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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의 풍류 즐기며 맛보는 토종닭 능이백숙

산야초 2016. 12. 6. 23:17

은자의 풍류 즐기며 맛보는 토종닭 능이백숙

    입력 : 2016.12.02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고풍

    옛 선비들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조정에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펼치는 것과 물러나 초야에 묻혀 수양하는 것. 모름지기 선비라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일이 중요했다. 물러난 선비는 가급적 세상과 먼 곳으로 깊이 숨는 걸 고결하게 여겼다. 닭백숙 전문점 <고풍>이 자리 잡은 포천시 심곡리는 옛 선비가 은둔하기에 딱 좋은 깊은 골짜기다.


    깊은 골 규방 안주인 손맛으로 차려낸 백숙

    삼태기처럼 주변 산들이 깊이울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고풍>은 마을의 맨 꼭대기에 자리 잡았다. 새로 지은 ㄷ자형 한옥이 남향으로 편안하게 앉았다. 마당 앞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했다는 저수지가 크지도 작지도 않게 펼쳐졌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청호저수지를 연상시킨다. 


    한옥 안으로 들어서자 아늑함이 느껴졌다. 주인장 박씨가 손수 붓으로 쓴 메뉴판 글씨는 옛 규방문화의 일단을 엿보는 듯 했다. 옛 규방 안주인들은 바느질과 자수 외에도 틈틈이 언문(한글)으로 서찰이나 규방가사를 짓기도 했고 붓글씨도 썼다.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서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단아하고 반듯한 박씨의 글씨는 전형적인 조선 여인들의 ‘규방체’ 글씨였다.  


    박씨는 자식들 다 키우고 언제부턴가 놀이 삼아 토종닭 능이백숙을 시작했다. 가끔 집 앞 저수지에 낚시하러 온 사람들이 들러 맛있게 먹고는 했다. 토종닭 능이백숙을 먹어봤던 손님 가운데 되찾아 오는 손님이 차츰 늘자 아예 한옥을 새로 짓고 2015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닭백숙 전문점을 차렸다. 주인장은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거나 외식업에 종사한 적은 없다. 하지만 김해김씨 소종중의 종부로서 손님치레가 잦아 자연 음식 솜씨가 늘었다.

     

    자경 식재료와 포천의 각종 버섯 푸짐 

    토종닭 능이백숙(6만원)은 이 집의 간판 메뉴다. 예전에는 토종닭을 길렀지만 요즘에는 함부로 도계할 수 없어 원육을 구매해 쓴다. 박씨에 따르면 무조건 큰 것보다 1~1.8kg 정도의 토종닭이 가장 맛이 좋다고. 닭을 잡아 일일이 닦달하고 불 때가면서 닭을 삶았던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한결 편해졌단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백숙을 끓여봤는데 압력밥솥에서 적정시간 쪄낸 고기 맛이 최고였다고 한다. 이렇게 쪄낸 닭고기를 대파, 호박, 부추 등 각종 채소와 능이를 비롯한 버섯류들과 함께 자배기에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려 끓인다. 


    닭을 빼면 나머지 재료나 양념류는 대부분 집에서 농사지은 것들이다. 식재료를 자급해, 파는 사람은 원가 부담이 없고 먹는 사람은 원산지 걱정이 필요 없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버섯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포천이 버섯 산지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버섯은 일반 채소류에 비해 재배과정의 오염이 적고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한 건강식재료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능이, 표고, 느타리, 팽이, 만가닥, 새송이 등 가짓수도 여럿이고 양도 넉넉했다.


    살점을 통후추 넣은 소금에 찍어 한 점 베어 물었다. 닭고기 특유의 풍미가 여태 참았다는 듯 입 안으로 고소하게 퍼져나갔다. 보드라운 육질은 순하디 순했다. 백숙을 다 먹으면 남은 국물에 당근, 양파, 부추를 잘게 썰어 넣고 찰밥을 넣어 죽으로 쑤어먹는다. 닭죽이 장벽을 타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자 곡기를 기다렸던 위장이 환호한다.

     

    입맛 다시게 하는 토속 반찬, 담백한 오리떡갈비도

    “반찬이 촌스러워 부끄럽다”는 박씨의 겸사에도 불구하고 상차림은 화려하고 찬류는 실했다. 철 따라 밭에서 소출 하는 푸성귀나 양념으로 찬을 만든다.


    요즘은 역시 시원한 동치미에 제일 먼저 손이 간다. 동치미 외에 대여섯 가지 찬들이 맛깔 나다. 매콤하고 고소한 고추튀각이며 가을에 말려두었던 호박과 시래기로 무친 나물이 먹을수록 당긴다. 들깨가루가 들어간 빈대떡은 고소한 맛이 일품. 늙은 노각으로 담근 피클은 일반 오이 피클과는 또 다른 맛이 난다. 백숙은 그다지 반찬이 필요치 않은데도 자꾸만 먹게 된다. 특히 닭국물에 찰밥을 넣고 끓인 닭죽을 먹을 때는 반찬 하나하나가 입에 착착 붙었다.


    오리떡갈비는 이 집 비장의 메뉴다. 떡갈비 하면 보통 돼지고기나 소고기로 만드는데 오리로 만든 떡갈비는 여간 해선 맛보기 힘들다. 잘 다진 오리고기에 파, 양파, 마늘 등 양념과 채소를 넣고 직접 다져 만들었다. 양파, 파프리카, 단호박 등 채소를 곁들여 간장소스에 찍어먹는다. 기름진 맛이 적고 담백한 편이어서 노인들의 선호도가 높다.

     

    포천은 옛날 한양에서 원산이나 함흥을 거쳐 관북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산이 높고 골이 깊다. 조금만 골짜기로 들어가면 세상 따윈 보이지 않는다. 동네 이름도 깊을 심에 골 곡, 즉 ‘깊이울’이다. 옛 선비들은 세상이 싫어지면 은자가 되어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극단적인 경우, 외부로 통하는 길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곳이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어지러운 세상, 옛 선비 떠올리며 하루쯤 은자 코스프레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주변에 산정호수, 평강식물원, 아트밸리, 신북온천, 허브아일랜드 등 하루 코스 나들이하기 좋은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고풍>을 나서려는데 대청마루 기둥에 서각으로 새긴 주련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때로는 호천(湖川) 가끔은 청산(靑山)’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깊이울로 184-1, 031-533-6166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변귀섭(월간외식경영 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