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백반집 손맛, 아직 남아있어요!
입력 : 2017.02.24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서천식당
병아리 대학생 때 서울 남창동 가죽 공장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다. 침침한 지하 공장 먼지 속에서 가죽 냄새를 맡다가 맞이하는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구원의 시간이었다. 햇빛과 맑은 공기가 있는 바깥으로 점심 먹으러 나갈 때면 해방감이 들었다. 공장 아저씨들과 회현동에 있는 <광주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무척 오래된 단골집이라고 했다. 광주 인근 농촌에서 올라온 아주머니와 젊은 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밥에 윤기가 흐르고 반찬은 가짓수가 많았으며 맛도 좋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인심이 후하고 속정이 깊었다. 서울 양평동 <서천식당>은 오랜만에 찾은 ‘광주식당’이었다.
향토의 정과 맛 간직한 ‘이촌향도형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나어린 것이 오지게 고상허네!”하면서 내게 달걀 프라이를 부쳐주시곤 했다. 함께 갔던 아저씨들이 “아따 누군 입이고 누군 주댕이당가?”라며 푸념을 늘어놓으면 아주머니는 살짝 눈을 흘기며 웃었다. 그때까지 광주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나로서는 아주머니를 통해 광주의 음식과 인심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광주식당>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 대학 졸업 후 찾아가 봤다. 회현동 뒷골목을 한참 뒤졌지만 <광주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문을 닫았던 모양이다. 산업화 시대 많은 농민들이 대도시로 몰려들면서 대개는 저임 노동자로 변신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영세 자영업에 종사했고, 아주 드물게 식당을 차린 사람도 나타났다. 이렇게 생긴 식당을 굳이 분류하자면 ‘이촌향도형 식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촌향도형 식당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이들은 대개 도시 변두리에 자리 잡았다. 변두리는 주거비가 싸고 비슷한 처지의 동향 사람들이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둘째로, 비록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과의 연결 끈은 놓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으로 고향 지명을 옥호로 삼는 곳도 많다. 간혹 간판에 내건 고향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또 고향의 식재료나 음식이 식당 메뉴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주인아주머니는 “나어린 것이 오지게 고상허네!”하면서 내게 달걀 프라이를 부쳐주시곤 했다. 함께 갔던 아저씨들이 “아따 누군 입이고 누군 주댕이당가?”라며 푸념을 늘어놓으면 아주머니는 살짝 눈을 흘기며 웃었다. 그때까지 광주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나로서는 아주머니를 통해 광주의 음식과 인심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광주식당>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 대학 졸업 후 찾아가 봤다. 회현동 뒷골목을 한참 뒤졌지만 <광주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문을 닫았던 모양이다. 산업화 시대 많은 농민들이 대도시로 몰려들면서 대개는 저임 노동자로 변신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영세 자영업에 종사했고, 아주 드물게 식당을 차린 사람도 나타났다. 이렇게 생긴 식당을 굳이 분류하자면 ‘이촌향도형 식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촌향도형 식당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이들은 대개 도시 변두리에 자리 잡았다. 변두리는 주거비가 싸고 비슷한 처지의 동향 사람들이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둘째로, 비록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과의 연결 끈은 놓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으로 고향 지명을 옥호로 삼는 곳도 많다. 간혹 간판에 내건 고향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또 고향의 식재료나 음식이 식당 메뉴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셋째로, 소박한 상차림이다. 겉치레가 전혀 없다. 주인이 전문적으로 조리나 외식업을 배운 적이 없기도 하지만 손님도 화려한 상차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넷째로, 소박한 상차림에 비해 주인의 정성과 인심은 넉넉하고 두텁다. 이는 장사하는 사람의 속셈(상심) 보다 농사짓던 심성(농심)에 가까운 태도다. 고향에서 형성된 농촌공동체적 가치가 식당 운영에 반영된 결과다.
넷째로, 대박 등 큰 욕심이 없고 대체로 자신의 분수 안에서 최소한의 영리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밖에 동네 주민들과 오랜 시간 서로 친밀하게 교감하면서 식당이 동네 사랑방이나 거점 구실을 하기도 한다.
11가지 맛난 반찬들, 남편 위해 차린 밥상이 이럴까...
서울 양평동 뒷골목에 자리 잡은 <서천식당>은 어느새 20년이 됐다. 충남 서천에서 올라온 노부부가 젊은 딸과 함께 운영하는 전형적인 이촌향도형 식당이다. 간판, 식탁, 그릇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객 대부분 크고 작은 주변 공장이나 회사의 직원들로 오래된 단골들이다. 특히 막걸리를 생산하는 이웃 양조장 직원들은 한 식구나 다름없어 보였다.
메뉴는 찌개류를 비롯해 몇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가정식백반’이 간판메뉴다. 점심시간에는 백반만 판매한다. 오랫동안 5000원을 고수해오던 백반 가격을 지난 2월 1일부터 1000원 올려, 6000원 받고 있다. 식재료 가격이 올라 계속 가격 인상 압력을 받아왔던 터지만 손님 대부분이 단골들인지라 차마 올리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자 부득이 올린 것이다.
넷째로, 대박 등 큰 욕심이 없고 대체로 자신의 분수 안에서 최소한의 영리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밖에 동네 주민들과 오랜 시간 서로 친밀하게 교감하면서 식당이 동네 사랑방이나 거점 구실을 하기도 한다.
11가지 맛난 반찬들, 남편 위해 차린 밥상이 이럴까...
서울 양평동 뒷골목에 자리 잡은 <서천식당>은 어느새 20년이 됐다. 충남 서천에서 올라온 노부부가 젊은 딸과 함께 운영하는 전형적인 이촌향도형 식당이다. 간판, 식탁, 그릇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객 대부분 크고 작은 주변 공장이나 회사의 직원들로 오래된 단골들이다. 특히 막걸리를 생산하는 이웃 양조장 직원들은 한 식구나 다름없어 보였다.
메뉴는 찌개류를 비롯해 몇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가정식백반’이 간판메뉴다. 점심시간에는 백반만 판매한다. 오랫동안 5000원을 고수해오던 백반 가격을 지난 2월 1일부터 1000원 올려, 6000원 받고 있다. 식재료 가격이 올라 계속 가격 인상 압력을 받아왔던 터지만 손님 대부분이 단골들인지라 차마 올리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자 부득이 올린 것이다.
상차림을 보면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6000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해진다. 모두 11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손맛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정성껏 차린 어느 주부의 밥상에서 방금 슬쩍 가져온 반찬들 같다. 꼬막무침, 깍두기, 구운 김, 달걀말이, 생선튀김(고등어), 제육볶음, 배추겉절이, 무나물, 미나리나물, 감자조림, 콩나물무침이다.
어느 것 한 가지 숫자 채우기 위해 만든 반찬도, 저렴한 공장제 반찬도 없다. 모두 아침에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직접 다듬고 조리해서 내놓은 반찬들이다. 구운김, 배추겉절이, 제육볶음처럼 매일 붙박이로 상에 오르는 반찬도 있지만 이 세 가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7~8가지 반찬은 매일 바뀐다.
교체되는 반찬은 나물류, 어린이용 반찬, 튀김류, 마른 반찬 등으로 범주화하여 그 안에서 계속 변화를 준다. 국도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월요일은 미역국, 화요일은 새우 시금칫국, 수요일은 어묵 콩나물국, 목요일은 소고기무국, 금요일은 김치콩나물국이 나온다.
반찬들이 모두 맛깔스럽지만 잘 익은 깍두기와 콩나물무침은 남김없이 먹게 된다. 보통 콩나물무침은 밥상에서 제일 젓가락이 안 가는 반찬이다. 만든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건성으로 만들고 건성으로 먹기 쉽다. 그런데 이 집 콩나물무침에는 반전이 있다. 새우 살과 낙지를 갈아 넣어 그 맛이 여느 콩나물무침과는 사뭇 다르다. 짐짓 ‘에이, 콩나물무침이군!’하고 외면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어느 것 한 가지 숫자 채우기 위해 만든 반찬도, 저렴한 공장제 반찬도 없다. 모두 아침에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직접 다듬고 조리해서 내놓은 반찬들이다. 구운김, 배추겉절이, 제육볶음처럼 매일 붙박이로 상에 오르는 반찬도 있지만 이 세 가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7~8가지 반찬은 매일 바뀐다.
교체되는 반찬은 나물류, 어린이용 반찬, 튀김류, 마른 반찬 등으로 범주화하여 그 안에서 계속 변화를 준다. 국도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월요일은 미역국, 화요일은 새우 시금칫국, 수요일은 어묵 콩나물국, 목요일은 소고기무국, 금요일은 김치콩나물국이 나온다.
반찬들이 모두 맛깔스럽지만 잘 익은 깍두기와 콩나물무침은 남김없이 먹게 된다. 보통 콩나물무침은 밥상에서 제일 젓가락이 안 가는 반찬이다. 만든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건성으로 만들고 건성으로 먹기 쉽다. 그런데 이 집 콩나물무침에는 반전이 있다. 새우 살과 낙지를 갈아 넣어 그 맛이 여느 콩나물무침과는 사뭇 다르다. 짐짓 ‘에이, 콩나물무침이군!’하고 외면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부모님께 원가와 마케팅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배웠어요!”
주변 회사의 단골손님들 때문에 토요일에는 점심, 일요일에는 아침 식사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미리 예약하면 어떤 메뉴도 다 조리해준다는 점. 원하는 식재료를 지정해줘도 된다. 인원수와 메뉴를 미리 알려주면 원하는 시간에 먹을 수 있다. 특정 음식으로 모임이나 회식을 열고자 하는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시스템이다. 평일에는 저녁 8시에 문을 닫지만 예약하면 12시까지 식사가 가능하다.
모든 반찬 조리가 완성되는 시각은 대략 11시 30분 경이다. 노부모님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승현 씨는 그래서 이맘때 오면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한편, 김 씨는 돈 벌 생각보다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 배부르게 먹이고 싶다”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새벽 3시부터 음식 준비를 하고 아버지께서는 아침마다 시장을 봐오세요. 그렇게 매일 고생해서 음식을 만드는데 아무리 따져봐도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한 때 따로 독립해 식당을 차린 적도 있었다. 원가를 책정해 조리에 반영하고 마케팅 활동도 활발히 했다. 젊은 외식업 종사자라면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식당을 접고 부모님과 다시 합류했다. 김 씨는 부모님이 경영학이나 마케팅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 이상의 경영철학과 가치를 터득한 분들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주변 회사의 단골손님들 때문에 토요일에는 점심, 일요일에는 아침 식사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미리 예약하면 어떤 메뉴도 다 조리해준다는 점. 원하는 식재료를 지정해줘도 된다. 인원수와 메뉴를 미리 알려주면 원하는 시간에 먹을 수 있다. 특정 음식으로 모임이나 회식을 열고자 하는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시스템이다. 평일에는 저녁 8시에 문을 닫지만 예약하면 12시까지 식사가 가능하다.
모든 반찬 조리가 완성되는 시각은 대략 11시 30분 경이다. 노부모님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승현 씨는 그래서 이맘때 오면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한편, 김 씨는 돈 벌 생각보다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 배부르게 먹이고 싶다”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새벽 3시부터 음식 준비를 하고 아버지께서는 아침마다 시장을 봐오세요. 그렇게 매일 고생해서 음식을 만드는데 아무리 따져봐도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한 때 따로 독립해 식당을 차린 적도 있었다. 원가를 책정해 조리에 반영하고 마케팅 활동도 활발히 했다. 젊은 외식업 종사자라면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식당을 접고 부모님과 다시 합류했다. 김 씨는 부모님이 경영학이나 마케팅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 이상의 경영철학과 가치를 터득한 분들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촌향도형 식당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맛과 정과 인심으로 포식할 수 있는 식당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끔 간판만 이촌향도형인 식당을 만나 실망하기도 한다. <서천식당>이 자리한 양평동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이곳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이촌향도형인 식당들이 좀 더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건 나만의 욕심일까?
<서천식당>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9길21 02-675-8091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사진 변귀섭(월간외식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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