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요트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
하루라도 동력(動力)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대사회를 떠나 바다 위 무동력(無動力) 세계로 떠났다.
바람의 방향도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바람 따라 뱃머리를 돌리고 돛을 내리고 올리다 보면 온몸이 흠뻑 젖는다.
입력 : 2016.08.18 07:00
무동력 세일링 요트 체험… 바람 따라 돛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온몸이 흠뻑
밟으면 나가고 꺾으면 돌아가는 자동차·모터보트와는 또 다른 매력의 세계
모터가 꺼졌다. 탈탈거리는 모터 소리와 불쾌한 진동이 가신다. 파도 소리와 괭이갈매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돛은 바람으로 부풀어 오르고 세일링 요트는 물살을 가르고 나아간다. 하루라도 동력(動力)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대사회를 떠나 바다 위 무동력(無動力) 세계로 떠났다. 매일 산업사회의 동력으로 살았던 삶의 진동에서 벗어난다. 배에 몸을 맡기고 흔들린다. 자유롭다. 진짜 탈출이다.
무동력으로 가는 세일링 요트는 결코 모터보트보다 빠르지 않다. 속도감은 떨어지지만 수시로 방향을 바꿔줘야 해 탑승자 입장에서는 훨씬 역동적이다. 바람의 방향도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바람 따라 뱃머리를 돌리고 돛을 내리고 올리다 보면 온몸이 흠뻑 젖는다. 요트 항해는 바람과 물 양쪽과 대화를 나누는 재미가 있다. 밟으면 나가고 꺾으면 돌아가는 자동차 운전, 모터보트 항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체험이다.
폭염이 전국을 강타한 13일 오후 경기 전곡항마리나에서 전장 36피트(약 11m)의 세일링요트에 올랐다. 모터를 켜고 전곡항을 빠져나가 제부도를 지났다. 모터를 끄고 돛을 올렸다. 줄을 잡아당기자 높이 14m의 마스트 끝까지 메인 세일이 솟구쳤다. 돛을 모두 올리자 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체감 속도는 시속 30~40㎞ 정도. 함께 승선한 원필재 카발리에 요트클럽 회장은 "실제 속도는 7노트(12㎞) 정도인데 맞바람을 비껴 맞으며 나아가다 보니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뱃머리는 남서쪽을 향했다. 30분 남짓 나아가자 수평선 위의 점이었던 입파도가 점점 커졌다. 바닷바람에 더위가 씻겨 나갔다. 고개를 들자 바람을 받은 상아색 돛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 뒤로 태양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빛났다. 흰색과 푸른색. 시원한 풍경이었다. 폭염특보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앞서 11일 오전, 경상대 요트부 '통수' 학생들과 함께 대회용 세일링요트 J24급(級)에 올랐다. 요트 길이가 24피트(약 7.3m)라 붙은 이름이다. 경남 통영유람선터미널 앞바다는 잔잔했고 바람은 적당했다. 김동현(23) 통수 회장은 "지금은 5노트(시속 9.3㎞) 정도인데 초보자가 배를 타기 딱 좋은 바람"이라며 "대회 때는 이것보다 더 불어줘야 모는 맛이 난다"고 했다.
"옆으로 기울 겁니다." 군살이라고는 없는 구릿빛 살결의 청년이 말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배가 좌현으로 급히 기울었다. 45도 정도 될까. 각도기가 있다면 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돛을 올리자 바람을 받은 요트가 기울었던 것이다. 배가 작은 만큼 기울기도 컸다. 래시가드를 입고 선크림으로 빈틈없이 무장하고 나온 '서울 촌놈'은 배 위에서 균형을 잡기 바빴다. 배는 기울어진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바다는 매번 새롭다. 변수가 거의 없는 육상과 달리 바람 방향과 세기, 파도 높이에 따라 매번 다른 느낌이다. “태킹(tacking) 스탠바이!” 감상에 빠지려는 찰나 스키퍼(선장)가 외쳤다. 배에 오른 크루(선원) 3명이 따라 외쳤다. 뱃머리에 달린 지브(jib) 세일을 느슨하게 풀어 바람을 흘리고 키를 돌렸다. 붐(boom·메인 세일을 고정하는 마스트에 수평으로 달려 돛을 고정하는 기구, 직각삼각형의 밑변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이 무서운 속도로 반대편으로 돌았다. 아차 하면 머리를 맞겠다. 절도 있는 지시, 복명복창은 안전사고 예방에 필수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트는 것을 태킹(tacking), 바람을 등지고 트는 것을 자이빙(gybing)이라고 한다. “귓불로 바람을 느껴 보세요. 고개를 돌렸을 때 양쪽 귓불에 바람이 비슷하게 와 닿는다면 그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에요.” 다른 통수 회원이 팁을 줬다. 요트는 맞바람과 뒷바람을 맞으며 나아간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확인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뜨거운 냄비를 손으로 잡았을 때나 썼던 귓불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본격 항해를 해봤으니 이번에는 가족 단위로 뱃놀이하기 좋은 큼지막한 요트를 타본다. 일반 세일링 요트 두 척을 연결했다고 생각하면 쉬운 카타마는 크기와 구조가 가족단위 뱃놀이와 선상 파티에 제격이다. 같은 날 오후 통영 오션브리즈의 ‘브리즈50(50피트)’호를 탔다. 정원은 30명 수준이지만 보통 손님 10명 안팎을 태우고 나간다. 통영에서 출발해 한산도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돌아오는 2시간 코스(스노클링 장비 대여료 포함 3만8000원)를 추천했다. 유람선보다는 비싸지만 운치 있다. 바다낚시, 선상 BBQ도 가능하다.
‘브리즈50’ 선내는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했다. 주방, 냉장고, 화장실, TV, 응접실, 침실이 갖춰진 바다 위의 집이나 마찬가지다. 요트에는 해먹과 그네의자, 그늘막이 설치돼 있었다. 항해보다는 뱃놀이에 걸맞은 이유다. 선체가 두 개 연결돼 있는 구조 덕분에 돛을 올려도 거의 기울지 않는다. 대신 모터를 써 세일링 요트만큼 조용하지는 않다.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 15명을 태운 브리즈50은 이날 오후3시쯤 한산도 거북선등대 앞에서 닻을 내렸다. 스노클링 시작이다. 안전교육이 끝나자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스노클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물로 뛰어들었다. 남해의 물은 시원했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요트가 정박한 곳은 수심 5m 정도. 거북선등대로 다가갈수록 수심은 점차 낮아져 뭍이 된다. 개헤엄만 칠 줄 알면 오케이! 요트와 거북선등대 아래 바위를 연결해주는 줄을 잡고 다니면 된다. 구명조끼는 몸을 확실히 수면 위로 띄워줬다. 방수기능이 없는 스마트폰, 사진기로도 물 위를 떠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다.
물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가져온 캔맥주와 포도주를 땄다. 애주가에게는 선상 음주만 한 술자리가 없다. 알코올을 분해할 때는 산소가 필요한데 해수면은 산소가 풍부한 까닭이다. 셀카족들은 갑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뱃머리에 있는 의자에 올라가 돛줄을 잡고 포즈를 취하기도 했고 갑판 위 해먹에 누워서도 찍었다. 선미(船尾)에 매달려 있는 그네의자도 인기였다. 각자 열심히 놀고 있는데 멀리 한산도와 통영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보였다. 부러움이 바다 너머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내 요트도 아닌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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