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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그 자체로 논리적 구조물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 탄핵소추를 다루는 헌재가 보여주는 모습은 덤벙대고, 앞뒤 없고, 여론추수적이다. 나중에 문장도 안되는 결정문을 내놓을까 그것이 두렵다. 헌재는 김영란법을 다루면서도 대중 여론을 합헌의 근거 중 하나로 인용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탄핵 심리 일정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 중요한 심판의 첫 번째 변론은 바로 오늘(3일)부터 시작된다. 이틀 뒤인 5일에는 안봉근 이재만 윤전추 이영선에 대한 2회 변론이, 오는 10일에는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에 대한 3회 변론이 잡혀 있다. 이런 정도의 신속한(?) 재판은 북한 김정은의 장성택 재판 외에 전례를 찾기 어렵다. 헌재 측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라고 말했지만 대통령 탄핵사건을 이런 식으로 서둘러 몰아가는 것은 결론을 예단한 짜맞추기 재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읽어야 하는 공소장만 3만2000페이지다. 헌재는 변호사가 많으니 나눠 읽으면 시간은 충분하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말문을 닫아야 하나. 재판관들도 3만2000페이지를 분야별로 나눠 읽었을 뿐이라는 고백으로 들린다. 어이가 없다. 탄핵 관련 13개 사건은 모두가 연결되어 분리할 수 없다. 박한철 소장의 임기가 1월 말이라는 것 때문에 재판을 서두른다면 더욱 불가하다. 탄핵사건은 헌재소장이 이임하기 전에 처리해야 할 그런 잔무처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구조실패를 단정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아주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중대한 오판이었다. 지금 대통령을 내쫓는 것으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샤먼적 굿판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면 헌재는 탄핵사유에서 세월호 항목부터 배제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보충자료라니. 여성 대통령의 일정이 그렇게도 궁금하다는 것인지.
기실은 특검이라는 것부터가 위헌적이다. 대통령을 수사할 특검을 야당이 추천토록 한 이 제도는 유죄를 정해놓고 짜맞추는 중세 마녀재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유죄 입증을 직무로 하는 국가 기관이라니! 근대적 사법제도라 할 수 없다. 마녀재판에서는 마녀라고 자백하면 당연히 마녀다. 지독한 고문에도 자백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지독한 마녀’가 된다. 온갖 의혹보도와 청문회의 증언들이 서로 뒤틀리자 언론들은 곧바로 ‘지독한 마녀’ 딱지를 붙였다. 우병우 김기춘이 지독한 마녀들이다. 최순실 사건의 발단이 된 의혹의 태블릿PC는 아직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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