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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의 45년 노포식당에서 소꼬리찜에 빠진 중년남들

산야초 2016. 10. 5. 21:59

강북의 45년 노포식당에서 소꼬리찜에 빠진 중년남들 

입력 : 2016.10.04 18:00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
서울 을지로 <은성장>

일생에서 소꼬리찜을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지난주 연휴 첫날 토요일 50대 중년 남자 셋이 서울 강북에서 점심을 먹었다. 장소는 을지로 3가 충무로 인쇄소골목과 가까운 곳이다. 얼마 전 식당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곳으로 소꼬리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 마음먹고 방문했다.

차를 인근 유료 주차장에 세우고 쭉 걸어가 보니 30대 초반에 많이 와본 곳이었다. 자주 갔던 시트지 출력 업소도 없어지고 충무로 생선구이집도 두 곳 중 한 곳은 사라졌다. 잡지사에서 근무했던 필자는 이 동네에서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시대가 디지털화되다 보니 이 동네도 많이 쇠락했다.

예전 같으면 지금 달력을 찍느라 한창 바빠야 할 때이건만 동네가 한산하기만 하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식당 <은성장>에 회사 직원과 대학교 후배 모두 제 시각에 도착했다. 우리 셋은 50대로 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공통점을 지녔다.

식당은 99㎡(30평) 정도의 규모인데 주방에 한 명, 그리고 홀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손님을 맞고 있다. 나중에 물어보니 두 사람은 1972년 오픈한 이래 그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쭉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주방장이 지금은 칠순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 한 평생 같이 일한 주인과 직원. 어찌 보면 가족보다도 더 접하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오랜 연륜 때문인지 토요일이면 주인과 주방 직원, 두 명이서 손님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도 쉬운 일이 아니다. 들어갈 때는 손님이 몇 명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거의 좌석이 다 찼다. 그만큼 단골이 있다는 애기다. 남자 손님이 대부분이었고 중년층 이상이었다.

꼬리찜
우리 일행 셋은 소꼬리찜 대자를 주문했다. 커다란 돌 냄비에 꼬리찜과 각종 채소 등을 담아내왔다. 꼬리는 외국산이지만 양이 제법 됐다.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파무침이 나왔는데 깍두기는 연륜이 있는 맛이지만 김치는 짠맛이 강했다. 깍두기는 두 번 이상 리필할 정도로 입에 맞았다.

특이한 반찬은 파무침이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파무침과 맛이 사뭇 달랐다. 대구가 고향이라는 주인아주머니에 따르면 경상도식 파무침으로 아마 다른 식당에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파무침은 중국집 부추요리 같은 맛이 났다. 파는 역시 입맛을 개운하게 한다.

우리 일행은 꼬리를 손에 들고 후후 불면서 먹었다. 꼬리를 수육으로 먹는 것은 정말 어쩌다 있는 일이다. 유명한 설렁탕집에서 가끔 꼬리수육을 판매하지만 가격이 꽤 나가기 때문이다. 외국산이지만 꼬리는 꼬리다. 양지머리나 사태를 수육이나 찜으로 먹을 때와 그 맛이 다르다. 소꼬리찜에 담긴 국물도 아주 진하다.

소싯적 우리 집이 제법 부유한 편이었지만 그 때도 소꼬리를 마음껏 먹은 적은 없었다. 1990대년 미국 LA 출장을 갔을 때 호텔에서 조식으로 꼬리곰탕이 나와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 때 촌스럽게도 미국 슈퍼마켓서 소꼬리를 구매해 한국까지 갖고 와, 집에서 먹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머니에게 ‘소꼬리는 고급음식이자 보양식’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정말 어쩌다 먹는 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꼬리찜
아날로그 정서 가득한 노포식당

이런 음식을 먹으면 보양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식성 좋은 중년남들은 소꼬리도 먹고 채소와 가래떡도 먹고 열심히 음식을 해치웠다. 소주를 한 병 주문했지만 술보다는 음식을 더 선호하는 기호적 특성도 셋이 비슷했다.

얼마 전 주말에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다 분당의 설렁탕집에서 설렁탕 특으로 원기를 보충했다. 필자는 나이에 비해 서양요리나 중국요리 퓨전요리 등도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지만 기운이 떨어졌을 때는 한식탕반이 최고다. 그날도 설렁탕 특을 먹으면서 음식 제대로 먹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꼬리찜에 가볍게 소주를 마시는 게 체질에 맞는다. 아날로그 정서가 물씬 나는 허름한 노포식당이 우리에게는 딱이다. 주인아주머니의 차분하고 기품 있는 태도와 언행도 맘에 든다. 예전에 일부 노포 할머니들이 욕을 하는 것이 정감 있다고도 했지만, 나이 먹어서까지 식당에서 반말 혹은 상말로 하는 대접을 받고 싶지는 않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불고기에 낮술을 마시는 손님 설렁탕을 먹는 손님 등 다양하다. 이 식당은 아무래도 낮술을 좀 마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꼬리를 다 먹고 나서 내장무침을 추가로 주문했다. 매콤한 내장무침도 먹을 만 했다. 내장은 소양으로 조리했고 쫄깃한 식감과 매콤한 맛이 술안주로는 그만이다. 소양의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우리 중년남들은 아주 좋아한다. 내장무침에 깻잎이 올려있는데 매운 맛과 잘 어우러진다.

내장무침
동행한 직원이 궁금하다며 주문한 우설탕(우설렁탕)은 설렁탕 국물에 소혀를 올린 음식이다. 부산물인 소혀를 잘 삶았고 국물 맛도 구수하다. 국물에 밥을 약간 말아서 깍두기를 곁들여서 먹었다.

가끔 지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이런 곳에서 소꼬리찜을 주문하고 가볍게 소주 반주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인근에 70mm를 상영했던 대형극장이 지금도 건재해하다. 식사 후 그곳에 들러 영화도 한 편 본다면 금상첨화일 듯.
지출내역 3인 기준 꼬리찜(대) 5만5000원+내장무침 2만2000원+우설탕 9000원+소주 4000원= 9만원
<은성장> 서울시 중구 충무로5길 2    02-2266-6096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