달할정도로 대 이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 충청도에선 36만명, 영남에선 33만명이 서울로 올라왔다. 이 때문에 현재 서울의 40대 이상은 4명 중 1명이 호남 출신(24.8%)일 정도로 서울의 인구지도를 바꿨다. 반면 충청·영남 출신은 30년간 5~6배 증가에 그쳤다.
서울에 사는 호남출신 중 전남 출신이 77만명으로 전북 출신(60만명)보다 많다. 전북인구가 전남인구 보다 훨씬 적은데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남출신들은 서울만 아니라 경기·부산 등 전국 각 지역으로 진출한 반면, 전북 출신들은 외지로 떠나면 서울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조길희(54·약사)씨는 “가족 중 한사람이 먼저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면 동생 등 가족과 친척들을 불러들여 서울에 폭발적으로 몰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25개 구 중 강남·서초를 제외하고 호남 출신이 1위
호남 출신들은 서울 전역에 흩어져 대부분 구(區)에서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호남출신들은 서울 25개 구 중 강남·서초구를 제외한 23개구에서 단연 1위이다. 특히 관악구(18.8%), 강북구(18.3%), 동작구(17.9%), 성동구(16.9%)에 많다.
강남·서초에 영남지역 출신이 많은 것은 영남출신 중 부산·대구 출신들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몰려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부산·대구 출신들은 다른 구에선 3~4%를 차지하지만 이 두곳에선 6~7%나 차지한다. 서울에 사는 영남출신 100명 중 11.9명(14만명)은 강남·서초에 살고 호남출신은 100명 중 7.5명(11만명)이 산다. 송파는 호남과 영남출신 비율이 비슷하다.
40대 이하부터 지역출신 비중 달라져
서울의 40~60대는 호남 출신이 4명 중 1명일 정도로 압도적이고, 영남·호남·충청출신을 합치면 57%나 된다. 그러나 40대 미만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영남(9.5%)·호남(8.1%)·충청(%)을 합해야 고작 22.5%대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이들도 부모의 고향 영향을 받겠지만 고향이 대부분 서울이어서 앞으로 영남·호남·충청이란 의식도 희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