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을 단(丹)’에 ‘마음 심(心)’. 단심(丹心). 글자대로 읽으면 ‘붉은 마음’이란 뜻이고, 뜻을 새겨보자면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풀이됩니다. 구릉마다 홍로 사과가 달큰한 향기와 함께 익어가고 있는 첩첩한 분지의 땅 전북 장수에서 이런 ‘붉은 마음’을 읽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땀으로 키워낸 사과의 선명한 붉은 색깔 앞에서, 겨우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붉은 마음 앞에서, 절개를 지키며 목숨을 던진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넉넉하지 않은 생활에도 남을 보살피던 보부상을 기리는 희미한 글자의 비 앞에서…. 누군가의 정성을 다한 마음을 기리는 전각과 비석 앞에서 그 마음을 봅니다. 지난여름은 뜨거웠습니다. 발목을 잡는 끈질긴 더위에 지쳐 진즉 이삭이 패서 누렇게 익어가는 논이며, 붉게 익은 사과에는 눈길 한 번 줄 겨를조차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을입니다. 잘 드는 가위로 싹둑 잘라내듯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은 어느 날 돌연히, 문득, 급작스레 당도한 것 같지만, 실은 염천의 뜨거운 날에도 가을은 어느결에 우리 곁에 와있었던 모양입니다. 폭염 아래서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장수에는 사과가 이렇듯 하루하루 붉게 익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이 올해처럼 새삼스러운 적이 또 있었을까요. 가을이 가마솥처럼 끓던 지난여름이 제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려웠던 계절이었다면, 그 더위 끝에 당도한 가을에는 주위 풍경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옵니다. 새삼스러워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청명한 푸른 하늘도, 그 하늘에 걸린 흰 구름도, 서늘하게 구릉 위를 지나가는 바람도, 더 또렷해진 밤 풍경도 모두 다 늦게 당도한 가을이 데려온 것들입니다.
# 구릉마다 사과밭의 붉은색으로 그득 전북 장수는 ‘긴 장(長)’에 ‘물 수(水)’를 이름으로 삼는다. 이름대로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장수에는 곳곳에 물길이 많다. 장수의 일곱 개 읍·면 중에서 장계(長溪), 계북(溪北), 천천(天川) 등 물과 관계있는 지명이 다섯이나 된다. 장수에서 물은 사람들의 경계를 자연스레 나누고 있다. ‘물이 길다’는 건 물길을 이루는 계곡이 많다는 의미이니, 그건 곧 산이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수를 둘러싼 건 첩첩의 산이다. 장수에는 1000m를 넘는 산이 자그마치 열여섯이나 된다. 장수읍만 해도 해발 430m의 분지를 이룬다. 무주, 진안과 함께 내륙의 산간 고랭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대가 높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고랭지 가을 특산물 중 대표적인 게 사과다. 장수의 초가을은 사과로 온통 붉다. 내륙의 산간분지인 장수에는 지금 온통 붉게 익은 사과밭의 붉은색으로 물결을 이룬다. 장수의 사과는 초가을에 유독 이르게 익는다. 그건 품종 때문이다. 장수 사과는 태반이 ‘홍로’다. 더 일찍 나오는 쓰가루(아오리) 품종도 있긴 하지만, 추석 전에 붉게 익어 제맛을 내는 사과는 홍로가 대표적이다. 장수의 사과는 홍로가 압도적으로 많다. 장수에서만 한 해 홍로 사과가 10㎏짜리 박스 150만 상자가 생산된다. 1.5t 트럭 1만 대 분량. 전국 생산량의 23%다. 추석 전에 나오는 붉은 사과의 네 개 중 하나가 장수산(産)인 셈이다. 그러니 이맘때 장수에 가면 분지마다, 협곡마다 일찍 붉게 익은 사과나무로 그득할 수밖에…. 장수에서는 대기 속에서 사과의 달콤한 향이 맡아질 정도다. 구릉마다 들어선 과수원에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은 경관으로도 훌륭하다. 장수에는 해발 고도가 낮은 산서면 일대를 빼놓고는 곳곳에 사과밭 천지다. 찬란한 가을볕 아래 사과가 풍성하게 열린 사과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을 차로 달리거나 두 발로 걷는 기분이라니…. 내로라하는 사과 산지가 전국 곳곳에 있지만, 지금 장수를 얘기하는 건 그곳이 가장 빨리 사과가 익기 때문이다. 봄꽃은 어디나 피지만, 이른 봄에 섬진강 매화를 찾아 달려가는 것도 그곳이 가장 꽃이 빠르기 때문이다. 섬진강이 가장 먼저 봄을 만나는 곳이라면, 이곳 장수는 붉은 사과로 가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다. # 홍로…추석 사과가 맛있어진 까닭
그러다가 1991년쯤 과수연구소에서 1두 품종을 교접해 만든 홍로 품종이 시험재배를 거쳐 장수에 들어왔다. 홍로는 일찍 익는, 추석을 겨냥한 ‘표적생산’ 품종이었다. 홍로 사과가 장수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 이른바 ‘추석사과’로 일컬어지는 장수 사과의 명성이 시작된 지 고작 15년밖에 안 된 셈이다. 짧은 시간에 압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단맛과 신맛이 조화된 홍로의 ‘맛’ 때문이다. 올해 장수의 사과 농사는 계속된 폭염으로 기대만큼은 못하다. 하지만 여름 더위가 오기 전까지 기후조건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예년 수확량 정도는 될 듯하다. 장수의 사과농장 중 규모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과농장 ‘천향원’에서 만난 송재기(66) 씨는 “올해 사과는 폭염 때문에 크기가 좀 작다”며 “일사 피해를 본 과실이 적잖지만, 제대로 자란 놈들은 맛이 참 좋다”고 했다. 올해로 26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송 씨는 “추석사과라고 너무 큰 것만 고집하지 말라”고 했다. 명절에는 크기순으로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큰 사과는 오히려 맛이 덜하다는 게 송 씨의 설명이다. 일본에서는 가장 맛있는 사과를 15kg 박스 기준 50개 안팎의 크기로 꼽는다. 송 씨는 경험으로 보면 우리는 70개 남짓이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차례상에 오르는 과일은 모름지기 커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에 송 씨는 “조상에게 맛없이 크기만 큰 걸 상에 올리는 게 무슨 경우냐”며 “추석이 끝나면 오히려 큰 사과가 적당한 크기의 사과보다 더 싸진다”고 했다. # 붉은 마음, 단심(丹心)을 만나다 ‘붉을 단(丹)’에 ‘마음 심(心)’. 단심이란 ‘붉은 마음’, 곧 가슴에서 우러나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일컫는다. 사과가 붉게 익어가는 장수는 단심의 고장이기도 하다. 열녀와 효자, 혹은 선행과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곳곳에 있다. 그 맨 앞에 두말할 것도 없이 논개가 있다.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몸을 던진 그 논개 말이다. 장계면 대곡리의 주촌마을에 논개의 생가지가 있다. 새로 복원한 생가도 번듯하다. 한데 이곳이 진짜 논개가 태어난 집일까. 논개는 ‘야담’에 기록된 인물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 부시장쯤 되는 벼슬인 한성좌윤을 지낸 유몽인이 펴낸 책 ‘어우야담’에 논개 얘기가 처음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삼남지방의 어사였던 유몽인은 진주성 전투의 참상을 조사하러 진주에 갔다가 논개 얘기를 듣고는 책에 적었다. 그러나 책에는 논개가 몸을 던진 사실만 적혀있을 뿐, 출신지나 성장 과정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논개 생가가 있을 수 있을까. 해답은 논개가 죽고 난 뒤 207년이 지나 1800년 발간된 ‘호남절의록’에 담겨 있다. 이 책에 논개의 출생지에 대한 단서가 처음으로 비친다. 이 책에는 ‘기생 논개는 장수 사람인데, 최경회가 좋아했으며, 그를 따라 진주로 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논개를 좋아했다는 최경회는 장수 현감을 지냈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진주성 싸움에 나섰다가 성이 함락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 그는 장수 현감 시절에 민며느리로 팔려갈 위기에 처했던 논개를 거둔 뒤, 이때의 인연으로 논개를 첩으로 받아들였다. 최경회와 논개는 무려 마흔두 살의 나이 차이였다. 논개가 최경회의 첩이었다는 사실은 최경회에게 포상을 내려달라며 영조에게 올렸던 공적서에서도 확인된다. 공적서에 논개는 최경회의 ‘천첩(賤妾)’으로 기록돼 있다. 논개 사후 100년이 넘은 뒤의 기록이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이후 ‘호남삼강록’‘호남읍지’ 등을 통해 논개의 출생지는 차츰 구체화됐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 생가로 지목된 것은 향토사학자들이 전해오는 기록과 구전 등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인 셈이다. # 논개의 자취에서 만난 불편한 것들
다만 무신경 때문인지, 아니면 의욕과잉 때문인지 곳곳에 세워진 수많은 기념비가 좀 거슬린다. 논개를 기리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게 없는데, 생가지를 만드는 데 돈을 보탰다거나, 복원하는 데 애를 썼다는 이유로 기념물이 세워졌다. 다 기릴 만한 일이겠으되 그게 논개를 가린다는 게 문제다. 특히나 생가지의 연못 한쪽에 세워진 정자 ‘아미정’의 현판은 유독 거슬렸다. 아미정의 현판 글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것이다. 생가지를 조성하던 재임 시에 내걸린 현판이 아니라,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고 한참 지나서 쓴 글씨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 1983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논개 사적지 조성을 위해 특별지시로 예산을 교부해 줬다는 이유로 장수군이 생가지 조성작업을 하면서 1999년 이 글을 받아 건 것이었다. 아무래도 논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고 한때 철거 논의도 있었지만, 현판은 지금도 굳건히 걸려 있다. 또 하나 거슬렸던 것이 군청 마당에는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가 논개와 함께 심었다는 400년 묵은 소나무 ‘의암송’이었다. 훤칠한 자태로 둥치를 뒤틀고 있는 잘 생긴 아름드리 소나무인데, 그냥 그것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웅장함에도 아무 근거도 없이 최경회와 논개의 이야기를 나무에 덧칠했다. 당시에 천첩이 어찌 현감과 함께 나무를 심을 수 있었을까. # 단심을 기리다…노비와 부녀자 그리고 보부상 논개 외에도 단심을 기리는 비석이 장수 땅 곳곳에 있다. 논개와 함께 이른바 ‘장수의 삼절(三節)’로 꼽히는 이가 정유재란 때 장수향교를 지켰던 노비 정경손. 그리고 주인의 돌연한 죽음을 자책하며 따라 죽었다는 이름없는 노비 아전이다. 정경손은 왜적이 향교로 들어서려 하자 ‘내 목을 치고 가라’고 맞섰고, 이에 감복한 왜장이 ‘이곳을 범하지 말라’는 글을 문에 붙이고 물러났다고 전한다. 뒷짐 진 선비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하찮게 여겼던 노비가 향교를 지켜냈던 셈이었다. 삼절 중의 또 한 명은 지금의 군수쯤 되는 현감을 주인으로 모시던 아전이다. 말을 타고 가던 현감이 꿩이 푸드득 날아오르자 말이 놀라 바위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죽자, 동행했던 아전은 이를 자책하며 바위에다 혈서를 쓰고 물에 빠져 자결했다. 그게 과연 한낱 노비였던 아전의 책임이었을까. 지금의 시선으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노비의 주인에 대한 충성은 당시 선비들에게는 널리 알려야 했을 공덕이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세워둔 정경손의 기념비가 향교 안에 세워져 있고, 아전의 죽음을 ‘의로움’으로 기리는 비석이 장척마을에 세워졌다. 이것 외에도 장수에는 왜적의 능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열녀를 기리는 비석과 기념 전각인 ‘정려’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정조를 생명처럼 생각하던 시대이긴 하지만, 그게 어디 부녀자들이 죽음으로 책임을 져야 했던 일이었을까. 나라를, 제집을, 제 부인을 지켜내지 못한 사대부의 책임은 간데없고, 그저 부녀자의 죽음만 기념비로 서 있다. 장수에서 만났던 비석 중에서 마음을 오래 붙잡은 건, 장계면 삼봉리 개안들 논둑의 잡풀 속에 처박히다시피 한 초라하고 작은 비석이었다. 등짐 ·봇짐장수를 일컫는 부보상의 명예회장 격인 ‘반수’ 부부를 기리는 불망비. 비석의 주인공은 장수 지역 부보상의 반수였던 장성운. 강화도에서 참봉 벼슬을 하다 부보상이 돼서 장수에 정착한 그는 주막을 운영하며 등짐·봇짐장수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내어주며 무수한 적선의 행적을 남겼다. 보부상의 우두머리 도접장이 부보상들의 진심을 담아 세웠을 이 비석을, 백성들을 윽박질러 자신의 공적비를 세웠던 몰염치한 벼슬아치들의 크고 화려한 비석에다 어디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장수는 숙소사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장수읍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타코마장수리조트(063-353-8200)가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장계면의 모텔 승마(063-353-0555)도 깔끔한 편이다. 장수는 한우로 유명하다. 한우 맛을 보려면 장수군청 근처의 장수한우명품관(063-352-8088)이 가장 낫다. 고기를 사려 상차림 비용을 내고 먹는 식당인데, 규모도 크고 깔끔하기도 하다. 토옥동산장(063-353-1216)의 송어회나 삼봉가든(063-351-8440)의 흑염소 주물럭 등이 지역에서 내세우는 맛집이다. 지은장(063-352-0142)의 백반이나 산서보리밥집(063-351-1352)의 묵국수도 괜찮다. 오는 2일부터 4일까지 전북 장수의 의암공원에서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가 열린다. 단맛이 강하고 과즙이 많은 붉은 사과 ‘홍로’를 값싸게 사거나 맛볼 수 있는 기회다. 홍로는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수확하는 햇사과. 축제장에서는 장수 사과를 시중가보다 20∼30%, 한우는 10∼15% 정도 싸게 살 수 있다. 축제기간에 장수군 농업기술센터와 축제장 인접 농장에서 수확체험이 진행된다. 인터넷으로 사전에 접수하면 보다 저렴하게 사과를 직접 수확해서 가져갈 수 있다. 이렇게 축제기간에 장수에서 팔리는 사과만 60t에 달한다. 축제에는 17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한우셀프식당도 들어선다. 고기판매점에서 고기를 산 후 불판, 양념 등을 구입해 시식부스에서 바로 먹을 수 있다. 지난해 축제 때에는 셀프 식당에서만 400마리의 소가 소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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