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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오십천' 절벽 위로 세 巨匠의 시선이 멈추다

산야초 2016. 9. 18. 20:55

삼척 '오십천' 절벽 위로 세 巨匠의 시선이 멈추다

조선 최고 화가들의 시선이 같은 곳에 꽂혔다. 겸재 정선(1676~1759), 표암 강세황(1713~1791), 단원 김홍도(1745~?)가 모두 그린 죽서루(竹西樓)다.
눈앞에 보이는 현대 건축물을 지우고, 강물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 죽서교를 없앤다. 상상 속에서 벌이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이다.

    입력 : 2016.08.11 07:00

    조선 최고 화가들의 시선이 같은 곳에 꽂혔다. 겸재 정선(1676~1759), 표암 강세황(1713~1791), 단원 김홍도(1745~?)가 모두 그린 죽서루(竹西樓)다. 삼척 시내를 휘감아 돌며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五十川) 절벽 위에 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만 독점했던 비경, 무건리 가는 길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 절벽 위에 2층 누각 죽서루가 서있다. 관동팔경의 제1경이다. 강원도 삼척에 있다. 조선 당대 최고 화가들이 절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 절벽 위에 2층 누각 죽서루가 서있다. 관동팔경의 제1경이다. 강원도 삼척에 있다. 조선 당대 최고 화가들이 절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세 거장(巨匠)은 모두 물 건너 맞은편에서 누각을 바라봤다. 지금 삼척시립박물관 쪽이다. 죽서루가 보이는 대안(對岸)에 팔각 정자를 새로 지었다. 겸재는 분명 이쯤 어딘가에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표암과 단원 그림은 더 원경(遠景)이다. 둘의 그림은 비슷한 구도다. 오십천이 죽서루를 감싸고 휘돌아 흐르는 모습을 더 멀리서 봤다. 시립박물관 옆 언덕 위에 있는 동굴신비관 건물에 올라 죽서루를 바라본다. 상상력이 좀 필요하다. 눈앞에 보이는 현대 건축물을 지우고, 강물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 죽서교를 없앤다. 상상 속에서 벌이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이다. 누각을 끼고 'S자'로 흐르는 강물 모습이 떠오른다. 표암과 단원이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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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 정선 그림 ‘죽서루’(1738년). / 간송미술관

    겸재 그림은 1738년 작품이다. 그림 속 절벽에는 나무가 없다. 표암과 단원은 50년 뒤인 1788년 그렸다. 현전(現傳)하는 단원 그림은 후배 화가들이 모사(模寫)한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다. 표암과 단원 그림 속에는 절벽에 나무가 자랐다. 다시 230년 흐른 지금은 나무가 온통 절벽을 뒤덮었다.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누각 전체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 속 누각 왼편과 오른편 기와집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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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암 강세황 그림 ‘죽서루’(1788년). /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에서 죽서루 좌우에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띈다. 겸재·표암·단원 모두 똑같이 두 그루 나무를 그렸다. 나무 키가 누각보다 2배쯤 크다. 그렇다면 적어도 10m쯤은 될 것이다. 지금 이 나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누각 왼쪽에 마른 고목(古木)이 보이는데 그림 속 그 나무 아닐까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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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바위 위에 기둥을 세워 높이가 제각각이다. /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죽서루에 가까이 다가가기로 한다. 누각 왼편에 보이던 나무는 회화나무라고 안내 직원이 말했다. 나무 몸통 일부를 시멘트로 메웠다. 가지 일부에 잎이 달리지 않고 말라 있을 정도로 깊은 병을 앓고 있다. 죽서루 경내에는 이 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회화나무 세 그루가 있다. 모두 수령 350년이다. 보호수로 지정됐다.

    그림 속 그곳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1경이다. 팔경 중 유일하게 바닷가 아닌 곳에 자리했다. 언제 세웠는지는 정확지 않다. 12세기 후반 문헌에 죽서루 관련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허물어졌던 건물을 조선 태종 3년(1403년) 삼척부사였던 김효손이 새로 건립했다 한다. 죽서루란 이름은 누각 동쪽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죽죽선(竹竹仙)이라는 유명한 기생이 누각 동쪽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주춧돌 삼아 건물을 올렸다. 기둥 높이가 제각각이다. 건축 양식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국 건축의 모든 것 죽서루'라는 책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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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죽서루 누각 마루. 엄마 아빠 따라나온 어린아이들 표정이 즐겁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누각을 세운 까닭은 그곳에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보라는 뜻이다. '관동별곡'을 지은 송강 정철(1536~1593)은 "진주관(삼척) 죽서루 오십천 나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라고 읊었다. 하지만 웃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풍경을 음미하기 어렵다. 대신 죽서루에 걸린 현판과 편액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현종 때 남인의 영수였던 허목(1595~1682)이 쓴 '第一溪亭(제일계정)', 정조 임금의 어제시(御製詩) 같은 현판과 편액 20여개가 걸려 있다.

    죽서루는 보물 213호. 하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건축물이 아니다. 동네 주민 여럿이 누각 마루에 앉거나 누워 솔솔 부는 바람에 더위를 식힌다. 엄마 아빠 따라나온 어린아이들 표정이 즐겁다. 덩달아 신발을 벗고 누각에 올라 마룻바닥에 누웠다. 수백년 전 옛집에서 보내는 한가로운 피서(避暑)! 낮 최고기온이 35도 넘었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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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해변막국수

    동서울터미널서 삼척까지 고속버스 이용. 약 3시간 30분. 삼척터미널에서 죽서루까지는 걸어서 15분. 관람 무료. 구멍이 뚫린 용문 바위와 선사시대 유적인 성혈이 죽서루 경내에 있다. 용문 바위 구멍은 신라 문무왕이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다가 이곳에서 오십천에 뛰어들 때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이 있으나 8월 22일까지 문화재 발굴조사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다.

    옛 그림 속 풍경을 보려면 오십천 위에 놓인 죽서교를 건너 맞은편으로 간다. 배용준·손혜진 주연 영화 '외출' 촬영지 표석이 동굴신비관 앞에 있다. 10년 전에는 일본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죽서루 인근 강릉해변막국수. 막국수 7000원, 메밀전 5000원. 수육 2만·3만원. 033-574-6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