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과 음식의 합이 한 폭 그림 같아
감자전·새우해파리냉채·가지편채…
밥 먹다 눌러앉아 술 마시게 되는 집
차림의 주인장을 나는 부담 없이 “언니”라고 부른다. 식당에서 밥 먹다 만난 사이고, 관심사도 같으니 자연스러운 호칭이라 생각한다. 언니는 늘 분주하다. 직접 김치를 담고 식재료를 손질하고 밑반찬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외고를 나와 대학에서도 일어를 전공하고 회사생활까지 했던 언니가 오랜 취미이던 요리를 업으로 삼기로 한 건 형부의 직장을 따라 상암동으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조리사 자격증부터 준비하고, 머릿속에 떠올려둔 이미지를 따라 차근차근 인테리어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위해 형부는 직접 그림을 그려 벽면 곳곳을 장식하고, 조명과 그릇을 구하러 다니는 일에 발품을 팔았다. 차림은 이렇게 애정으로 채워진 공간이다.
사실 맛있는 식당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가성비가 좋은 맛집, 큰맘 먹고 갈 만한 맛집, 지방색이 도드라지는 맛집도 있다. 그러나 밥과 찬 모두 구색이 잘 맞고 청결하고 친절하며 분위기도 좋아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집은 흔치 않다. 직업상 식기와 플레이팅에 격하게 흥미를 느끼는 내가 밥상을 받은 순간, 장마 끝에 해를 보듯 맘이 활짝 개는 곳은 더더욱 드물다. 이렇게 유난스러운 내가 이 집을 좋아하게 된 건 특유의 향기(느낌) 때문이다. 식당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혼연 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것 말이다.
차림의 향기는 주인장 언니의 느낌 그대로다. 나른하고 조용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거나 수수하지도 않다. 그런 언니의 개성이 드러나는 밥상은 말갛고 순정하지만 가볍지도 어리지도 않다. 무거운 자기그릇에 익숙한 반찬들이 담겨 나오는데 뻔해 보이지 않는다. 본래 그릇과 음식도 합이 맞아야 한다. 백자는 음식의 색감을 잘 살린다. 특히 기품 있고 여성스러운 면이 있어서 서울 음식이나 궁중 음식 등 모양을 낸 섬세한 요리를 담았을 때 더욱 돋보인다. 반면 투박한 분청은 탁주나 배추전처럼 소박하고 꾸밈없는 요리에 더 잘 어울린다. 이런 느낌을 무시하고 단지 ‘예쁘다’는 주관적인 시선으로 주르륵 세트로 맞추거나 단품을 사모아서는 밥상이 전체적으로 산만해 보일 뿐이다. 요리보다 그릇이 돋보인다면 요리의 품격은 떨어져 보인다.
“그릇을 구매할 때 뭘 사야지 하는 게 있었어요?” “그런 건 뚜렷이 없었고, 어떤 분위기를 내는 것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지.” 요리 디자인을 머리에 넣고 이천을 돌고 또 돌며 ‘근사한 밥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릇을 샀다고 한다. 그런데 언니가 산 그릇들이 아주 특별한 건 아니다. 그릇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것들이다. 또 업소용 식기는 내구성 때문에 강도가 가장 중요하다보니 어느 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이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식기들을 조화롭게 구성해 밥상을 차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무광·유광 광택도 다르고 질감이나 유약의 컬러도 제각각이다. 언니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한 작가나 회사의 라인으로 짜 맞춘 것들이 아니고,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구성하며 조합을 맞춰낸 솜씨가 일품이다. 커다랗고 적당히 손때 묻어 낡은 트레이에 가지런히 놓인 코갈비 정식을 일단 받고나면 모두 “우와~” 하면서 사진 찍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한정식처럼 상다리가 부러지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거짓말 안보태고 반찬은 그릇마다 밥 한 숟가락만큼도 안 되게 나온다. 그럼에도 이렇게 손님들 사이에서 환호가 나오는 건 그림을 그리듯 식기와 음식의 합을 맞춘 주인장의 세팅 능력이지 싶다. 예를 들어 양이 작은 찬은 굽이 있는 식기를 골라 높이를 만들어 준다. 그러면 음식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릇 하나마다 높낮이의 조화, 컬러·광택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애썼을 언니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그 수고 덕에 가게 이름 마냥 차림이 일품이다.
이제, 손맛 얘기 좀 해볼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내가 이 집에 누굴 데려오든 단골을 만드는 마법의 메뉴가 ‘코갈비(코다리갈비)’다.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이다. 가시 하나 없이 포근포근한 살에 갈비양념이 잘 배어들어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우게 된다. 그때마다 코다리에게 ‘너 차림에 오길 정말 잘했다. 어디 가서 이런 주인공 대접을 받겠니’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갈비찜도, 매콤한 오징어볶음도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수 없다. 이러니 점심시간 줄이 길어질 수밖에.
차림에서 정식 메뉴만 먹는다면 그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다. 주당들에게는 천국 같은 메뉴들이 펼쳐지는데 그걸 포기하다니! 감자전, 방아잎부침개, 새우해파리냉채, 궁중잡채, 가지편채에 소고기숙주볶음…. 그 흔한 두부김치도 이곳에 오면 환골탈태한다. 안주용으로 나오는 매운 코다리 양념은 식사용과는 달리 알싸하게 입맛을 돋운다. 국물 요리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와인과 와인 안주도 있다. 식후 이곳에 눌러 앉아 가볍게 2차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술 리스트인데 설날 전후로 보강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니 반갑다. 예감에 우리 전통 술 라인업이 좀 더 늘어날 것 같아서 내가 차림에 가는 날이 더 늘어날 것 같다.
새해에 처음 소개하는 식당은 참신한 곳이었으면 했다. 모던 캐주얼이니 뉴코리안퀴진이니 하는 수식어도 필요 없는 그저 작은 식당. 그러나 지금 누군가 ‘정말 맛있는 반상, 한국 음식이 아닌 서울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면 꼭 한 번 가봐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식당. 밥 먹고 술 먹고, 술 먹고 밥 먹고. 순서가 바뀌어도 이효리가 이효리인 것처럼, 내게 ‘차림’은 언제라도 정답고 흥겨운 곳이다.
‘맛있는 밥상, 차림’
●전화번호: 02-308-0011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30분
●주차: 불가(상암동 주민센터 앞 이용)
● 대표메뉴: 코갈비 정식 1만3000원, 갈비찜정식 1만8000원, 코다리 갈비 2만원, 방아부침개전 1만5000원, 오징어볶음 2만원
● 드링크: 소주 4000원, 맥주 5000~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