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세계

저물어 가던 영국 해군의 자존심

산야초 2016. 9. 21. 21:20

저물어가던 영국 해군의 자존심 아크로열(HMS Ark Royal) R09

입력 : 2016.09.14 09:44

현대 항공모함의 기원으로 인정받는 영국의 마지막 정규 항공모함 아크로열(R09). <출처: (cc) Isaac Newton at Wikimedia.org>
현대 항공모함의 기원으로 인정받는 영국의 마지막 정규 항공모함 아크로열(R09). <출처: (cc) Isaac Newton at Wikimedia.org>


군함의 생애는 유한하다. 관리를 잘하면 배의 기본적 기능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거북선을 현대 군함으로 사용할 수 없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무기로서의 가치는 사라진다. 그래도 이름은 영원하므로 존재감이 컸던 함명의 경우 대를 이어 사용되곤 한다.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는 지난 2012년 퇴역한 항공모함 CVN-65가 미 해군 역사상 8번째로 이어받은 이름이지만 앞으로 건조가 예정된 CVN-80의 함명으로도 계승이 확정되었을 정도다.


한때 세계 최강이었고 현재도 위용을 자랑하는 영국 해군은 그런 전통을 가장 먼저 만든 나라다. 수많은 함명이 계속 승계되고 있는데, 아크로열(Ark Royal)도 그러한 이름들 중 하나다. 영국 해군에서 아크로열이라 명명된 군함은 지난 2011년 퇴역한 인빈시블(Invincible)급 경항공모함 3번함인 ‘아크로열(R07)’까지 총 5척이 있는데, 모두 나름대로 역사적 의의가 컸다.


그중에서도 냉전이 격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에 바다로 나가, 영국의 국력이 한없이 추락한 1970년대까지 어려운 가운데서 묵묵히 임무를 다한 네 번째 ‘아크로열(R09)’은 영국 해군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만한 항공모함이었다. 동시대에 활약한 미국의 항공모함에 비해 유명세는 덜했지만, 탄생 당시 항공모함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기술적 변화를 선도한 점 하나만으로도 의의가 컸던 기념비적 군함이다.





항공모함에 주로 승계된 이름


최초의 아크로열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인 1587년 건조된 배수량 800톤의 전열함(戰列艦)1)이었다. 1588년 유럽의 해상 패권을 놓고 스페인 무적함대(Armada)와 일전을 벌인 영국 함대의 기함으로 맹활약하면서 아크로열의 전설을 처음 세웠다. 그런데 이를 제외하고 이후 등장한 4척의 아크로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항공모함이었다. 즉, 아크로열은 과거에 명성을 날리기는 했지만 현대 해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자료에서 영국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언급되기도 하는 두 번째 ‘아크로열(1914)’은 상선을 개조한 수상기모함(Seaplane Carrier)이었다. 엄밀히 말해 항공모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영국 해군은 본격적인 항공모함 운용과 관련된 상당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 제1차 대전은 물론 제2차 대전에도 현역으로 활약한 후 1946년 퇴역했으며, 티 나지 않게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장수함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아크로열(1914)은 최초의 수상기모함이었는데, 종종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이후 아크로열이란 이름은 주로 항공모함들에 승계되었다.
두 번째 아크로열(1914)은 최초의 수상기모함이었는데, 종종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이후 아크로열이란 이름은 주로 항공모함들에 승계되었다.


세 번째 ‘아크로열(91)’은 제2차 대전 직전인 1938년에 건조된 27,000톤 규모의 항공모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지중해 연안에서 이탈리아 해군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독일의 거함 비스마르크(Bismarck)를 잡고 말타를 구원하는 데 일조했으나 1941년 11월 지브롤터 인근에서 독일 U-81에 의해 격침당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당연히 영국은 짧고 굵은 생애를 통해 큰 족적을 남긴 이 이름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침몰 직전의 아크로열(91). 세 번째 아크로열로 거함 비스마르크를 잡는 데 크게 일조했으나 생애가 짧았다. 영국은 1943년 건조에 들어간 새로운 항공모함의 이름으로 아크로열을 승계시켰다.
침몰 직전의 아크로열(91). 세 번째 아크로열로 거함 비스마르크를 잡는 데 크게 일조했으나 생애가 짧았다. 영국은 1943년 건조에 들어간 새로운 항공모함의 이름으로 아크로열을 승계시켰다.



 




시대의 변화를 절감한 영국 해군

 

영국은 항공모함의 역사가 시작된 나라였지만 정작 이를 이용한 작전, 전술, 전략이 답보된 상태에서 제2차 대전을 맞았다. 결국 1940년 노르웨이 전역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글로리어스(Glorious)가 항공모함으로는 사상 최초로 격침당하는 치욕을 맛보게 된다. 이후 타란토항 공습처럼 인상적인 전과를 남기기도 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항공모함 주축 함대들로 격전을 벌인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분명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객관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보유한 주력 항공모함에 비해 당시 영국의 항공모함은 전함 중심으로 구성된 함대의 단순 지원 용도로 개발 운용되었기에 크기가 작았고 능력도 부족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절감한 영국 해군은 1942년 당시 기준으로 초대형에 속하는 만재배수량 43,000톤 규모의 신형 항공모함 제작에 착수했다. 이는 당시 미국이 본격 도입 중이던 에섹스(Essex)급보다 10,000여 톤이 더 나가는 규모였다.


애초에 4척을 예정했으나 바다에서 연합국의 압도적 우위가 확실시되자 2척은 취소되었다. 원래 어데셔스(Audacious)로 예정되었던 초도함은 전쟁 중 산화한 이글(Eagle)의 이름을 승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동급 항공모함을 이글급이라 하지 않고 어데셔스급으로 표기한다. 이때 이리지스터블(Irresistible)로 예정되었던 2번함도 직전에 격침된 아크로열의 이름을 승계하기로 하고 1943년 건조에 착수되었다.

1957년 미국에서 벌어진 행사에 참가하여 미 해군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함께 정박 중인 아크로열(R09). 비록 미국의 슈퍼캐리어에 비해 작았지만 착공 당시 기준으로는 미국의 미드웨이급과 맞먹는 초대형 항공모함이었다.
1957년 미국에서 벌어진 행사에 참가하여 미 해군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함께 정박 중인 아크로열(R09). 비록 미국의 슈퍼캐리어에 비해 작았지만 착공 당시 기준으로는 미국의 미드웨이급과 맞먹는 초대형 항공모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건조


그런데 당시 항공모함들의 전과를 분석해 이를 신조함 개발에 응용하다 보니 설계 변경이 수시로 이뤄져 예상보다 건조 기간이 늘어났고 1945년 종전이 되자 제작이 무기한 중단되었다. 노후함 대체 등을 고려해 프로젝트가 완전히 취소된 것은 아니었지만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상 최대의 전쟁이 끝난 이후 인류가 맞이한 것은 평화가 아니라 냉전이라는 새로운 대립 구도였다.

취역 직후의 아크로열(R09). 중앙에서 5.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그어진 경사갑판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cc) Royal Navy at Wikimedia.org>
취역 직후의 아크로열(R09). 중앙에서 5.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그어진 경사갑판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cc) Royal Navy at Wikimedia.org>


그로 인해 아크로열(R09)도 건조가 재개되어 무려 12년 만인 1955년 일선에 배치되었다. 제트시대의 도래 등 이 기간의 엄청난 환경 변화로 말미암아 아크로열(R09)은 환골탈태라 할 수 있을 만큼 애초에 예정했던 것과 판이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때 적용된 여러 기술들로 인해 아크로열(R09)은 현대 항공모함의 기원으로 인정받는 기념작이 되었다.


아크로열(R09)에는 전후 항공모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경사갑판(Angled Deck)이 설치되어 이함과 착함의 효율이 향상되었다. 함재기가 제트화되면서 이함용 사출기(Catapult)가 장착되었고, 반사경을 이용해 안전한 착함을 돕는 시스템도 탑재되었다. 이러한 여러 구조 변경 때문에 만재배수량이 50,000톤을 훌쩍 넘으면서 당시까지 최대 규모였던 미국의 미드웨이(Midway)와 맞먹는 작전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F-4K(팬텀 FG.1)와 버캐니어를 운용할 수 있도록 경사갑판의 각도를 8.5도로 더 꺾는 등 대대적인 개장(改裝)이 완료된 1970년 이후의 아크로열(R09).
F-4K(팬텀 FG.1)와 버캐니어를 운용할 수 있도록 경사갑판의 각도를 8.5도로 더 꺾는 등 대대적인 개장(改裝)이 완료된 1970년 이후의 아크로열(R09).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 되다

 

아크로열(R09)은 이처럼 확장된 크기와 향상된 능력을 바탕으로 시빅슨(Sea Vixen)이나 시미터(Scimitar) 같은 자국산 함재기를 운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해군은 이 항공모함이 제2차 대전 당시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으로 봤다. 그리하여 1960년대 초, 만재배수량 63,000톤의 거대 항공모함 획득 사업인 CVA-01 계획을 구상하게 되었다. 1955년 미 해군 최초의 슈퍼캐리어인 포레스탈(Forrestal)의 등장에 자극을 받은 것이었다.


때문에 아크로열(R09)은 취역 후 얼마 되지 않아 CVA-01 단계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항공모함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후에 영국의 국력이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해군은 구상대로 계획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감군과 군비 축소로 인해 경우에 따라 자존심을 꺾고 외국산 무기의 수입도 고려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아크로열(R09) 갑판에서 이함 준비 중인 F-4K.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던 영국은 시빅슨 후계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전투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아크로열(R09) 갑판에서 이함 준비 중인 F-4K.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던 영국은 시빅슨 후계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전투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시빅슨 대체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의 F-4K(팬텀 FG.1)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F-4K와 그보다 조금 앞서 획득한 공격기 버캐니어(Buccaneer)는 무산된 CVA-01에서의 운용을 염두에 두고 도입한 거대 함재기들이었다. 결국 영국은 이들을 원활히 운용할 수 있도록 1964년 이글(R05), 1967년 아크로열(R09)을 대대적으로 재개장해 대양 해군의 상징인 항모타격전단(Carrier Strike Group)을 계속 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1970년대 들어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을 만큼 국력이 쇠퇴하자 다시 한 번 해군력의 대대적인 감축에 들어가야 했다. 이때 결정된 사항 중 하나가 F-4K와 버캐니어를 항공모함에서 내려 공군에 인도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전통적인 대양 작전용 항공모함의 운용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1979년 2월 아크로열(R09)은 은퇴를 하게 된다.

1976년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뉴욕을 떠나는 아크로열(R09) <출처: (cc) Isaac Newton at Wikimedia.org>
1976년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뉴욕을 떠나는 아크로열(R09) <출처: (cc) Isaac Newton at Wikimedia.org>



 



과연 부활할 것인가 


퇴역 직전이던 1978년 미국 노포크 군항에 정박 중인 아크로열(R09)과 미 해군 항공모함 니미츠(오른쪽). 크기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퇴역 직전이던 1978년 미국 노포크 군항에 정박 중인 아크로열(R09)과 미 해군 항공모함 니미츠(오른쪽). 크기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이후 영국 해군은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한 경항공모함 체제로 바뀌었고, 이러한 변신으로 인해 가상 적국들이 영국을 만만한 상대로 보게 되었다. 이는 1982년 내정에 실패한 아르헨티나의 군부가 자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자 포클랜드(말비나스)에서 영국과 국지전을 벌인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만일 아크로열(R09)이 있었다면 아르헨티나가 그렇게 쉽게 선공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현재 건조 중인 최신 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한때 아크로열로의 명명이 고려되었고 현재도 그런 주장이 계속 이어진다. 그만큼 아크로열이라는 함명에 대한 영국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출처: (cc) Defence Imagery at Wikimedia.org>
현재 건조 중인 최신 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한때 아크로열로의 명명이 고려되었고 현재도 그런 주장이 계속 이어진다. 그만큼 아크로열이라는 함명에 대한 영국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출처: (cc) Defence Imagery at Wikimedia.org>


적어도 아크로열(R09)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미국의 항공모함들을 제외한다면 그보다 크고 작전 능력이 뛰어난 항공모함은 없었다. 비록 국지적인 해상 봉쇄나 경계 작전 말고는 실전에서 교전을 벌인 사례가 없었지만 아크로열(R09)은 냉전시기에 미국과 더불어 대서양에서 소련 해군의 견제 임무를 충실히 담당한 주축 전력이었다. 그만큼 위상이 대단했다.


그래서 1985년 취역한 인빈시블(Invincible)급 경항공모함 3번함에 아크로열(R07)의 이름을 승계시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름이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로 정해지긴 했지만 2023년 취역을 목표로 한창 건조 중인 배수량 70,000톤의 퀸엘리자베스(Queen Elizabeth)급 항공모함 2번함의 이름으로 승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아크로열은 영국 해군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비록 포클랜드 전쟁에서 재미를 보긴 했지만 경항공모함의 능력에 아쉬움이 많았던 영국 해군에게 아크로열(R09)의 퇴역 이후 거의 한 세대 만에 도입하게 되는 퀸엘리자베스급 대형 항공모함은 과거의 영화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에 영국 해군의 마지막 자존심을 상징했던 아크로열(R09)의 위상을 과연 되찾을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제원



배수량 53,950톤(만재) / 길이 245m / 폭 52m / 속력 31.5노트(시속 58.3km) / 승조원 2,640명(항공 요원 포함) / 함재기 F-4K(팬텀 FG.1), 버캐니어, 시킹 헬기 등 38기




▌주석

1) 17~19세기에 유럽 국가에서 사용된 군함. 한 줄로 전열(line of battle)을 만들어 포격전을 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