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굴의 고장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굴의 80%가 통영산이다. 심지어 충남 보령이나 전남 완도 같은 서남해안 굴 산지 식당에서도 통영산 굴을 가져다 판다. 겨울 김장철에는 통영 시장 골목마다 굴 사러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굴맛이 절정에 이르는 시린 겨울에는 굴 전문 식당마다 긴긴 줄이 늘어선다. 굴 수확철에는 백반집만 가도 굴을 반찬으로 내줄 정도다.
당연히 통영에는 굴 요리를 파는 식당이 널리고 널렸다. 통영항 앞, 서호시장 주변에 특히 많다. 통영의 굴 음식 중 가장 흔한 건 굴국밥이다. 그러나 굴을 이용한 다채로운 고급 음식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굴 코스 요리를 파는 무전동 굴향토집(경상남도 통영시 무전5길 37-41, 055-645-4808)을 찾아가는 게 좋다. 식당도 널찍하고 깨끗하다.
굴향토집은 통영에 굴 전문식당이 흔치 않던 1994년 ‘빼어난 음식 솜씨를 썩히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문복선 대표가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 문씨는 서점을 운영했다. 그리고 통영이 관광지로 급부상한 2000년대 후반 들어 하루에 굴 200㎏을 요리해 파는 통영의 대표 식당으로 자리매김했다.
굴밥부터 굴전·굴구이·굴찜 등 굴을 이용한 모든 요리가 향토집에 있다. 맵쌀·찹쌀·표고버섯·수삼에 신선한 굴까지 넣은 굴밥 한 그릇만 해도 모든 영양분이 가득 담겼다. 생굴의 물컹함을 그대로 간직한 굴전, 고소하고 쫀득한 맛이 독특한 굴구이 맛이 일품이다. 향토집의 굴구이는 통영의 다른 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맛이다. 보통 굴구이라 하면 석화, 즉 굴을 껍질째 구워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향토집의 굴구이는 껍질을 벗긴 알굴을 그릴에 노릇노릇 구워낸다.
굴이 나지 않는 5~9월에도 향토집에 가면 굴 요리를 먹을 수 있다. 특수 냉동시설을 이용해 굴을 보관하는 덕분이다. 그럼에도 생굴을 내놓을 수 없는 여름에는 굴회 대신 살짝 익힌 굴숙회를 낸다.
음식 맛을 결정하는 건 역시나 식재료의 질이다. 문 대표는 요즘에도 매일 새벽같이 서호시장으로 나가 장을 본다. 그리고 굴과 계란만큼은 제일 비싼 종류를 골라 쓴다.
통영 굴에 대한 첨언. 통영에서 굴의 지위는 각별하다. 굴과 관련된 말만 봐도 그렇다. 보통 어패류 껍데기를 벗기는 작업을 탈각(脫殼)이라고 하는데 통영에서 굴만은 박신(剝身), 즉 몸을 벗긴다고 한다. 또 통영에서는 굴을 수확(收穫)한다고 한다. 수하식(垂下式)으로 바다 아래에 굴을 드리웠다가 거둬들이는 작업 방식 때문이다. 흔히 돌에 붙여 키우는 서해안 투석식 굴은 자연산이고, 통영 수하식 굴은 인공산이라 한다. 그러나 수하식이라고 해서 인공으로 부화하거나 사료를 먹이지는 않는다. 통영에서 통영 굴을 ‘양식’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수하식 굴은 물속에 내내 잠겨 있어 플랑크톤을 충분히 섭취한다. 해서 알이 큼직하다.
굴 한 점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고 나면 그 맛이 더욱 뭉클해진다.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통영 앞바다를 가득 메운 작업장에서는 매일 오전 5시부터 11시까지 쉴 틈 없이 굴을 건진다. 채취한 굴은 뭍에 자리한 박신(剝身)장으로 옮긴다. 여기서 아낙들이 온종일 굴 껍질을 깐다. 통영 일대 300곳의 박신장에서 1만4000명이 일한다.
굴도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신선한 굴은 빛깔이 밝고 까만 테가 선명하다. 11월부터 12월 초까지 굴 값이 가장 비싼데 김장철 수요가 많은 탓이지 맛과는 무관하다. 맛은 알이 차는 2~3월이 가장 좋다. 5~8월에 수확한 굴에 독성이 있다는 건 낭설이다. 산란기여서 단맛이 떨어지고, 기온이 높아져 부패하기 쉬울 뿐이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